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도란도란 프로젝트 - 마흔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시골 할머니 집에는 늘 하얗고 커다란 종이달력이 걸려 있었다
늘 그 달력의 역할은 부침개 받침으로 사용하거나
어린아이들의 윷판이 되고는 했다.


장이 서는 날, 소 데리고 오는 날 등을
휘갈겨 적어둔
할머니의 먼슬리다이어리는
지나간 시간들과 함께 쉽게 뜯겨지곤 했다


깊어지는 할머니의 손바닥 주름 만큼이나
뱀 껍질 같은 다리를 주무를 때면
하루하루의 달력이 야속하기만 하여도


명절이 오기전 까지 빼곡히 채워둔
지나간 달력들은
언제나 항상 그자리에 있었고
또 언제나 우리는 볼 수 있고 뜯어낼 수 있었다.


언제나 우리는 볼 수 있고 뜯어낼 수 있었다.


-Ram


1. 나는 작은 달력을 선호한다. 그래서 내 방엔 큰 달력이 벽에 걸려있지 않다. (아마도 큰 달력을 걸었을 해엔 그 달력안에 인쇄된 프린팅이 굉장히 멋졌기 때문일것이다) 어릴 적에 할머니네가면 얇은 종이에 엄청 큰 폰트사이즈로 하루하루가 적혀 있던 달력이 걸려있었다. 하루에 한장씩 뜯어서 사용하던. 그 달력이 나에겐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나는 ‘시간'이라는 것이 주는 위압감을 싫어한다. 물론 '시간'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지 않을 순 없다. 우리 모두 같은 '시간’ 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그래도 최대한 '시간'에 대해 부담을 갖지 않으려고, '시간'에 대한 위압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스스로 노력한다. 그냥 '시간'이라는 것은 모두가 그나마 지니고 있는 최소한의 기준이지 않을까. 할머니네 거실에 버젓이 걸려있는 그 달력만 보면, '오늘은 23일이야!! 너 23일인 것을 꼭 기억해!!!’, '오늘이 지났는데? 왜 한장 안뜯어? 이제 24일이라고!!’, '너 오늘이 23일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겠지?’ 라고 나에게 엄청 큰 소리로 외치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냥 내가 원래 지니고 있고, 생각하고 있는 페이스대로 나의 인생을 살고 싶고, 그렇게 노력하고 있는데, 달력에 쓰여진 큰 숫자들이 자꾸 내게 종용하는 것만 같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란, 사이즈도 정해지지 않은 커다랗고 깨끗한 도화지라고 생각한다. 그 도화지의 사이즈를 내가 얼만큼 가지고 갈지, 그리고 그 하얀 도화지에 어떤 색의 색연필로, 또는 크레파스로, 혹은 물감으로, 무슨 그림을 어떻게 그릴지는 내가 정하는 것이지, 그 누구가 정해줄 순 없는 것이니. 고작 달력에 쓰여진 글자들이 무슨 의미가 크게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나만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요소들이 하나씩 하나씩 쌓이면서 그 한 사람을 만들어 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2. 여러 종류의 달력이 있다. 한 해를 다 보여주는 연간 달력, 한 달을 보여주는 월간 달력, 일주일을 보여주는 주간 달력, 하루만 잘게 쪼개서 보여주는 일간 달력. 나는 월간 달력이 제일 좋다. 그래서 항상 연말 즈음에 다음 해의 다이어리를 고를 떄에도 월간 달력이 가장 심플하고 내가 보기 좋은 디자인의 기준으로 고른다. 그만큼 월간 달력을 엄청나게 많이 본다. 어떨떈 이런 생각을 한다. 월간 달력 12장이 다 넘어가면 나의 한 해가 다 끝나버리는 구나. 이 12장이 뭐라고. 무겁지도 않으며, 넘기기 어렵지도 않은데. 일년이 정말 쉽게 끝나버릴 것 같은 생각. 또 어떨땐 이런 생각도 한다. 이번 한 달이 끝나고 다음 달로 달력 한 장을 넘기면서, 이 다음 달엔 나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아니면 어떤 인연이 찾아올까. 예상치 못한 일들은 무엇일까라고 생각하며 설렐 때도 많다.


3. 하루하루가 달의 모양으로만 되어있는 달력이 있었으면 좋겠다.


4.
생일 아침
미역국 받아놓고 생각느니
1959년 이래 쉰 세 해
쉰세번째 가을

그러고 보니
오늘 나와 함께 태어난
내 죽음도 쉰세 살
내 죽음도 쉰세번째 가을
어서 드시게

오늘은
꾹 참고 나를 보살펴준
내 죽음과
오붓하게 겸상하는 날
일 년 내내 잊고 지내
미안해하는 날
고마워하는 날.

<생일>, 이문재


-Hee


넌지시 책상 한 켠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다이어리를 집어 펼쳐본다.


나의 달력에 적혀있는 것들



- 즉, 자신은 사랑받을 만한 존재로 태어났다는 것에 대한 확인에 지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자신이 사랑받을 만하다는 것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에 쉽게 납득을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 사는대로 생각해선 안되고, 생각하는대로 살아가야 한다


- 책을 쓰기로 마음먹음


- 우리가 어떤 존재들을 사랑하게 될 때면 그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에 너무 많아지게 마련이어서,
그런 것은 사실 우리들 자신에게 밖에는 별 흥밋거리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적절한 순간에 늘 상기하지 않으면 안된다 _ 장 그르니에 ‘섬’ 중에서


-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 <소유하지 않는 사랑> 라이너 마리아 릴케


- 배고프다 부끄럽지 말라, 순간의 배부름에 더 넓은 배포를 갖지 못함을 부끄러워 하라


- 어둡고 단절된 곳이라 할지라도 네 스스로 발 디뎌 들어온 곳이니 쓰라린 상처 홀로 견뎌내고 강인할 지어다


-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은] 두근거린다. 특히나 나에게 할말이 있다며, 해줄 말이 있다며 만나자는 사람은 더욱더.
우선 그 ‘누군가’가 어디쯤 오고 있을지 생각해보면 두근거리고, 그 ‘누군가’가 내게 어떤 표정으로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걸까 하며 생각해보면 또 두근거리고,
혹여나 그 ‘누군가’가 희소식이 아닌 안좋은 소식이더라도 그것은 그 자체로 두근거린다. 그리고
그 ‘누군가’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생각하면 두근거리고, 그 ‘누군가’가 어제 본 얼굴이더라도
또 볼 수 있다는 마음에 두근거리고, 만약 그 ‘누군가’가 오래된 친구라면 마냥 편하게 웃을 수
있다는 마음에 두근거리며, 그 ‘누군가’를 기다리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동안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사실에 두근거린다.


- 백남준, 그림에 미디어를 접목시켜 예술의 경계를 확장시킴. 스티브잡스, 폐쇄된 OS환경에 미디어를 접목시킴.
어머니세대, 자신을 생각하는 사유와 사적인 삶을 포기한 세대. 주관을 표현하고 펼치는 것은 소외됨.
예술과 퍼포먼스가 불러들이는 기억. 기억을 다시 불러들이는 일이야말로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톨스토이, 예술은 인생의 필수조건.



이것들을 다시 보며, ‘하이든[사계] 가을 가을 햇빛에 빛나는 포도’를 듣고 있다.


-Cheol


당분간 휴재합니다


-Min


2014년 10월 12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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