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2)"

도란도란 프로젝트 - 사백 열 세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달력 마지막장을 열어서

책상에 두었다.


찬바람이 귀끝을

시리도록 간질이는

계절이 왔다.


내가 좋아하던 것들을

한 번씩 정리하는

마지막 달.


좋아했던 기억은

그대로 고이 달력에 담는다.

계획했던 많은 날들을

그곳에 둔다.


슬펐던 기억도

달력 어느 칸, 어느 곳에

자리했다.


1년을 보낸 덤덤한 달력만이


얼마나 치열하게,

혹은 얼마나 소중하게,

보냈는지를 담아둔다.


지나가면 별 것 아닌 일들에

왜 그렇게도 아프게,

슬프게, 어쩌면 행복해 마지않게

보냈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럼에도

그렇게 내가 조금씩

커가고, 바뀌고, 겪어온 많은 것들을

마지막 장 달력만이 얘기해 준다.


잘 지냈다고,

올 해에도 이렇게 잘 지켜냈다고.


추운만큼 어쩌면 내년은

조금 단맛이 나는 날이

많아질거라고.



-Ram


이사 올 때 그 많던 달력을 다 버렸다. 날짜가 무슨 소용이람. 아직 올해가 한 달이나 더 남았지만, 더 이상 날짜의 의미가 없어 보였다. 날짜에 얽매일 필요도, 디데이를 세며 기다리고 있는 날도 없었으니까. 하루하루 꽉 채워 보내면 그걸로 그만이니까.



-Hee


1.

나는 달력을 보고서 다음을 생각하기보다는 이전을 회상하는 사람이다.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둔 달력을 어쩌다가 우연히 한 번 보게 되는 사람. 서너 달 전쯤에 멈춰있는 달력을 제시간으로 넘겨놓으며 서너 달 전 즈음에 있었던 일을 잠시 생각해보는 사람. 스마트폰 하나면 시계도 달력도 필요 없다는 사람. 십 년이 넘도록 집에 벽 시계, 달력 한 번 사서 달아본 적 없는 사람. 매일 아침 오늘만 어떻게 간신히 넘겨보자는 사람에게 달력은 그리 필요치 않은 물건이다.


2.

연말이라 선물로 받은 내년 달력이 벌써 몇 개나 된다. 괜찮은 탁상달력 하나를 회사에 가져다 두고 나머지는 버리려다가 괜히 내가 미래가 없는 사람같이 사는 것 같이 느껴져 오늘은 집에 달력 하나를 걸어봤다. 내가 아는 달력의 쓸모라곤 삼겹살 기름 튀는 걸 막으려고 바닥에 깔아두는 게 전부였는데 집에서 고기를 굽다가 몇 달 뒤의 달력까지도 뜯어내게 되지는 않을지. 불안한 예감이 스친다.



-Ho


12월 즈음이면 나는 달력대신 노트를 산다. 하나 둘씩 쌓인 노트는 어느새 네 권이 넘었다. 다시 들춰볼 것도 아니면서 검은 노트는 계속 쌓인다. 음료라도 흘러 쭈끌쭈글해진 종이를 쥐고 펼쳤다 접었다 한다. 일년이 손바닥만한 종이 한 뭉치로 끝난다 생각하면 마른 입맛만 다신다. 애먼 볼펜 뚜껑만 만지다가, 펜을 굴리다가.



-소고


2021년 12월 5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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