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사백 마흔 여덟 번째 주제
요즘엔 꽃을 틔우는 데에 중요한
꿀벌이 정말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그럼 이 수많은 꿀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우리는 나중에 꿀이라 부르지만
결국 설탕을 녹여만든 것들을
먹게될까?
꿀은 아무것도 아닌
특별하지 않은 어떤 음식이자 재료인데,
자꾸 들여다보면 특별해진다.
여행지에서 튜브에 담긴 꿀을 고르던 나도,
항아리같은 유리병에
꿀을 나눠주던 엄마도,
별 것 아닌 것에 특별해진다.
자꾸 들여다보면
그런 사소한 것들을 기억하게 된다.
아니 어쩌면
꿀벌을 잃어가는 사람들처럼,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계속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Ram
마냥 달콤한 꿀을 기대했다가 꿀은 커녕 달고 단 설탕 한 톨도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아무도 온전한 위로를 해주지 못할 것 같았는데, 엄마한테 위로를 받게 될 줄이야. 엄마는 내가 하는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하게 들어주었고, 화자에게 필요한 리액션을 적시에 해주었으며, 마지막은 내가 했던 경험들과 매우 유사한 과거 자신의 경험까지 덧붙여주었다. 아주 완벽 그 자체의 위로였다. 살면서 무의식적으로 엄마(그리고 아빠, 또는 가족)에게 내가 슬펐거나 힘들었던 경험을 의도적으로 말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었는데, 그게 잘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적당한 털어놓음은 괜찮았던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엄마란 고맙고 감사한, 그리고 위로가 되는 존재.
-Hee
고모가 선물받은 석청을 면포로 힘겹게 짜낸 뒤 할아버지가 드실 꿀이라며 나에게는 감히 손대지 말라고 하셨다. 걸러진 꿀을 단지에 옮겨담은 뒤 그릇에 남아있는 꿀을 설거지하듯 행궈낸 맹맹한 꿀물이 내 몫이었다. 엄마가 아카시아꽃 꿀샘을 이쑤시개로 찍어서 먹여줬던 꿀맛과는 괴리감이 큰, 서운한 맛이었다. 하지말라고 하면 더 하고싶은 법. 고모가 외출한 뒤 찬장에 숨겨둔 꿀단지를 열어 한 숟가락 가득 퍼서 먹은 꿀은 환희에 가까운 맛이었다. 머리가 울리는 단 맛. 오래도록 입 안에 맴도는 향.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던 맛.
그 뒤로도 몇 번이나 꿀을 몰래 먹다가 결국 고모에게 들통났다. 말 안 듣는 나를 혼내던 고모. 고작 먹는 것으로 그러지 말라며 고모를 꾸짖던 할아버지. 방학이 끝나고 나를 데리러 온 엄마에게 내가 참 좋아하더라며 남은 꿀을 단지 채 건네주던 할머니. 그때부터 꿀이라는 단어는 내게 남의 것을 훔쳐 먹는 기분이 들게 한다.
-Ho
최재천과 프응을 본다. 나는 생태와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에 매료된 사람은 아니지만 이형체가 주는 다이나믹스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소고
2022년 8월 7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