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전설"

도란도란 프로젝트 - 다섯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가을을 품은 ‘나'에게


처음 '가을의 전설'을 들었을 때는 당혹스러웠다.
습관처럼 검색을 시도하다가 이내 내려놓았다.
영화인지 노래인지 몇몇 키워드들이 눈앞에
복잡하게 나열되어 있었고
브래드 피트인지 녹색지대인지
얼마나 재미있고 감동적인지에 대한 글들이
저마다 눈이 따갑도록 화면에서 빛나고 있었다.


음악도 영화도 어느 것 하나 흥미롭게 비추어 지지 않아
내 나름대로의 가을의 전설에 대해 풀었을 때 도달한 답은
'나'였다.
11월 가을에 태어나 고집쟁이처럼 자라난 나에게,
슬며시 짧아지고 있는 가을에 반비례하며 기둥처럼 자라난 나에게,
토파즈나 황색싸리같은 탄생석, 탄생화를 넌지시 외워두며 자라난 나에게,
가을은 전설같은 존재였다.
나의 계절이고 곧 나만의 하늘이라 믿었다.


얼마 전 새해를 맞아 흔히들 말하는 사주팔자를 본 적이 있었다.
할머니 세대같은 요 사주팔자라는 것도 문명에 힘을 입어
모니터에 생년월일 같은 걸 넣어주니 한자며 색깔이며 두루두루 뽑혀나왔다.
노란 빛이 가득한 모니터를 보며 아주머니(사주를 보시던 분?)
말씀은 '土'가 너무 그득히 차있다는 것이었다.


가을에 토지가 무르익듯
나의 사주라는 것에 다른 사람들과 달리 불이나 물이 섞이지 않고
비옥한 가을 땅이 가득했더라고,
그래서 고집도 세고 스스로 나무 뿌리만 깊게 키워낼거라고.


나는 땅이 되어 햇과일, 햇곡물을 키워내고 싶은
아량이 들판처럼 넓은 사람은 아님을 일러둔다.
오히려 가을에 우수수 풀려나는 감이나 밤따위를 좋아할 뿐


아,
그러고 보니 내 이름 또한
밤이나 상수리 나무 열매 따위가 잘 익어 있는 상태를 이르는
것이니 어찌보면 가을에 태어난 나를 위한
우리 아빠의 센스가 묻어나는게 아닌가.


여기저기 이것저것 데려다가 붙이면서
가을땅 같은, 가을 열매 같은,
가을과 내가 아주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니라 고집부려 본다.


하지만
채 익어보기도 전에 떨어지는 단풍구경을 가고
한껏 멋을 부린 바바리 코트를 입는 것은 좋은데
'가을'이란 녀석이 언제 왔다가 언제 떠나는 지도 모르는 채
가을녀석 보다 바삐 살아온 건 아닐까 싶다.


가을이란 녀석이 쭈뼛쭈뼛 숨어들어가며
진정 '전설'로 남아 사라지기 전에
나의 가을, 나의 하늘을 좀더 누려볼 수 있기를
욕심내어 본다.


