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구니"

도란도란 프로젝트 - 오백 여덟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아일랜드에서 살 때에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면

몇 백원은 되는 봉투를 사는게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그동안 샀던 봉투들을

모든 가방에 넣어두고

장바구니로 썼었다.


그때에 비닐을 돈주고 산다는

그런 개념이 한국엔 없었으니까,

괜한 돈낭비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착실하게 가방을 들던 때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끝이 났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서

한국도 유상봉투 제도가 생겼고,

나는 실제로 장보러 갈 때에

스타벅스 폴리백을 들고가게 되었다.


결국 돈이든, 어떤 의무감에서든

내게 책임감이 들린 것 같다.

그런 미묘한 기분이 든다.


봉투를 구매하지 않는 내가

대단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고,


시스템에 굴복하지 않고 50원을 지켜낸 내가 기특한 것도 아니다.


그냥 손에 무언가 들고다니면

큰일이 날 줄 알았던 20대를 지나,

무엇이든 아무렇지 않은 30대, 혹은

지금의 내가 된 것 같아서

그런 미묘한 기분이 든다.


장바구니,

그런것 따위보다 이상한 무게감이 들린 것만 같다.



-Ram


장바구니에 하나씩 하나씩 가을, 겨울옷들이 쌓이고, 사라진다! (아마 결제했기 때문이겠지) 더운 나라에 살다가 3년 만에 제대로 가을, 겨울옷을 살 생각에 이미 한여름부터 신났었다. 껄껄. 포근한 색감의 니트들이랑, 원래 있던 가죽자켓 디자인이랑은 완전히 다른 디자인의 가죽자켓, 그리고 한동안 쳐다도 안 봤던 모직 치마도 장바구니에 넣었다! 아니, 이렇게 니트 색들이 예뻤어? 코코아? 크림? 오트? 이런 생각으로 하나 둘 집어넣어 보니 니트 부자가 될 것 같아서 결제 직전 정신 바짝 차렸다. 사실 작년 겨울에 일 때문에 2개월 정도 한국에 있긴 했었다. 그땐 다시 갈 생각으로 예전에 입고 넣어둔 옷장 속 깊은 곳에 있던 겨울옷들 꺼내서 어찌어찌 입다가 다시 한국을 떠났었는데. 이번엔 정석으로 늦여름, 초가을을 지나 늦가을, 겨울을 맞이할 생각에 설렌다. 이제 장바구니를 스쳐갈 아이들은 겨울 패딩과 코트들인가. 역시 어느 계절이나 한국에서 파는 옷들이 살 맛이 난다. 디자인도 그렇고, 재질도 그렇고, 가격은 둘째치고 거의 모든 면에서 한국(에서 파는) 옷이 전 세계 중 최고인 것 같아.. 다시 또 장바구니를 열심히 채웠다가 빠르게 비워야지.



-Hee


이번 주는 휴재합니다.



-Ho


직접 마트에 가서 장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조금 비싸더라도 유리병에 담긴 제품을 구입하고,

조금 덜 먹더라도 유기농을 산다.


소고기는 될 수 있는 대로 안 먹으려고 하고,

붉은 고기보다는 닭고기를 먹는다.

닭고기를 사기 위해 정육 판매대로 갔는데 이곳은 닭을 잡아서 한 마리를 그대로 진열해 놓기도 한다.

텅 빈 닭의 눈을 보는데, 내가 굳이 고기를 먹어야 하나. 서서히 줄여야겠다고 다짐했다.


너무 많은 것을 이미 가지고 있는데, 또 난 가끔 뭐가 사고싶고 사려고 하고 사버린다.

외국에서 사는 거에 비해 물건이 적은 편이라 언제라도 큰 캐리어, 작은 캐리어 하나면 짐을 쌀 수 있지만

그래도 내가 가진 물건 들을 볼때 답답해진다.

옷을 절대 사지 말아야지 하고도 티셔츠를 보면 왜 또 사고 싶어지는지..


짐을 늘리고, 내 공간을 물건이 차지하는 게 싫어서 전자레인지도 전기포트도 없이 사는 나를 보며

동생은 불편을 참 잘 견딘다며, 돈 몇 만원이면 삶의 질이 달라지는데 왜 그걸 참냐고 했다.

내가 채우고 싶은 건 물건이 아니라, 내 마음이고, 내 자신이다.


나에게 장바구니는 진짜로 장을 보러 갈 때 드는 그 장바구니이고,

장을 보러 가는 일은 신선한 재료들을 보며 직접 고르는 재미와 내가 먹을 것들을 직접 고르는 기쁨,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위해 노력해 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간결하고 단정하게 살고 싶다.

지구에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인이


2023년 10월 1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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