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

도란도란 프로젝트 - 세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귤, 그리고 오렌지


누구든 쌕쌕이라는 캔음료를 기억할까.
어렸을 적 ‘오렌지맛'을 처음 접한 것은
이 음료를 통해서였는데
어느 새 그 음료는 '제주 감귤맛'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더라.


잠시 고민해보면 오렌지와 귤의 차이를 명백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오렌지라는 영어 이름을 걸친 아이는
왠지 모르게 크고 두껍고 동그랗다
귤이라는 친숙한 이름을 받은 아이는
모양도 제각각 크기도 제각각 제법 맛도 있다.
사실 내게 오렌지나 귤이나 주황색 과일 일 뿐이지만…


그런데 주위에 '귤 맛'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딱히 어떤 것이 더 맜있다라고 정의내리기도 어렵지만
주스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맛은 귤 맛 대신 '오렌지 맛'이다.


딸기 맛, 포도 맛, 오렌지 맛
우리가 언제부터 오렌지 맛을 먹어왔는지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확실한 것은
'귤 맛’ 식품을 먹어본 기억은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
귤이나 오렌지나 주황색 껍질에 흰색 얇은 베일에 감춰둔 탱탱한 속살
사전적 의미를 빌리면 감귤류. 정도가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오렌지 맛 뿐일까.
귤 보다 오렌지가 폼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오히려 고깃집에서 간간히 내어주는 두 동강 난 귤이 좋고
뜨뜻한 전기장판 위에서 무던히 까먹을 수 있는 것도 귤이다.


오렌지는 영어로 오렌지. 귤은 영어로 탠저린.
귤이 영어로 오렌지가 아니라 탠저린 임을 알게 된 것도 최근의 일이다.
귤 맛이나 탠저린 맛은 조금 이상하다고 보는 걸까.


오렌지이건 탠저린 이건 난 그냥 귤이 더 좋다.
다소 외람되지만 오렌지 맛은 싫다.
주황색도 싫어하고 오렌지 주스보다는 포도 주스를
오렌지 맛 사탕보다는 딸기 맛 사탕을 좋아한다.


나는 그저
오렌지 스러운 것보다
귤 스러운 것이 더 좋을 뿐이다.


- 다섯 번째 귤을 까먹으면서…


-Ram


한때 나를 귤귤이라고 부르던 사람이 있었다.
난생 처음 들었던 애칭,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적이였던 그 당시, 나는 철학과 인문학에 빠져있었다.
철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뭔가, 내 주위 사람들과도 그것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는데,
딱히 철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친구들도 없었을뿐더러,
이 시대에 왠 철학이냐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내가 철학에 대해 이야기를 해도 그리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이 많이 없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내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것을 넘어서서, 나와 같이 토론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내가 아닌 타인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했고, 또 타인의 시각이 궁금했기 때문에 이러한 토론을 진심으로 바랐던 나는,
계속해서 그 사람과 이야기를 하려고 했었다.

하루는 커피를 마시다가 장보드리야르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다.
그때 내가 시뮬라시옹 이라는 책을 읽고 있었는데, 그 책을 읽고
엄청난 공감과 현실에 대한 회한을 느껴, 정말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에 대해 정답없는 토론을 했다.

하루는 한나아렌트의 결론이 정말 좋아서, 신이나서 떠들었던 기억이 난다.
전범재판이라는 중요한, 그리고 거대하면서도 살벌한 역사속에서 어떻게 '사랑'이라는 부드러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는지, 정말 감명깊었다고 말이다.
지금도 한나아렌트를 생각하면 마음이 정말 따뜻해진다.
사랑이라니.