-Ram


중학교 1학년 때였나,
한창 노래에 관심이 많았던 적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노래를 듣는건 좋아한다)
그때는 노래를 부르는 것도 정말 어지간히 좋아했다.
노래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그때 한창 오디션박스 라는 작은 노래방 비슷한게 유행했었다.
노래를 부르면 자신의 노래 영상이 온라인에 올라가고, 거기서 종종 스타가 나왔다.
연규성도 그렇고, 도은영도 그렇고, 김소정 뭐 등등. 지금은 다 기억이 안난다.
거기서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노래를 잘 부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사실 나는 음치는 아니였다.
초등학교때부터 합창부를 했었고, 합창대회에 나가 여러번 수상하기도 했었다.
합창은 화음과, 음을 잘 맞추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냥 노래는 달랐다.
혼자 부르기 때문에 더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더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각종 오디션 박스 동영상들을 모은 카페에 가입을 하고,
거기서 노래강의를 보며 열심히 연습했다.
말 그대로 글로 배운 것이다.
그 당시 바이브레이션이 꼭 하고 싶었다.
그래서 매일매일 바이브레이션 강좌를 찾아가며, 동영상들을 보고, 글을 읽으며 연습을 했다.
거기서 지금도 기억에 남는게, 피아노 건반을 반음올리고, 반음내려 치면서 따라하라는 것이였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바이브레이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신기했다. 따라하면 되는구나, 연습하면 나도 할 수 있구나. 하고.
그리고 한창 노래를 부를 당시,
시에서 노래대회를 한다고 공고가 붙었다.
친구 중에 나보다 노래를 더 잘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대회에 나가자고 그 친구를 꼬드겨 참가하게 되었다.
(그 친구는 정말 노래를 잘했고, 짧지만 기획사 연습생 시절도 있었다)


그 때 부른 곡이, 녹색지대의 '가을의 전설’.


선곡은 내가 했다.
'가을의 전설'이라는 노래를 알게 된 이유는, 역시 오디션 박스 카페. 하하하.
거기서 누군가가 이 노래로 듀엣을 했고, 그 시절 나는 이 노래에 푹 빠졌다.
그래서 친구랑 이 노래를 몇 번정도 연습하고, 무대에 올랐다.
낯익은, 수백번은 더 들은 반주가 흐르고, 서로 화음을 넣고, 코러스를 넣으며, 그렇게 노래를 마쳤다.
결과는 결선 진출.
푸하.
화음을 넣고 코러스를 맞춘게 심사위원 눈에는 잘해보였나보다.
근데 나랑 내 친구는 뭔가 이 노래가 불만족스러웠다.
사실 이 노래는 원곡이 남자이기도 했고, 우리의 가창력을 보여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둘이 고민한 결과 결선에서 부를 노래는 다른 곡으로 바꾸기로 했다.
그래서 선택한 곡이, 유미의 '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 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둘이 부르기엔 참 메리트가 없는 곡.
화음도 없을뿐더러, 그냥 한 곡을 둘이 나누어 부르는 것 밖에 안되지만, 그땐 진지했다.
가을의 전설은 굉장히 많이 들은 곡이지만, 유미노래는 들은 적도, 부른 횟수도 많이 되지 않아 긴장을 많이 했다.
드디어 결선 당일. 우리 차례가 되었다.
올라가서 노래를 부르는데, 절정인 부분에서 순간 내가 가사를 까먹은 것이였다.
!!!!
친구가 절정 앞부분을 하고 이제 내가 다음 마디를 불러야하는데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친구가 열창하고 있는 그 짧은 순간 속으로 엄청 당황했다. 그리고 빨리 머리를 굴렸다.
분명히 가사를 몰라 내 순서에 아예 노래를 부르지 못하면 그것만큼 웃긴 상황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내린 결론은 …..
가사를 지어내는 것.
하!하!하!하!하!
하하하!
지금 생각해도 정말 웃긴다.
그렇다. 나는 그 부분의 가사를 내가 즉석으로 작사해 노래를 불렀다.
진짜 말도 안되는. 하하하하. 지금 생각하라고 하면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안난다.
그냥 떠오르는 대로, 노래에 내용에 맞게, 그리고 내가 부를 부분 음에 맞게 그냥 불렀다.
물론 몇 마디 되지는 않았지만. 푸하.
그리고 우리는 수상을 하지 못했다.
(ㅋㅋㅋㅋ)
1등은 거미 노래를 불렀던 고등학생 언니가 차지했다.
우리는 그냥 결선진출에 의의를 두며 아쉬움을 떨쳤다.
하하하하하하.
정말 지금 생각해도 재미있는 추억이다.
나랑 그 친구랑 지금 노래는 그냥 취미이자 추억이다.
현재는 노래와는 전혀 관련 없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Epilogue)

그 친구한테 조금 전에 메시지를 보냈다.

