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

도란도란 프로젝트 - 오백 두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보고싶었고

그리웠습니다.


목소리를 들으면

올망 눈물이 날 것 같아

그래서 도망치고야 말았던 제가,


그럼에도 당신이 그리웠습니다.


우리가 마지막을 노래한 적은 없었지만,

이별을 기약해 본 적은 있었지요.


서로가 먼저 떠나겠다

웃으며 이야기 했던 것은,


이별이 꼭 삶의 마지막에 가서야

할 수 있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당신 옷자락만 붙잡고 늘어지는

내가 부끄러워졌습니다.


어느 것 하나

내것이라 부를 수 없는 순간이

내게도 온 것입니다.


그렇게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가 무척 부끄러워,

아니 어쩌면 내가 싫어져버려서


그래서 도망치고야 말았습니다.


어딘가로 자꾸 가야만 할 것 같아서

여행도, 사람도 닥치는대로

누려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헛헛한 감정을

채우지도, 비우지도 못했습니다.


어리석은 마음이라

눈을 감으면 그대로 그리움이

차오르는 것을 어찌할 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계속 이 감정을 누르다보면,

그대로 마음의 멍이 되면,

그제서야 조금 내려 놓을 수 있는

그런 날이 온다고 믿습니다.


나는 도망쳤고,

그럼에도 도망치지 못하였고,

조금씩 멀어지는 중입니다.



-Ram


1.

진짜 어디라도 가능하다면 도망가고 싶었다. 그런데 그 작은 코트에서 절대 도망갈 수 없다. 원하는 방향으로 공이 가지 않고, 정타로 공이 맞지 않고, 심지어 네트를 넘기지도 못하는 순간들이 반복되고, 심지어 같은 편에 있는 사람조차 내 파이팅에 호응해 주지 않으니 그냥 홀로 온전히 그걸 이겨내야만 한다. 어떻게든 점수를 얻든, 점수를 내주든 누군가 6점이 될 때까지 포기할 수 없고, 계속 공을 쳐야 하는데. 마치 코트 위에 아무도 없이 나 홀로 서 있는 기분이다. 사실 내가 더 잘하면 되는데. 내가 더 열심히 뛰고, 제대로 공을 치고 받으면 되는데. 안 그래도 작은데 한껏 더 작아져 버린다. 마인드 컨트롤을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많이 부족한가 봐.


2.

이전엔 제도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고 그냥 무작정 외면하고, 도망치기 바빴어. 행여라 잡힐 세라 요리조리 피해 다니기 급급하기도 했어. 근데 지금은 정면 승부를 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 뭐가 어떻게 달라진 건지 모르겠지만(변수는 많으니까), 제도에 대한 의욕이 생긴 건 처음이라 나 스스로도 낯설어.



-Hee


점점 더 버겁게 느껴진다. 삶은 그런대로 잘 유지되고 있는데도 조바심이 느껴진다. 가정이 생긴 뒤부터는 어디로도 도망칠 구석이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언젠가 한계에 봉착할 때도 달아날 수 없고, 그저 묵묵히 버티며 상황이 나아지길 기다리거나 끝내 망가져 바스러지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목을 죈다. 운명의 길목을 지나면서도 도피를 염두에 두었던 사람이 마땅히 겪게 되는 고통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그냥 현재를 잘 살아내면 그만일 뿐인데, 마음에 가득 찬 힘을 빼내고 이 지겨운 삶의 템포를 그저 따라가기란 여간고된 일이 아닐 수 없다.


-Ho


가족과 해외 여행은 이따금씩 도망가고 싶게 만든다.

질문이 많고, 준비한다고 했어도 생기는 계획의 어긋남과 변수의 당연함을 받아드리지 못하는 어른들의 유연하지 못함에 답답함을 느낀다.


자식들을 먹이고 입히느라 자신들의 삶의 깊이는 깊어 졌어도, 세상을 경험할 기회는 없어 점점 더 자신만의 세계 만을 파고드는 어른들을 보면서 이 간극을 좁힐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를 세상으로 내보내느라, 내가 하고 싶은걸 할수 있게 도와주느라,

정작 자신들의 경험은 당연히 반납한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감사해야겠지.


나를 키우느라 애써준 그들의 노고를 생각하면서 귀찮은 질문에도 대답을 하고, 신경 써서 고른 식당을 불평하는 말에도 너그럽게 넘기고, 무엇보다 이 대가족 여행을 무사히 마무리 해야겠다.



-인이


2023년 8월 20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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