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함"

도란도란 프로젝트 - 오백 세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모든 선택에 책임이 따른다고 하지.


알고 있지만,

그래도 더 신중했어야 했지만,


어쩌겠어.


나의 미련이 그렇게 똘똘 뭉쳐서

그렇게 구르고 말았던 것을.


사람을 고르고,

마음을 주고, 받고,

또 보내고 그런 사이를 반복하는 것.


시간이 지날 수록

관계에 대해 신중해질 수록

더 투명해지고야 만다.


내 밑바닥을 보여줘야만,

그걸 알고 내게 넘어와야만

우리가 될 것 같다.


나는 겁이 많으면서

사람의 마음을 쉽게 믿어버려서

그래서 자꾸만 그 사람을 바로 뒤집어보고 싶다.


그게 신중한 건지,

쉬운 것인지는 모르지만 말야.



-Ram


1.

살면서 올해 내 입에서 신중하라는 말을 최고로 많이 했다. 누군가에게 한 말이지만 사실 그건 나 자신에게(도) 하는 말이었다. 그래서 나 신중했니. 너 신중했니. 나 신중하고 있나. 너 신중하고 있나. 아마 수십 번을 더 물어봐도 대답은 항상 같겠지.


2.

내가 신중한 이유의 8할은 상처받기 싫은 것이다. 좋은 선택을 했냐, 안 했냐는 이미 선택을 했으니 의미 없는 문제고.


3.

늘 신중했던 사람도 뒤통수를 맞는다. 별로 신중하지 않아 보이는 사람은 그저 행복하다. 운이 좋은 건지. 아니면 하늘이 돕는 건지.



-Hee


1.

잔뜩 쌓인 커다란 문제들을 떠올리면 내가 곧 없어질 것만 같다. 구태여 시간 들여 생각해 봐도 당장 어찌할 수 있는 게 없으니 괴로운 마음만 든다. 그러면서도 최악을 대비하는 못된 버릇은 없어지지 않았다. 태생부터 겁이 많았던 탓일까. 하지만 두려운 마음을 끝없이 껴앉고 살아가는 일은 무서운 일이다. 왜 살아야 하는지 종종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더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문제들로부터 나를 분리해 내야만 했었다.


그러고 나니 매일매일에 깊이감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해왔던 대로 하면 되는 하루. 단순하고 쉽게 흘러간다. 좋은 일이겠으나 어쩐지 아쉽다. 더 살고 싶었던 내가 우습게 느껴진다. 사소한 일상마저도 골똘히 생각하게되는 저녁이 괜히 절망스럽다. 둔감해지고 싶다. 무심하게 나를 버려둘 곳을 찾고 싶다.


2.

필터 커피를 다시 내려서 마시기 시작했다. 원두의 분쇄도 조절, 원두와 물의 양, 물을 나눠 붓는 차수와 타이밍, 드리퍼의 형태와 크기, 필터의 종류, 그라인더 버의 형태. 여러 변수를 조절해서 내 취향에 맞는 커피를 찾아가는 일. 욕심에 못 이겨 새로 산 도구들을 보면 유난이 따로 없다 싶은데도 재미가 있으니 괜찮다. 신중하게 마음을 쏟고, 그 결과가 확실하게 보답으로 다가온다는 게 대단하게 느껴진다.



-Ho


꽤 신중한 편이었다.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편이 실수하는 거 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이라는 게 여기서 그만하겠다는 결심이 있을 뿐, 100퍼센트는 없다.

확신이 없는 확신을 하느라 너무 많은 에너지를 썼다.


최선을 다했으면 세상에 보내주고 맡기는 게 필요하다.

나는 한정적이지만 세상은 무한하니까.

그 무한함을 신뢰한다.


내가 정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얼마큼 이 일에 최선을 다하느냐지, 어떤 것에 대한 결과를 내가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함 아닐까?


몸을 써서 운동을 해보면 알 수 있다. 내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나약하니까 무능력하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최선을 다하되 집착하지 않는 마음이 필요하다.


신중히 결정 했다고 해서 안 하는 방향으로 선택하기보다는,

신중하되 결론은, 그래도 일단 해보자는 선택을 하고싶다.


나는 내 삶에서 가능성을 많이 만들고 싶고, 일단 시도 했다면, 어떤 것도 실패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세상이 주는 모든 가능성에 YES라고 대답하고 싶다.


여전히 앞으로 내가 마주하고 해나갈 일들이 있다는 것이 설렌다.

그 일 뒤에 성장해 있을 나 자신이 기대된다.


나를 보호한다는 핑계뒤로 숨어서 나에게 오는 기회들을 놓치고 싶지 않다.


신중히 결정한 것들이 언제나 "일단 해보자"라는 결론이 내어질 수 있도록,

나의 직관을 더 신뢰할 수 있도록, 나 자신과 더 많은 대화를 해야겠다.



-인이


2023년 8월 27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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