나: OO야. 너 혹시 그거 기억나? 가을의 전설
친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Hee


조금씩 스스로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고 있다. 글 모임은 토론 모임과는 조금 다르다. 대화와 말들로 어떠한 주제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공유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글을 쓴다는 것은 토론이나 담화와는 다르게 단순히 자신의 견문을 넓히는 일과는 조금 다른 일이다.


주제에 대한 감정을 써내는 것. 사유를 풀어내는 것. 글이란 것은 쳐다보지 않으면 읽혀지지도 전달되지도 않는 그러한 것이다. 토론과 담화는 상대방이 내 눈 앞에 있기 때문에 그이의 이야기를 다소 지루하더라도 모두 들어주지만, 글은 다르다. 읽지 않으면 그만인 그런 것이다.


좋은 글을 생각해본다. 내가 써왔던 글귀들 중에서 좋았던 것들을 생각해본다. 충만한 감정으로부터 시작된 글들을 바라본다. 충만한 감정으로 쓰여진 글들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구태여 길게 써내지 않아도 좋다고 고집을 부려본다. 짧은 글귀라도 진심을 담아 읽는 이로 하여금 온통 매력적인 한문장을 써내고 싶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의 요즘의 감정들은 피폐하다.


맹목적으로 쓰고 있던 글들을 몇번이고 지워낸다.


가을의 전설은 그러한 피폐한 나의 요즘에 오아시스 같은 존재이다. 시네마천국, 가을의 전설, 로마의 휴일, 흐르는 강물처럼, 러브레터, 레오파드 등등 몇가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영화도 있다.


어쩌면 나는 조금 짓궂을지도 모르겠다. 이번 주제를 가을의 전설로 선정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함께 글을 쓰는 이들은 어찌 생각할까 너무너무 궁금했다. 어쩌면 주제선정은 이렇게 글모임의 묘미 중 하나가 아닐까. 비록 요즘의 나의 감정은 피폐하다 할지라도 이러한 글 모임은 한편으로는 또 나의 삶을 충만케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20대의 꽃다운 젊은이들이 써내는 순박한 글들이 우리를 충만케한다.


-Cheol


‘가을의 전설’하면 많은 이들이 영화 [Legend of the fall]을 떠올리겠지. 명작이니 꼭 보는 것을 추천하지만 영화이야길 하려는 것은 아니다. 어디선가 들었던 참신한 ‘가을 이야기’.


[이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믿거나 말거나.]


일요일 오후, 나오키와 점심을 먹고 동네 공원에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날의 하늘은 구름이 적당히 깔려있는 연한 바다색이었다.


하늘을 보고있던 나에게 그가 물었다.


“혹시 가을하늘 좋아해?”


싫어하는 사람이 있겠냐고 되묻는 나를 보며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우리가 가을이면 쓸쓸해하는 게 이 하늘 때문이야. 가을이 되면 하늘이 굉장히 높아지잖아. 이걸 보면서 우리는 타인과의 거리감을 더 크게 느끼는거지. 공허감도 느껴지니까 더 우울해지기도 하고. 재미있지?”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가 하는 이야기는 사람을 잡아끄는 힘이 있었으니까.


“그리스 신화에서도 가을은 쓸쓸함의 시작으로 나와. 가을은 페르세포네를 잃은 데메테르로 인해서 생겨났어.지하의 왕 하데스가 데메테르의 딸인 페르세포네를 납치해갔거든. 이후에 페르세포네는 제우스의 중재로 1년 중 절반 정도를 지하에서 보내게 되는데, 딸을 보내야하는 대지의 여신인 데메테르의 마음이 무너지면서 생겨난 계절의 시작이 가을이야. 가을의 마지막 수확을 이후로는 만물의 생기가 쇠해지고 추운 겨울이 찾아오지. 딸을 찾던 데메테르의 마음이 가을에 영향을 줬다고 생각해. 비어있는 하늘이나 거친 땅이나 시린 바람같은.”


