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

도란도란 프로젝트 - 네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네가 꽃을 품고 온들
산을 품고 온들
너는 그 자체로도 충분했다.


나는 함부로 널 가늠할 수 없었다.
너의 길이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를 향해 가려는지
나서서 지레짐작하려 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리운 것은
나에게서 소리없이 뭉개지다가
코를 간지럽히듯 떠나는 것이었다.


나는 네가 어디에나 있음을 안다.
나의 목덜미에도, 복숭아뼈 끝마디에도
머리칼 한 올 한 올을 따라
어룽어룽 피어남을 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만질 수도, 닿을 수도 없는 너를
이름도 모를 너를
왕왕 추억하며 씻어내는 것이었다.


길을 걷다 혹여
너의 흔적이 내게 닿으면
으레 나는 뒤를 돌아
코끝이 찡하도록 너를
그렇게 너를 그리고 싶을 뿐이다.


- 그리움을 품은 향기에 대하여..


-Ram


1. 음악은 신비로운 힘이 있다.
누구에게나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음악은 내게 기억력을 정말 10배로 향상시켜주는 그런 힘이 있다.
마치, 최면술사의 레드썬 같다고나 할까.
만약에 3년 전에, A라는 음악을 좋아해서, 또는 그 음악이 우연찮게도 그때 내 귀에 많이 들렸다고 치자.
3년 후 지금, 그 A라는 음악을 들으면 3년 전 내가 그 음악을 들었을 그 당시의
내 생각, 내가 있었던 공간, 내가 만났던 사람이 많이 생각난다.
그냥 조용히 혼자 그때를 떠올리는 것보다 정말로 10배는 더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 정도로 나는 음악의 지배를 많이 받는다.


향기도 마찬가지다.
특히 향기는 음악처럼 엄청나게 많고 다양한 종류들을 맡아보고 살지 않아서,
더더욱 내 머릿속에 많이 남는다.
이런 사실을 최근에 알았다.
한 달 전, 아는 분 차에 탄 적이 있다.
차에 타자마자 굉장히 익숙한 향기가 났다.
그 분은 몇년 전에 내가 쓰던 향수와 똑같은 향수를 쓰고 계셨다.
사실 그리 희귀하고 흔하지 않은 향수는 아니였다.
그냥 정말 어디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그런 향수였다.
하지만 나는 그 향수를 썼던 이후로 그 향기를 어디에서도 맡아보지 못했다.
한번쯤은 맡아 볼 만한데 말이다.
그 향기를 맡자마자 굉장히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 향수를 한창 썼던 그 때가 떠오르면서,
그 당시 내 모습, 내가 만났던 사람, 내가 갔던 장소, 내가 이야기 했던 소재 등등 그 모든 것들이 생각나버렸다.
아, 향기도 내 기억력을 10배는 더 살리게 하는 힘이 있구나, 하고 그때 깨달았다.


음악과, 향기는 내 기억력을 건드린다.
반대로 향기가 없는 사람은 내 기억속에 오래 남아있지 못한다.


2. 나는 달달한 향을 좋아한다.
지금껏 내가 써 왔던 향수도 굉장히 달달했다.
그리고 남자 향수 역시, 달달한 향을 좋아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지금보다 나이가 더 많이 들면
좋아하는 향기 취향이 바뀔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물론 취향은 시간이 흐르면 변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향기 취향은 쉽사리 변하지 않을 것 같긴 하다.


3. 나는 허브향, 아로마향을 좋아하지 않는다.
뭔가 내 신경을 건드리는 향이다.
아, 생각해보니 강남역 LUSH를 지나갈 때도 살짝 내 미간이 찌푸려졌다. 킁.


4.
잔향1(殘香) : 남아 있는 향기.
잔향2(殘鄕) : 황폐하여 보잘것 없이 된 시골의 마을.
잔향3(殘響) : <물리> 실내의 발음체에서 내는 소리가 울리다가 그친 후에도 남아서 들리는 소리. 실내 음향 효과를 내는 데 중요한 현상으로, 음악은 1.5~2.5초, 강연에서는 1~1.5초가 적당하다.


문득 궁금해졌다.
김동률의 '잔향'은 저 세 가지의 뜻 중 어떤 뜻일까.


-Hee


누군가의 향기를 느낄 수 있고 또 기억할 수 있을 만큼, 누군가와 가깝다는 사실은 우리에겐 참으로 설레는 일인 것 같다. 누군가의 향기 그리고 그 향기를 통한 그 사람에 대한 기억, 비단 누군가가 아닐지라도, 어떠한 장소 또는 특정한 사물, 결국 무엇인가에 대한 향기는 그 대상과 자신과의 사이에 대한 감성의 교류이다. 철저하게 이성은 배제된 감각과 느낌, 오로지 감성적인 그리고 자연적인 풍부한 교감이다. 향기란 것은 자연이 우리에게 선물한 그러한 교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향수를 싫어한다. 향수는 누군가와의 자연적인 교감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인위적인 향기, 오로지 인간만이 지어낼 수 있는 오만이다. 자신의 체취를 감추고 자신의 향기를 감추고, 다른 대상의 인위적인 향으로 자신을 감춘다. 그렇게 자신을 다른 것으로 탈바꿈 시킨다. 인간의 욕심 그리고 욕망, 자연스럽지 못한 인위적인 조작인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향수에 대하여 관대하다. 그 이유는 바로 누군가에 대한 열망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은 열망. 그 누군가가 특정 대상이 아닌 불특정다수 일지라도 그이들에게 각인되고픈 열망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순수한 열망과 열정을 그 누가 깍아내릴 수 있단 말인가. 구태여 각인과 열망이 아닐지라도, 특정한 향에 담긴 추억과 그에 대해 무의식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동경, 그 것들을 간직하고픈 애잔한 마음인 것이다.


