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

도란도란 프로젝트 - 마흔아홉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열 다섯 즈음이었나,
딱 그 나이대에 고를 수 있었던
부담스럽지 않은, 아니 어쩌면 저렴했던
아주 빨갛고 반짝이고 약간은 촌스러운
장지갑을 엄마선물로 드렸었다.


그리고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금 읽으면
얼굴이 붉게 물들고 말
편지 아닌 시를 지어 드렸다.


말 그대로 낙엽이 굴러가기만 해도
웃음이 헤실헤실 나오던
나이여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여전히 생채기 하나 없는
부끄러운 고운 내 손이
모든 세상을 품은 엄마의 손을 보며
아릿한 마음에 지어드렸던 것 같다.


내용인 즉슨,
엄마도 나처럼 소녀시절이 있었을테고
멋진 여자를 꿈꾸며 예쁜 시절을 상상했으리라고.
당신이 품었던 현란한 꿈이 아니라
내가 당신의 품안에 있는 현실임에
슬퍼하지 않고 아껴주어 고맙다고


서툰 감성을 꾹꾹 눌러담아 조심스레
올려두었던 편지는
지금도 엄마의 새 지갑안에 조심스레
자리잡고 있다.


작년 끄트머리가 다 헤지도록 바꾸지 못한 새빨간 지갑을
이제는 좀 더 성숙한 것으로 바꾸어 드렸는데도
못난 딸이 지어준 편지는 그 자리 그대로
엄마의 새 지갑속에 들어있었다.
여전히 그대로.


-Ram


1.
언제나 엄마의 지갑은 항상 굳게 닫혀있었다.
엄마는 어릴 적 부터 쉽사리 내게 지갑을 열지 않았다.
초등학교 4학년때였나. 친구들이랑 수영장을 가기로 약속했는데, 용돈을 다 써버리고 없었다.
그래서 엄마한테 수영장가야한다고 용돈을 달라고 하니, 절대 정말 절대로 주지 않으셨다.
친구들이 하도 내가 나오지 않아서 우리집까지 찾아왔으나, 엄마는 단호하게 안된다고 하셨고,
그래서 친구들은 돌아갔고, 덕분에 나는 골이 나서 방에 들어가서 문닫고 괜히 서러워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 후에도 엄마의 지갑을 여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였다.
학교 준비물 등등 필요한 돈이 있어도 엄마에게 말하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단 한번도 엄마가 쿨하게 ‘아 그래? 잠시만’ 하면서 지갑을 쉽게 연 적은 없었다.
준비물 같은 경우에는 충분히 말했어도 괜찮을 법 했는데, 방 안에서 엄마에게 대화할 레파토리를 다시금 생각해 준비하고 나왔다.
이러이러한 이유로 여차저차해서 조금의 돈이 필요하다고.
엄마의 단호함은 내가 아무리 떼를 써도 안된다는 것을 애초부터 깨달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내가 가지고 있는 돈(어차피 그것도 80%이상은 엄마가 주신 돈이지만)의 한도내 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했다.
어렸을 적엔 우리집이 솔직히 찢어지게 가난한 것도 아니면서 왜 그러셨나, 엄마를 많이 원망했다.
하지만 크면서 조금씩 돈의 중요성, 소비의 중요성을 알아가며 조금은 엄마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2.
요즘에 '유나의 거리'라는 드라마를 보고있다.
유나는 소매치기다. 거리에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돈있는 사람들의 지갑을 마구 턴다.
그래도 나름의(기준은 없다) 양심은 있어서, 자신의 소매치기 행위를 합리화하려 노력한다.
그 중 큰 이유는 바로 엄마다. 엄마가 어릴적, 소매치기 아빠를 벗어나기 위해 자신마저 버리고 갔다고 생각하고, 그 것을 소매치기하기 합당하다는 이유로 조금은 합리화한다.
유나를 사랑하는 창만은 유나의 소매치기 행위를 보고나서도 피하지않고 계속해서 유나를 만류하며 범법행위로부터 지키려한다.
대부분은 유나가 소매치기인 것을 알고 편견과 선입견을 갖고 유나를 색안경끼고 보기 시작하지만,
창만은 유나가 왜 그런 행위를 하게 되었는지, 유나에게 어떤 상처와 아픔이 있기에 그렇게 살아야만 했는지,
유나를 이해하려 한다.
유나 이외에도 등장하는 극중 인물들 전부가 다들 각각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
그 사연들로 인해 그 인물들이 현재를 살고 있다.
범죄, 불륜, 야반도주 등등 소재는 자극적이지만, 그냥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 모두 다를 것 없이 느껴졌다.
모두가 각자의 사연과 힘듬이 있고, 그에 따른 인과관계로 인해 현재를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나쁜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착한 사람도 없다. 자신을 지키려, 상처받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현재를 구구절절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길 바라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3.
조만간 예쁜 동전지갑을 하나 사서 포장할거다.
고운 색의 카드도 사서 편지를 쓸거다.


