"안개"

도란도란 프로젝트 - 서른아홉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희뿌연 연기가 눈앞을 가리는.


내가 매우 또렷한 목적을 바라보며 다가가더라도
어느새 안개 속을 거닐 수도 있다


언제 걷힐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걷힐 것이고


아무것도 없는 듯 하지만
분명히 모든 것은 그자리에 있다.


그 속에 들어온 듯 싶어도
어느새 빠져나와있을테고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면
저아래로 떨어질것만 같아도
이내 잘 걷고 있다.


나는 지금도 수많은 안개 속을 지나고 있고
한참을 헤메이고 있다.


잡았다고 생각했을 때 놓쳐버렸고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시작이 되었다.


나는 지금 짙은 안개 속을 거닐지라도
분명히 이것을 잘 이겨내리라.

반드시.


-Ram


1.우리는 지금 인생이라는 안개 속을 서서히 나아간다. 때로는 마치 술을 왕창 마신 후 집에 가는 귀가길처럼 비틀거리며 헤매기도 하고, 델마와 루이스가 달리던 도로처럼 탄탄대로를 달리기도 하며, 잔뜩 낀 안개로 인해 앞에 장애물을 채 피하지 못하고 충돌해 상처를 입기도 하고, 이제는 앞에 장애물이 없을 것이라고 방심하다가 안개 속을 뚫고 달려오는 사슴과 부딪쳐 주저앉기도 하며, 예전 사슴과 부딪쳤던 기억때문에 마음을 졸이며 평소보다도 소심하게 보폭을 줄여 조금씩 조금씩 걸어가기도 한다. 세상에 있는 어느 누구도 안개가 걷힌 세상을 볼 수 없다. 물론 안개가 이제 모두 사라졌다고, 나는 세상을 다 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 안개 속에서 헤어날 수 없다. 아마 절벽에 떨어져 죽는 날까지도 말이다.


2.아침에 일어나서 창 밖을 보았다. 안개가 자욱해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옆 동에 큼지막히 써있던 숫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세수를 하고, 식탁에 앉아 엄마가 차려주신 밥을 먹었다. 밥을 먹으며 엄마한테 말했다. ‘엄마 안개가 너무 많이 껴서 앞이 안보여’. 그 말을 듣고 엄마는 내게 웃으면서 '아침에 안개가 잔뜩 낀 날은 낮에 엄청 화창하다는 말이야'라고 대답했다. 초등학교 4학년이였던 나는 그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의 대답에 '진짜 그럴까?'라는 의문을 품고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갔다. 학교에 가서 여느때와 다름없이 수업도 듣고, 친구들과 장난도 치고, 웃고 떠들고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보았는데, 정말 엄마 말이 맞았다. 하늘이 엄청 파랗고, 해가 쨍쨍하며 정말 날이 화창해진 것이다. 그 순간, '아, 친구들한테도 알려줄껄. 안개덕분에 정말 날이 화창해졌잖아'라는 생각과 '나만 날씨가 이렇게 좋아질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겠지? 친구들은 아무도 몰랐겠지?'라고 생각하며 점심을 먹으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후 나는 안개 낀 아침을 좋아하게 되었다. 최소한 여름에 안개 낀 아침은 화창한 낮을 보장해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3.영화 ’M'을 본 적이 있다. 아마 영화관에서 봤을 터. 그런데 난생처음 이 영화를 보면서 영화의 내용이 도무지, 정말 조금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영화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나 영화관을 나오면서도 도대체 이건 무슨 내용이지? 라는 생각과 중간에 나오는 OST가 정말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 영화가 내게 남겨준 건 보아가 불렀던 '안개'라는 곡. 알고보니 정훈희라는 분이 먼저 불렀던 곡이였다. 역시 원곡을 따라갈 수 있는 노래는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원곡이 매우 좋았다. 마치 에디뜨피아프가 나이가 들어 아픈몸을 이끌고도 무대에 나가 Non, Je Ne Regrette Rien을 열창하는 느낌이랄까.


-Hee


파도가 휘몰아 치던 검은 바다는 곧이어 잠잠해졌다
그리고 서늘한 바람은 하얀 안개와 함께 찾아왔다
나를 향하던 등대의 빛은 꺼졌고,
오직 적막한 고요와 안개만이 온 바다를 뒤덮었다


밤하늘의 빛나는 별들을 보고 싶다
나에게 자신에게 향하는 방향을 알려주던 등대의 빛도 보고 싶다
따스히 떠오르는 붉은 태양 역시 보고 싶다
푸른 바다를 거침없이 가르며 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싶다


하지만 짙은 안개가 뒤 덮인 검은 바다에 나는 고립되어 있다
‘왜 어딘가를 향하여 경주하지 않는가’라는 웃어른의 채근에도
나는 그저 담담히 나의 노를 저을 뿐이다


그의 세대가 살아가는 바다와 나의 세대가 살아가는 바다는 다르다
시대는 변하고 있다


나의 별들과 나의 등대와 나의 태양을 기다리며
나는 그저 담담히 나의 노를 저을 뿐이다


나 자신을 잃지 않는 것
변명이라 할지라도 이 것이 나의 방식이다


-Cheol


당분간 휴재합니다.


-Min


2014년 10월 5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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