당신의 꾸며진 향기를 벗겨내고 싶다. 오로지 순수한 당신을 느끼고 싶다. 그렇게 오로지 순수한 당신을 기억하고 싶다. 그렇게 순수한 사랑을 하는 사람이고 싶다.


-Cheol


사람이 감각 기관을 통해 지각하는 정보들 중 시각 정보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치지만, 후각을 통해 각인되는 ‘기억’은 우리 머리 속에 오랜 기간 자리 잡는다. 향기는 후각 정보 뿐 아니라 다른 정보의 지속력을 증폭시켜주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그와 관련된 것들을 하나로 엮어준다. 향기는 이처럼 우리 기억에 직접적으로 관여한다.


향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무방비 상태인 우리를 강렬히 찌를 때도 있고, 은은하게 안아줄 때도 있다. 그가 먼저 바람을 타고 흩어지기도 하고, 익숙해진 우리가 잊어버리기도 하지만, 그는 항상 우리와 함께 존재한다. 우리는 그를 뒤쫓아 음미하며 취하고 소유하려하지만 이내 사라진 그를 그리워하고 아쉬워한다. 오늘은 우리의 특정 기억과 함께하는 향기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프루스트 현상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유래한 것으로, 소설 속 주인공 마르셀은 홍차에 적신 마들렌의 향을 통해 어린 시절을 회상하게 된다. 이처럼 향기를 매개로 과거의 상황 및 느낌을 기억해 내는 것을 프루스트 현상이라 한다. 이를 통해, 낯선 곳에서 돌아가신 할머니의 냄새나 헤어진 연인의 냄새를 맡았을 때, 그들과 엮인 복잡한 감정들이나 잊지 못할 순간들이 폭발적으로 떠오르는 것을 설명할 수 있다. 향기는 시간을 되돌려 그 순간을 재생하는 매개 역할을 하는 동시에 그 기억을 증폭시키는 촉매 역할을 한다.


천재 조향사 크리스토퍼 브로시우스는 (아마 프루스트 현상을 염두해 둔)오랜 연구 끝에 약 350가지의 기억을 재현하는 향기를 만들어 냈다. 그것이 기억의 안내자 데메테르 향수이다. ‘향은 재미있어야한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데메테르는 비누, 거품목욕, 베이비파우더, 세탁건조기 등의 베스트셀러는 물론, 상황 별, 공간 별로 분류된 독특한 향(예를 들면 ‘대청소 하던 날의 기억’이나 ‘오래된 담요와 다락방의 추억’ 등)으로 (개인 별 차이는 존재하지만 보편적인) 잊고 있던 일상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쉽게 말하면 먼지의 냄새나 창문 세정제의 냄새를 통해 우리는 어릴 적 형제와의 놀이 같은 것을 즐겁게 떠올린다는 거다.


출판계의 거장 슈타이들도 종이 책에 대한 기억을 간직할 수 있도록 향기를 사용하였다. 그가 칼 라거펠트와의 협업을 통해 만든 ‘Paper Passion’은 막 인쇄된 책을 펼쳤을 때 나는 종이와 잉크 냄새를 품고있다. 디지털 시대에 들어 아날로그적 가치를 지닌 것들이 설 자리를 잃어가던 중, 슈타이들은 예술작품으로서 책의 가치를 조명하였고, 대중들이 기억하고 있는(그리고 알지 못하던) 종이의 촉감과 책이 가지는 향기의 감수성을 부각시키면서 종이 책의 건재함을 증명하였다.


향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어느 살인자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소설은 향기를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루누이가 그의 스승 발디니에게 그러하였듯, 원하는 것을 이루어 주는 향기에 대한 이야기다. 신의 경지에 가까운 후각을 가진 장 바티스트 그루누이는 첫사랑의 기억을 향기로 간직하려 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체취가 없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게 되는데, 냄새를 통해 존재의 확인을 했던 그는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그는 자신에게 존재감(현존감)을 부여해 줄 최고의 향기를 만들기고 결심하고, 그 과정은 영혼의 정수를 뽑아내는 듯 예술적으로 보인다. 13명의 매력적인 여인들의 향기로 만들어진 향수는 전세계를 굴복시킬 힘을 가졌으나, 그에게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진 못한 것 같다. 영화와 원작 소설은 약간의 차이가 있다. 그루누이는 그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이 세상에서 사라지기 전 영화 속의 그는 자신이 처음으로 매혹되었던 소녀를 떠올린다. 향수를 통한 존재의 확인이라기 보다는 향기와 함께 떠오른 그녀의 모습을 오래 기억하고 싶은 것 아니었을까?


우리가 간직하고자 하는 추억과 향기는 바람과 같아서, 영원히 머물지 않는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향기는 옛 추억을 불러오는 열쇠라 할 수 있다. 누군가는 향기를 아름다운 추억의 기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가 바람처럼 흩날려 우리의 추억으로 이어질 때 그 진가가 발휘된다. 순간의 향기는 사라지지만 추억 속의 향기는 그 속에서 오랫동안 우리 곁에 머문다. 당신이 좋아하는 향기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나는 고양이들의 고소한 발냄새가 참 좋다.


관련 컨텐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책 / 마르셀 프루스트

향수 그리고 향기 - 향수 만드는 남자의 향기 이야기 : 책 / 임원철

데메테르 향수 : 향수 / 크리스토퍼 브로시우스(데메테르)

슈타이들 전 : 전시 및 도록 / 대림미술관

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 책 / 파트리크 쥐스킨트

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 영화 / 감독 톰 튀크베어 (벤 위쇼 주연)


-Min


2014년 2월 2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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