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삼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 사백 열 두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감정은 자꾸 커진다.


신체에 사람을 생각하는 어떠한

기관이 있다면

뇌나 심장이나 그런부분 말고


신경을 타고 흐르는

그런 짜릿한 어떤

시큰한 부분이 아닐까.


어느 날은 코끝이 시큰하다가도,

심장이 아닌 어떤

감정의 통로가 아려오기도 한다.


감정의 새삼스러운

변화들.


늘 감정을 누그러뜨리려는

다짐과는 다르게

그대로 너를 찾고야 만다.


멀어지려 다짐하다가도

이내 주변에서 맴도는 일을

채 삼일을 넘기지 못하고

행하고야 마는 것이다.


저릿저릿하도록

신경을 자극하는 감정을


나는 끝없이 탐닉하고,

연구하고,

밀어내는 굴레속에 집어넣고야 말았다.


나는 그렇게 너의

인생 어스름을 붙잡고 만 것이다.



-Ram


세워둔 계획을 막 미루고 싶을 땐 다이어리에 적어둔 의미심장한 문구들을 찾아 읽는다. 과거에 내가 했던 결심들, 들었던 조언들, 가족들이 써준 편지, 소중한 친구들이 해준 응원들 등등. 그러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마구 사명감 비스무리 한 것들이 조금씩 꿈틀거리면서 계획을 실행할 동기의 밑거름이 되어 준다. 하지만 이것도 건강하고 튼튼한 체력이 뒷받침되는 전제하에 가능한 이야기. 몸이 피곤하면 동기고 뭐고 아무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게 현실. 체력관리를 잘하자.



-Hee


1.

유효기간이 고작 삼일 짜리인 결심을 하기란 쉬운 일이다. 쉬운 결심이어서 대수롭지 않게 결심을 어기는 일도 더 쉬워진다. 금연이나 식이조절을 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몇 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어겨버리는 경우는 얼마나 흔한가. 또 결심이 삼일만 지나면 흩어지는 사람에게 작심삼일을 무한정 반복하면 된다는 말은 얼마나 우스운가.


2.

결혼식보다 혼인신고를 먼저 했다. 되돌릴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는 생각에 조금 무섭고 떨떠름한 기분이다.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해서 삶이 안정되고 단단해진 것 같다는 말을 하길래 그렇게만 믿었는데 작은 배신감이 들었다. 연신 좋아하는 지영은 기쁘지 않냐고 자꾸만 물어보는데 차마 지금 기분을 그대로 표현할 수는 없어서 아직 결혼식을 하지 않아서 그런지 생각보다 덤덤하다고만 둘러댔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혼인신고를 해도 사랑은 법적으로 강제되지 않는다. 기혼자가 된 지금도 여전히 사랑은 셀프다. 그래도 좀 다른 점이 있다면, 전에는 애정이 흩어질 때마다 며칠은 그런 채로 그냥 지냈었는데 이제부터는 그런 기미가 보일 때마다 재깍재깍 바로잡아줘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전과 다른 안정감을 갖게 되지 않을까.



-Ho


몇달 전, 사흘이 왜 4일이 아니고 3일인가에 대하여 인터넷에서 논쟁이 뜨거웠다. 모든것을 줄여 말하고 바꿔 말하는 신세대의 조어 기술과 구어가 민물-바닷물의 경계처럼 만나는 지점이었으리라.

내가 뜬금없이 삼일-사흘 논쟁을 끌어오는 이유는 이번 도란도란 프로젝트의 주제가 작심삼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작심삼일에 대해 한참을 멍하니 생각하다가, 주제가 떠오르지 않아 머리를 쥐어 뜯었다. 단어를 소리내서 말하기도 하다가, 눈을 감고 작심삼일을 상상하다가, 마침내 단어를 분리해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삼일’을 생각하다가 기껏 떠올린 것이 사흘-삼일 논쟁이라니.

그나저나 도란도란 프로젝트는 정말 신선한 곳에서 주제어를 가져온다. 바로 전에는 스케일링으로 글을 짓자고 하더니 이번에는 어디서 날아오는지 모르는 ‘작심삼일’이 주제다. 마치 전쟁터 한복판에 떨어진 병사같다. 어느쪽에 아군이 있는지도 모른 채 어떻게든 살아남고 봐야 한다. 신기한 건, 다른 도란도란 맴버들은 글을 쓸 때 어떤 주제라도 능숙하게 소화한다.

힘들게 한 주제에 대해 글을 쓰고 나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썼을까 싶어 팔짱이라도 끼려 하면 다른 이들은 내 글이 한없이 작아지도록 맛있는 글을 내놓는다. 들어온지 얼마나 됐다고 두 번이나 지각 경고를 받았다. 물론 싫은 것은 아니다. 누군가 내게 무엇을 달라고 닥달당하는 기분이 흔한 것은 아니니까.


“소고님 오늘 8시 전까지 부탁드려요!”


오늘도 H로부터 경고를 한 통 받았다. 이건 작심삼일과는 다른 증상이다. 미룰 수 있을 만큼 미루다가 등 떠멸려 하는 일. 한없이 늘어졌다가 계획의 마지막, 그리고 그 마지막의 마지막 데드라인까지 박박 긁어서 일을 마치는 현상. 이를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까. 마음을 먹다. 그러니까 ‘작심’은 여전할 것이니 작심+OO의 형태로 말을 지을 수 있다. 이제 뒤에는 ‘마침내 끝내다’ 같은 의미가 들어있어야 한다. 종착? 종결? 아니다. 작심종결-같은 말은 재미가 없다. 이렇게 되면 신조어를 만드는 즉시 사흘-삼일 논쟁처럼 MZ세대들로부터 잊혀질 것이다. 어떡하지. MZ세대의 댓글 몽둥이가 벌써부터 두렵다. 이들은 zoom 수업에서 퇴근하는 기세처럼 맹렬하게 나를 공격할 것이다. 아직.. 작심.. 못하다.. 작심.. 그래. 이거다.


아직못하심?


이거다. 드디어 나는 작심삼일 말고, 마감때까지 질질 끄는 현상을 설명할 단어를 연성하는데 성공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뿌듯한 표정으로 H에게 보낼 이메일을 적기 시작했다.


“H님. 제가 작심삼일에 대한 글을 적어왔습니다. 그런데 주제를 그냥 쓰는 일은 좀 뻔한 것 같아서요. 제가 여러분들을 놀래킬 수 있는 신세계 단어를 조어해봤어요.”


나는 여기까지 적고는 신나서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다가 일을 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저는 이런 사람들을 ‘아직못하심’형 인간으로 부르기로 했어요. 작심삼일-인간, 아직못하심-인간. 어때요? 훌륭하지 않나요?”


‘전송’


나는 여덟시 전이라는 마감을 지켰을 뿐 아니라 이번에야말로 걸작을 완성했다는 성취감에 뿌듯했다. 이게 글쓰기지. 암.


며칠 후 H로부터 답장이 왔다. 답장은 친밀한 뉘앙스로 짧게 두 줄 적혀 있었다.


“소고님, 이메일 잘 받았습니다. 그런데 미룰 수 있을때까지 시간을 미루는 사람들이요. 보통 ‘벼락치기형 인간’이라고 부르지 않나요? - H”



-소고


2021년 11월 28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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