하루는 '통섭'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고, 그 단어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그 단어 속에는
엄청난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했다.
그래서 그 이후 융합(Convergence)라는 단어를 받아들이기에 조금은 부드럽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귤귤이는,
그냥 내가 귤을 먹고 있다고, 아 귤을 먹고 싶다고 하니 그냥 그 이후로 나는 귤귤이가 되었다.
귤귤, 귤귤, 뭔가 의성어 같기도 하면서 캐릭터 이름 같기도 하면서 간지러운 단어 같기도 하고.
그렇게 수 많은 대화들이 이어지고, 대화가 자연스럽게 토론으로 바뀌었다.
그런 대화들로 인해,
-생각할 수 있는 폭이 굉장히 넓어졌다. 물론 지금도 더더욱 넓어져야 하겠지만.
-조금 더 깊이있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내 자신을 대할 수 있는 그런 방법을 약간이지만 터득 할 수 있었다.
-차분하게 내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고, 오롯이 나만을 두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되니, 내가 왜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는지, 내 존재에 대해 사색해 볼 수 있었다.
-그 당시 예민하게, 그리고 엄청 딱딱하고 어떻게 보면 빡빡했던, 그리고 사물을 바라보는 눈이 차가웠던 나였다.
하지만 모든 것을 차갑지 않고 따뜻하게, 그리고 부드럽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내 자존감도 높아졌다.

그 길지도, 짧지도 않은 기간동안 수많은 대화들로 서로 성숙해질 수 있었다.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나가지 못한게 아쉽긴 하지만, 어디선가 토론을 하고 있을거라 확신한다.
나 역시 그 이후로 많은 곳에서 한 주제를 조금 더 깊이 생각하며 대화를, 혹은 토론을 했을테니.

요즘은 토론프로그램을 많이 찾아볼 수 없다. 백분토론과 심야토론만 (공중파기준) 남은 것 같은데.
라디오에서도 토론을 메인으로 한 프로그램보다는 그냥 코너 사이에 끼워넣는 그런 프로그램이 많다고 들었다.
크나큰 정치적 주제도 좋고, 아니면 소소한 주제라도 좋으니, 조금은 더 많은 장이 열려,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싶다.


-Hee


귤에 대한 나의 사유와 감정. 솔직함과 무관심에 대한 이야기.


어떠한 대상에 대하여 글을 써야만 할 때, 그리고 그 대상이 나의 사유에는 없는 낯선 대상일 때 나는 생각한다. 장황한 글을 쓸 필요가 없다. 자세한 설명도 묘사도 필요 없다. 깊은 사유의 대상이 아님에도 그에 대하여 장황한 글을 써내는 것은 대상에 대한 기만이고 자신에 대한 거짓이다.


어쩌면 그 무심함에 대한 솔직하고 단편적인 표현이 더욱 진솔하고 가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비록 나의 진솔함을 숨길 때도 있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겉으로 지어낸 말일지라도 이따금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달콤한 말들만을 듣기를 원한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자신의 모순됨을 말하기 보다는 그들이 듣길 원하는 달콤함을 전한다. 언제부터였을까, 나의 진솔함을 담은 생각과 이야기들을 전하기보다는 그들이 원하는 달콤함을 전하는 ‘예의’를 갖추게 된 것은.


어쩌면 이 것은 나의 무지일 수도 있다. 귤에 대한 무지. 대상이 ‘귤’이 아니더라도 나의 무지는 어느 곳에서나 존재한다. 어떤 이들은 대상에 대한 자신의 무지를 감추고 살아간다. 타인은 모르지만 스스로는 무지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살아간다. 어떤 이들은 그러한 부끄러움조차 스스로 외면한다. 자신을 부정하고 살아간다. 그러한 부끄러움보다는 자신의 진솔함이 더욱 소중 할 수 있다. 무지에 대한 진솔함. 나는 그 솔직함이 더욱 좋다고 생각해보는 저녁이다.


글을 통해 생각을 담아내는 하찮은 기술로 나의 부끄러움을 덜어내는 ‘귤’과 같은 저녁이다.


