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사백 서른 일곱 번째 주제
언제였을까,
어느 순간 우리가 너무 많이
와버렸다고 느꼈다.
널 사랑한다는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모르겠어서,
널 보고싶은 생각이
어디 쯤에서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쯤이 우리가 다른 길을
가야하는 순간 이구나.
우리가 너무 빨리, 멀리
와버린거구나.
여기까지 오는 동안
너를 만나는 시간이 즐거웠다.
설렜고, 재밌고
기다려졌다.
그러다 문득
쉬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널 사랑하는 마음이 식어서가 아니라,
널 더 보고싶지 않아져서 였을 것이다.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은
딱 여기까지가 우리의
같은 목적지여서 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 다음부터는
각자의 길을 향해
가는 게
우리에게 더 나은 길이라는 걸
알아버려서 였을 것이다.
우리는 이 즈음 까지가
함께할 목적지였다.
-Ram
1.
그래도 그땐 이 정도까진 아니었었는데.
며칠의 지방 출장이 있어도 새벽같이 일어나서 의욕 넘치게 집을 나섰고,
중간에 휴게소에 잠시 들러 평소에 카페에서 절대 먹지 않던 메뉴를 주문한 후 마시며 다시 차에 오르기도 하고,
멍하니 하늘과 다른 차들을 바라보며 저 차들도 출장을 가는 길이겠지, 일하러 가는 길이겠지,
직장 상사의 차에 함께 타고 있어도 시시콜콜 그냥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때우곤 했었는데.
지금은 어딘가 잘못된 것임이 틀림없다.
2.
가족여행은 앞으로도 자주 가고 싶다.
돌이켜보면 가족끼리 매년 여행을 가긴 했었는데, 해외에 나와 있으니 쉽지 않다.
그땐 가득 찬 개인 스케줄을 조정하며 가족여행이 뭔가 의무 같았고, 솔직히 짐처럼 느껴지기도 했었는데,
중간에 휴게소에서 나눠먹던 핫도그, 두 손 무겁게 산 간식들이 그리울 줄이야.
생각해보니 나는 참 나 밖에 몰랐다.
-Hee
1.
요즘 들어 날씨는 항상 좋고 산뜻한데 무엇 하나도 즐거운 일은 없다. 결혼 준비는 진작부터 재미가 없었고 지영과의 관계는 점점 더 서로를 피폐하게 만든다. 그래도 전에는 그걸 이겨내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은데... 게다가 몇몇 사건들은 왜이렇게 아등바등 살아야 하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언제 허망하게 끝날지도 모르는 게 삶인데. 가능하다면 싫은 일따위는 다 미뤄두고 멀리 떠나고만 싶다.
2.
최근에는 지영의 감정 쓰레기통 역할에 지쳐서 제발 불평 좀 하지 말라고, 화가 나고 힘들어도 스스로 좀 삭히고 소화하라고 애원했었는데 정작 나 역시도 일주일에 한 번 밖에 안 쓰는 글을 통해 듣기 싫은 소리만 적어두고 있다. 한가득 적었다가 몽땅 다 지웠는데도 남은 게 고작 불평뿐이라니. 좋아서 하는 글쓰기도 더 이상은 쉼이 되어줄 수 없는 것인가, 아니면 그걸 뛰어넘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중인가. 환장할 일이다
-Ho
휴게소:
인내의 중간에 주어지는 장소. 휴게소가 목적지가 될 수 없기에, 휴게소는 휴식의 공간이면서도 끝이 될 수 없다. 중간 정거장에서 쉬는 기분은 무얼까. 어딜 가기 위해 이렇게 쉬어야 하나. 그렇지만 휴게소에서 잠깐 정차하는 것도 낭만일 수 있다. 가솔린 시대엔 그렇지 않았지만 전기차 시대라면 더욱 낭만적일 것이다. 재미난 일은 항상 무엇이든 해야 하는 곳에서 생긴다.
-소고
2022년 5월 22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