-Hee


항상 밥을 먹는다던지 커피를 마시고 나오면 그 사람은 날 쳐다보았다.
그리곤 곧 장난기 가득 찬 눈빛으로 날 바라본다.
그러면 내가 묻는다.
“응? 왜? 아! 맞다 또 지갑” 아차 하며 지갑을 가지러 휘리릭 하고 뒤돌아 서는 순간,
그이는 “짜잔~” 하고는 내 지갑을 내민다.
그렇게 항상 내 지갑을 챙겨주던 이가 있었다.
그리고 다시 몇 걸음 못 가서는 그이가 웃음을 참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아! 맞다 핸드폰!” 아차 하며 휘리릭 하고 뒤돌아 서는 순간,
“자 여기” 하고는 웃어준다.
그럼 나는 씨익 웃고는 그이 어깨에 팔을 걸치고 기분 좋게 함께 퇴장.


그런 그 사람을 이별해 보내고 난 지금, 나도 모르게 문득 문득 뒤를 돌아본다.
그러면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묻는다.
“응? 뭐가 있어요?”
내가 대답한다.
“아 아니에요, 항상 지갑을 두고 다녀버릇해서”


핸드폰은 왼쪽, 담배는 오른쪽 그리고 지갑은 뒤쪽 호주머니.
모두 잘 있나 오늘도 확인.


-Cheol


Out Out.


2014년 12월 10일. 자취인지 출가인지 가출인지 독립인지 모를 이사를 했다. 29살이 되어서야 한국에서 처음으로 자취라는 것을 해본다. 물론 완전히 처음은 아니다. 호주에서 워홀을 하면서 쉐어하우스 개념으로 많은 사람들과 한 집을 나누어 살아본 적은 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 집이 내 명의는 아니었다. 그냥 나는 거기에 머물었을 뿐 조금도 소유하지 않았다. 이번은 다르다. 이 집의 보증금을 구하기 위해서 필요한 돈을 은행을 통해서 대출을 받아야했고 매월 월세를 감당해야한다. 관리비, 전기세, 수도세, 가스비, 인터넷 사용비, 정수기 렌탈비, 그 외 가구나 전자제품에 드는 비용과 식료품을 사는 데 들어가는 비용 같은 집과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것들을 스스로 모두 감당해야한다. 2014년 12월 10일. 29살. 서른을 채 한 달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의 일이다.