-Cheol


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선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그 날 저녁 바로 사왔다. 그도 그럴 것이 가장 맛있을 겨울 아닌가. 쌀쌀해 질 시기부터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과일로 귤만큼 친근한 것도 없을 것이다. 귤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귤을 먹을 때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은 것 같지만, 귤에 대한 개인적인 취향을 이야기하자면 나는 자그마한 감귤을 좋아한다. 주물주물거리기 좋게 한 손에 딱 들어오는 크기가 먹기도 편하고 맛도 좋다. (귤을 먹기 전에 주물거리거나 가볍게 던져주면 당도도 좋아지고 까기도 편해진다.) 요즘이야 한라봉을 필두로 한 감귤과 다른 감귤류(시트러스 계 ; 오렌지, 시트론, 그레이프후르츠 등)의 교배를 통해 육성된 품종들(천혜향, 레드향, 황금향, 진지향 등)이 많이 유통되고 있지만, 이는 10년이 채 되지 않은 일이다. 이 새로운 아이들이 맛은 물론 향, 당도, 과육 등 많은 면에서 뛰어나지만, 그래도 귤하면 떠오르는 것은 주황빛 망사 주머니에 열 개 남짓 들어앉아 내 발길을 잡는 감귤이다. 향이 뛰어난 천혜향, 당도가 뛰어난 레드향 등이 잘 팔리는 시점에서 내가 좋아하는 망사 주머니 귤은 소외되는 것 같기도 하고, 나 마저 외면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항상 두 세 주머니씩 사는 편. 상대적으로 저렴한 얘네들은 주머니에 담겨있는 모습도 좋지만, 주머니에서 하나씩 꺼낼 때는 제비뽑길 하는 기분도 들어 소소한 재미가 있다.


우리 나라 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귤은 사랑받는 과일이다. 드라마나 만화를 보면 꼭 등장하는 것이 겨울에 코타츠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귤을 까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기도 하고, 수 많은 계량종을 만든 것도 그들이다. (우리 나라에서 유통되는 계량종들은 일본에서 건너온 것이 많다.) 작은 차이는 존재하겠지만 우리 나라 역시 가족적인 분위기에 대부분 귤이 함께한다. (코타츠 대신에 온돌이나 전기장판이 되겠지?) 따땃하게 올라온 전기장판 위에서 귤을 까먹는 것은 겨울이면 쉽게 볼 수 있는 것이니까. 지금은 나이도 들고 그럴 시간 내기가 쉽지 않지만, 예전에 자주 친구들과 하던 의식(?)같은 것이 있다. 특별하기보단 평범했던 우리의 그 모습이 종종 생각난다. 누구 한 명의 집이 비는 날이면, 우리는 만화책으로 빵빵해진 가방을 매고는 하나 둘 모여든다. 편한 옷에다 이불아래 뜨끈한 자리를 하나씩 차지하고 널부러져서는 만화책을 보았는데, 그것만큼 마음 편할 때가 없었다. 가지고 온 간식들과 만화책, 잡지 등을 쌓아두고, 이야기하다 만화보다 이야기하다, 전기장판 위에서 주전부리도 먹고, 자기도 모르게 잠들기도 하고, 그냥 아무 것도 하지 않기도 했다. 우리는 겨울방학이면 유난히 자주 뭉쳤는데, 아무래도 달달한(?) 시즌이다보니 서로의 연애상담이나 고민들, 비밀 이야기들을 하면서 더 친해졌던 것 같다. 만화책과 함께하는 건전한 파자마 파티랄까… (당연한 걸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가지고온 간식의 절반 이상은 귤이었고, 찾아간 친구네에도 귤이 있어서 우린 항상 귤부자였다. 그래서 그런지 귤을 싫어한 것도 아니지만, 환영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매번 다 먹었다.) 항상 옆에 있으니까 알아차리지 못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귤을 보면 그 친구들이 생각난다. 그리고 그 때가 그립고 또 그립다.


-Min


2014년 1월 26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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