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도란도란 프로젝트 - 사백 일흔 다섯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나는 묘하게

자꾸 신경쓰이는 사람이 생기면,

으레 더 쳐다보지 않으려한다.


오기도, 욕심도 아닌

약간의 쑥스러움일 것이다.


그러다가 그를 더 의식하게 되고

생각하게 되고

궁금해하면서


그를 이해하고 싶은 지경에

이르게된다.


공감하고 싶고

공감 받고 싶고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의 행동에 의미가 있길 바라며,


그런 잔인한 희망으로

며칠을 보낸다.


그렇게 고약한 날들에 나를

녹여버리고 나면

그제서야

사실 알고 있었다는 그 눈치가

얼마나 나를 쪼그라들게 하는지,


내가

사랑하는 마음이 뭔지도 모르는데

널 어떻게 이해하겠어.


그저 끄덕이고 따라가면서

네 말에 공감했을 뿐이다.

공감하는 척 했을 뿐이다.


그렇게 나 혼자만의 마음을

늘렸다가 없앴다가 한다.



-Ram


1.

'난 어떻게 보면 아무 사이도 아니지만 들어보니 나도 열받고 속상하네'

왜 저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고, 일어난 배경이 어땠는지도 이해하고, 왜 누군가가 열이 받는지, 왜 누구는 눈물을 흘리는지 단번에 공감하여 나온 어떤 이의 한 마디.


2.

카톡이 왔다. 한 단어, 한 마디, 한 문장, 한 표현에 전부 공감이 됐다. 관계에 대한 끈끈함과 의리가 더해져 더할 나위 없이 상대방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내 참을 수 없는 속마음을 술술 풀어놓고 싶었다. 하지만 마냥 화살을 쏘아댈 수도 없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최대한 부드럽게 돌리고 돌려서 이야기했다. 결국 이건 직접 느끼는 당사자의 생각과 마음이 가장 중요할 테니까. 부디 슬기롭고 지혜롭게 헤쳐나가길.


3.

근데 체득이 공감보다 무섭다?



-Hee


주중에 쌓아둔 설거지를 하고 어질러진 집을 청소하는 일은 내가 혼자서 다 해줄 수 있지만 지영이 쌓아둔 스트레스까지 나누는 일은 내가 해결해 줄 수 없는 문제다. 죽어버린 감정과 하소연을 나누는 일은 스트레스에 취약한 나를 병들어 앓게 만든다. 지영이 민원인에게 받은 욕설과 폭력을 묘사하고 있을 때, 이미 내가 수차례 죽여버렸던 식물들의 기분을 이렇게 간접 체험하며 벌받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조건적인 공감이야말로 지영이 생각하는 사랑의 충분조건이라서 지영은 이 문제에 대해 타협할 생각이 없다. 스스로 해소해 본 역사가 없기에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는 맹목적인 믿음. 사랑한다면 어디까지 공감을 해줘야 하는가. 나를 버려가며 공감해주기는 싫었던 어제, 지영은 사랑의 부재를 경험하는 사람의 처량함을 토로했다. 30년간 학습된 공감능력의 한계치가 낮은 나는 그저 기계처럼 뚝딱거리기만 하고 싶다.



-Ho


그녀는 고개를 한번, 두 번 끄덕였다. 긍정의 표시였다. 동시에 마음속으로 고개를 한번, 두 번 저었다. 부정의 표시였다.


그녀는 공감보다는 동조에 더 익숙했다.

마음속에 나오는 진심으로 긍정하는 공감보다,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상대방이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 있는 동조가 더 쉬웠다. 물론 자신의 주관이 없어진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뭐 어쩌겠는가. 그녀는 감정표현에 솔직한 사람이 아니였고, 많은 것에 신경쓰면서 살아가는 것에 치를 떨었다.


'...'


그러나 가끔씩 차오르는 피곤함과 짜증, 그리고 일종의 분노는 그녀에게 사람을 싫어할 여지를 주었다. 그녀는 부정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낙천적인 사람도 아니였기 때문에 그런 마음을 쉽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이 지경까지 온건가.'


그녀는 거울 앞에 섰다. 평범하게 생긴 자신이 징그럽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당연하지. 자기 주관 따위는 없으니까.'


그녀는 곧장 뒤로 물러나며 인상을 썼다. 말도 안되는 자기 자신의 상상이었다.


거울에는 웃는 자신은 커녕 인상을 쓰며 식은땀을 흘리는 그녀만이 비쳤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진짜라고 해도 스트레스라는 핑계를 대고 싶었다.


그녀는 거울을 보고 입꼬리를 올렸다.

거울은 그녀를 따라 입꼬리를 올렸다.

그녀는 거울을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

거울은 그녀를 따라 눈썹을 찌푸렸다.

그녀는 거울을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거울은 그녀를 따라 입술을 깨물었다.


'...'


왠지 스트레스가 가시는 느낌이었다. 이렇게라도 감정을 표현하니 좀 나아지는 것 같았다.


'아니… 이걸 시작으로 해야지.'


거울을 보고 감정 표현과 솔직함을 연습하는 것. 그것이 그녀가 공감까지 이르기 전의 시작이었다. 앞으로의, 작지만 큰 시작이었다.



-Om


2023년 2월 12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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