현실적으로 가장 걱정되는 것은 지갑의 무게이다. 아버지는 지갑의 두께야말로 남자의 자존심이며 언제든 현찰을 쓸 수 있도록 적어도 5만원의 돈은 지갑에 넣어둬야 한다고 하셨다. 하지만 5만원의 돈을 지갑에 항상 넣을 수 있을 정도의 여유 따위는 없다. 그것은 오히려 내게 사치에 가까울 정도였다. 지갑의 무게가 두꺼웠던 적은 없지만 요즘은 이상하게 더 가볍게 느껴진다. 물리적으로 지폐나 동전보다는 카드를 더 사용하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이상하게 내 몸의 값어치가 그만큼 더 가벼워진 느낌도 든다. 평일기준 평균적으로 하루에 12시간의 일을 한다. 행복한 삶은 ‘일’과 ‘휴식’과 ‘놀이’가 균형 잡힌 삶이라고들 이야기하지만 일하는 시간은 절대 줄지 않는다. 고로 일을 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남은 시간을 휴식과 놀이에 효율적으로 배분해야만 한다. 휴식의 대부분은 수면이며 놀이의 대부분은 술자리나 TV시청이다. 그래서 잠을 줄여가며 놀거나, 잠을 자기위해서 놀지 못하는… 언제나 둘 중 하나에 대한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채, 피곤함과 억울함이 가득 찬 삶을 살고 있다.


처음부터 집을 나오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 두려웠다. 해외에서야 아는 사람이 전혀 없으니 자취를 하는 것은 그냥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였지만, 한국에서는 사실 그럴 필요가 없다. 내 방이 있고, 나는 그곳에서 무료로 생활할 수 있다. 무료로 가족들을 위해서 요리와 빨래 그리고 청소를 해주시는 어머니도 있다. 집에 대한 어떠한 요금도 사실은 지불할 필요가 없다. 나는 그 곳에서 조용히 순응하면서 돈을 모으며 살면 되는 것이다. 잘 맞지 않는 것은 맞춰가고, 잔소리를 좀 들은들 좀 참아가면서… 하지만 그것이 싫어진 것이다. 무언가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어떤 것을 느꼈다. 마치 숨이 멈출 것 같은 답답함, 그리고 올해 어느 순간부터는 가족들과 한 집에 살고 있지만, 함께 살고 있지는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떠한 권력도 가지지 못하는 동시에 어떤 기대도 충족시켜줄 수 없는 실패자이자 이방인의 느낌. 그것이 집을 낯설게 했다. “이곳이 어쩌면 내 집이 아니였는지 모른다. 아니 애초에 내 집은 없었다.” 라는 생각이 스쳐갔을 때 나는 2013년 4월쯤에 학교에서 받았던 상담사가 첫 상담이 끝난 뒤에 나에게 했던 말을 기억해냈다. “빨리 집을 나오세요.”


모아놓은 돈도 없고, 좋은 직장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그저그런 평범한 인생이지만 그냥 한 번 나와서 살아보자. 하고 집을 알아봤고 결국 이사를 했다. 나올 때 가족들과 그나마 좋게 나오고 싶었는데 뭐 그것도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덕분에 집에서 받은 도움은 전혀 없었다. 한 가지 확실히 좋은 점은 내 집에 올 때는 더 이상 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몇 시에 집을 나서야할지… 몇 시에 집에 들어갈지 따위를 걱정하지 않는 것이 좋다. 누군가에게 잔소리를 듣거나 눈치를 보면서 밥을 먹지 않아서 좋다. 어머니의 밥보다 맛있지는 않지만 만들어 먹는 밥이 맛있고 먹은 후에 좋은 기분이 든다. 짐은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았다. 내년 2월에 뉴질랜드로 떠나는 선배의 살림살이를 그대로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적지 않은 돈을 아낄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올해의 성취라고 할 만한 것이 있을까. 첫 번째 성취는 금연이다. 술을 많이 줄인 것과 더 이상 수면제를 먹지 않는다는 것도 성과인 것 같다. 두 번째 성취는 애인을 만난 것이고 여전히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며 마지막 세 번째 성취는 독립인 것 같다. 결론적으로 내면의 내가 상당히 안정되고 좋아진 것 같다. 앞으로의 과제이자 내년의 목표는 외면의 나를 성장시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좀 더 단단해져야한다. 지갑을 불리고 싶다. 더 큰 꿈을 꿀 수 있도록.


-Bor


2014년 12월 14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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