“그렇게 생각하면 가을보단 겨울이 더 쓸쓸하지 않아?”


“겨울은 봄이 올 것이라는 기대가 있잖아. 눈이라는 축복도 있고. 가을은 다시 힘겨운 겨울을 넘겨야하니깐 절망 뿐일테지. 가을이면 수확을 하는 것이, 추위에 대비하라는 경고와 동시에 감정적으로 불안한 우리에게 주는 데메테르의 선물인거야.


가을은 식어가는 계절이랄까. 쓸쓸함의 시작점? 연인들이 많이 헤어지는 시기이자 새로운 사랑이 생겨나는 계절이기도 해. 가을이면 지구가 서서히 식어가듯 뜨거웠던 그들의 관계도 미지근한 스프처럼 굳어 갈라지는 거지. 세상에서 가장 가지고 싶고 사랑스럽던 상대에 대한 감정이 식어가는거야. 그 와중에 하늘을 보면 더 상심하게 되고 점점 허무해지고. 결국 헤어지게 되고.”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하늘을 보았다.


‘날 스쳐간 그 사람들도 그런 마음이었을까?’


가을 밤 공기처럼 차가워지던 그 사람의 얼굴이, 떠나간 그들을 생각하며 하늘을 바라보던 내가 떠올랐다.


“가을이면 쓸쓸해지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먹을 것이 풍족해지고 우리의 식욕도 왕성해져. 비어가는 마음을 선인들은 책을 읽으면서 다스리라 하셨지만, 우리는 먹는 것으로 해소하지. 성욕과 식욕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건 알지? 마음이 허해지는 가을이니까 우리는 무엇으로든 그 빈공간을 채우려고 하는 것 같아.”


그 결과가 여기 있다는 듯, 그는 가볍게 자기 뱃살을 쥐어 보였다.


“우리가 단풍놀이를 가는 것도 울긋불긋한 새 옷을 입은 나무들을 보며 마음을 달래려고 하는 거야. 자신도 나무와 같이 예쁘게 단장하고, 그 사람과의 관계가 더 뜨거워 지길 바라는 마음, 불씨를 찾아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


“가을이면 권태기가 온다는 거야?”


“권태기랑은 다르달까… 새로운 사랑을 찾으려는 움직임도 생기니깐. 그들이 찾던 불씨가 다른 곳에서 피어나기도 하잖아. 하지만 새빨간 단풍이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 것 처럼 그 사랑은 금방 꺼지지. 떨어진 낙엽들은 길가에 치일 정도로 많고, 그가 가진 사연들에 관심없는 사람들의 발에 밟혀 스러지고. 이런 생각하니깐 더 우울해지네. 어쨋든! 뒤집어 보면 가을은 새로운 사랑을 찾게되는 계절인 것 같기도 해. 어쩌면 우리는 마음의 빈자리를 다시 사랑으로 채우려고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가을이 마음편한 계절은 아니었다. 함께 있으면 편해서 좋다던 그 사람은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났고,생각만해도 볼이 달아오르던 그 사람은 마음 속에 품은 사랑이 많아 날 울렸다. 마음을 주지 않아 가벼워진 연애들로 질려하던 나도 있었다. 그 때는 사랑이 지겨웠고 약간은 슬펐다.


나오키의 이야기를 믿진 않았지만, 지금은 누구나 한 번은 겪는 자연의 섭리 정도로 정리했다. 우리가 언제까지 함께 할 수 있을까? 언젠가 찾아올 공허감으로 서로를 싫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누구의 마음이 먼저 멀어질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아니었으면.


우리는 저녁으로 무언가 맛있는 것을 먹기로 했다.


-Min


2014년 2월 9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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