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마흔여덟 번째 주제
우리는 하루가 멀다하고
늘 투닥거리는 남매였다
돌아보면 우리는 그렇게
친절한 누나도 아니었을뿐더러
싹싹한 동생도 아니었다
같은시기에 사춘기를 함께 겪으며
한 지붕 아래 말 없이 지내던 때가 며칠이나 되곤 했었다.
동생이 슬슬 내 어깨너머로 불쑥 커버리고
한츰 굵어진 목소리로 스스로의 존재감을 나타낼 때에
나는 더욱더 움츠러들고 숨어드는 누나였다.
우리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등돌리며 자라왔다.
친하지도 않았고 딱히 사이가 나쁘지도 않았다
미적지근한 사이였다
우리는 너무나 달랐고
같은 집에 태어나 같은 부모아래 자랐지만
원하는 길이 너무나 달랐다
내가 성인이 되고 집을 떠나 살면서
동생이 어느새 내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어렴풋이 철이 들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쑥스러운 대화를 이어가기도 했고
가끔은 어른인척 어색하게 커피를 홀짝이기도 했다.
어느날 내가 한없이 나약한 존재임을 알아차렸을 때
유일하게 기대려고 돌아본 존재가 동생이었다.
늘 한뼘 아래 내려다보며 작아보이기만 했던 아이였는데
어느새 커서 이기적인 누나를 지탱하려들더라.
한때는 철없이 오빠라는 존재를 갈망하기도 했다
‘첫째'라는 꼬리표가 한없이 무겁기만 했고
'첫째'이기에 해야만 하는 모든 것들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남동생보다는 여동생을 원하기도 했고
외동이길 바란적도 있었다.
지금은 남동생이 있음을 다행으로 여긴다.
내가 더 해줄 수 없는 누나임이 미안하기도 하고
때로 나보다 더 어른스러운 행동으로
어깨를 내어줄 때엔 코끝이 찡하도록 가슴이 저릿하다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마음이 충분히 커주어 감사하고
또 애써 투정부리지 않아 기특하고
늘 어디서든 빛나는 동생이었으면 한다.
내 동생이어서 고마워.
- 철없는 누나가
-Ram
1.
땡볕아래 어느날 운동장에서 한 여자아이가 쓰러졌다. 그 여자아이는 선생님 등에 업혀가 급한대로 숙직실에 몸을 뉘였다. 여자아이는 의식이 없었다. 그로부터 몇십 분 뒤, 여자아이의 어머니와 여동생이 숙직실에 도착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양호선생님에게 자초지종 설명을 듣고 나서야 소란스러운 분위기는 가라앉았고, 그 여자아이도 의식을 되찾아 눈을 떴다. 선생님이 여자아이의 어머니한테 직접 전화해서 알렸기 때문에 여자아이의 어머니가 학교에 오신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선생님이 여자아이의 어머니에게 전화하기도 전에 여자아이의 동생이 어머니한테 뛰어가서 우리 언니가 죽는다며, 쓰러졌다며, 울고불고 어머니를 모시고 왔다고 한다. 그 당시 그 여자아이와 동생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둘다 어렸기 때문에 매일 싸우고, 다투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들만 하고, 서로가 어떤 피해를 보던지 그냥 자기주장만 하기 바빴었다. 서로에게 우정이고, 자매애고 전혀 없다고 생각했었던 그 여자아이는 동생이 그렇게 그 여자아이를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듣고 마음속 깊은곳에서 뭉클한 무언가를 느꼈다고 한다.
2.
보통 자신의 동생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할때, 이름을 부르거나, 그냥 동생이라고 이야기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내 가까운 주위에 있는 어떤 이는 자신의 동생을 '우리 동생'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 꼭 앞에 '우리'가 들어가고 빠진 적이 없다. 굉장히 인상깊었다. 그렇다고 그가 원래 엄청나게 살갑고 대놓고 다정한 성격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라는 접두사가 내게는 더 와 닿았고, 정말 예쁘게 들렸다.
3.
자신보다 늦게 태어나 나이가 적기 때문에 '동생'이라는 명칭으로 부르지만, 서로 어느정도 나이가 차게 되면 모두 '친구'가 된다. 그렇다고 물론, 그 '동생'이 무조건 친한 '친구'라고 단정짓긴 어렵다. 친한 '친구'일 수도 있고, 친하지 않은 '친구'일수도 있다. 하지만 친하고 친하지 않고를 떠나서, 결국 나를 가장 믿어주고, 서로를 누구보다 오래 보아왔고, 영원한 내 편이라는 생각이 들어 든든하고 또 든든하다.
-Hee
어느 선선한 봄날 봉천동 언덕 꼭대기에 자리잡은 자취방에 스무살의 사촌동생이 찾아왔다. 사촌동생은 미국으로 이민을 갔는데, 여행 겸 한국에 들렸다기에 어렸을 적 친했던 것을 이유로 얼굴이나 볼 겸 내방에서도 좀 지내다 가라고 부른 것이었다. 거의 10년만에 본 사촌동생은 키가 나와 비슷해져 180은 되어 있었고, 골격도 다 자리가 잡혀서 외관상으로는 건장한 어른이 되어 있었다. 머리에는 제법 멋진 검은색 스냅백 모자를 쓰고 있었고 제법 패션 감각도 인상깊었다.
집안 웃어른들의 이야기를 흘러 흘러 듣기로는, 스무살의 사촌 동생은 모범생인 자신의 형과 다르게 문제아이고 집안의 골칫덩어리였다. 그러한 소문에 별다른 걱정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심 미국에 간 이 후로 어떻게 변한걸까 궁금하기는 했었다.
내가 만난 사촌동생은 그저 여느 스무살과 다를게 없었다. K-pop 가수들과 게임, 티비 프로그램 무한도전을 좋아했고 유튜브를 즐겨보았다. 나와 함께 머무는 열흘 정도의 시간동안 우리가 정했던 규칙을 깔끔하게 지킬 줄 알았으며, 음악과 작곡에 재능이 있었고 서로가 약속한 자기개발에도 기꺼이 시간을 투자할 줄 아는 젠틀한 친구였다. 동생 스스로는 ‘이 정도로는 아무것도 못해, 정말 별거 아닌 소질이야’라고 말했지만, 내가 보기에 스무살의 나이에 그러한 재능과 소질이 있다면 충분히 자신이 바라는 것에 도전 해 볼 만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무엇이 그 아이를 ‘문제아’ 그리고 ‘골칫덩어리’라고 부르게 만들었던 것일까? 학교를 잘 나가지 않는 것? 바닥을 치고 있는 고등학교 성적? 아무도 그 아이가 겪고 있는 속앓이를 알지 못했다.
이따금 우리 사회는 ‘좋은 사람’의 기준을 객관적인 것들에 맞추려고 한다.
성적, 직업, 돈, 학교, 외모 등등. 그리고 우리 자신들 역시 그 기준을 중심으로 살아간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영혼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 걸까?
조지오웰의 1984에 나오는 상상의 이야기들이 결국 내가 살고 있는 현재가 되어 버렸다.
체재와 그 것으로부터 파생되는 권위에 묶여 살아가는 사람들.
앞으로 내가 하게 될 결혼도 그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임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답답하다.
그리고 오늘따라 항상 똑같은 레퍼토리의 내 글도 답답하다.
-Cheol
야근+야근..
이번 주는 휴재합니다.
-Bor
2014년 12월 7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