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오백 일곱 번째 주제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것들이 변한다
사람도 감정도
돈도 일도
사는 동안 많은 것들이 자꾸 변한다.
영원히 사랑을 모를 것 같았던
그런 사이도,
밟을 일 없었던 서로의 선을
넘는 일도,
다 변하고야 만다
그래서 재밌고, 슬프고, 아프고
그런 감정들이 뒤죽박죽
뒤엉킨다.
지독하게 싫던 사람도,
숨막히게 좋아했던 사람도,
영원을 모르고 사라진다.
그래서 믿을 수가 없게 된다.
어떤 감정도, 미래도,
아무것도 확답하지 못하는 나 조차도,
그렇게 도망쳐버리고 만다.
찰나에 정말
많은 것들이 변하니까.
-Ram
나이 아흔 살이 넘으셨는데, 환갑만 넘으면 드시기 시작하는 고혈압약, 저혈압약 등등 그 어른들 사이에선 흔한 약 한 알 드시지 않고, 대신 세 끼를 나보다 더 많이 잘 챙겨드시는 우리 건강한 외할머니. 이미 전철이 노인분들에겐 공짜 교통수단이 된 시절부터 외할머니는 1호선을 타고 딸들 집을 왔다 갔다, 조금 유명한 재래시장이 있으면 거기도 다녀오시고, 늘 바쁘게 사셨다.
그리고 자식들이, 손주들이 그렇게 핸드폰을 사준다고 해도 아직까지 싫다고 절레절레 하시는 외할머니는 내가 아는 사람들 중 유일하게 집 전화를 사용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할머니와 통화하려면 할머니네 집으로 전화를 걸어야 하고, 할머니가 받지 않는다면 어디 가셨는지 생각하면서 다시 할머니 오실 타이밍에 맞춰 전화한다. 할머니는 자신이 원할 때만(=집에 있을 때만) 통화할 수 있는 매우 귀한 사람인 것이지.
어디 놀러 가시는 것을 좋아하셔서 가족끼리 여행 갈 때 외할머니를 꽤 많이 데리고 다닌 편이었는데, 특히 몇 년 전 여름, 외할머니랑 같이 계곡에 갔었을 땐 할머니가 밀가루 반죽을 해서 밀대로 슥슥 미신 다음 국수 면을 직접 가닥가닥 잘라 만드신 후 칼국수 해 주신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어쩜 그렇게 칼국수가 뚝딱 만들어지지. 심지어 어렸을 적 외할머니네서 난생처음 먹어본 고추장찌개는 내 생애 먹어본 고추장찌개 중 가장 칼칼하고 맛있는 찌개였다. 올여름 아예 한국에 돌아왔을 때 외할머니가 그 소식을 듣고 내가 좋아하는 가지(심지어 직접 밭에서 기른!), 옥수수, 단호박 그리고 할머니가 독특하게 하는 감자 부침이 있는데, 그것까지 왕창해서 바리바리 싸 들고 1호선을 타고 오셨고, 집 앞 재래시장에 꼭 들러서 떡볶이와 순대를 잔뜩 사 오셨다.
며칠 전엔 어쩌다 보니 할머니 댁에 부모님 없이 처음 가게 되었는데, 가보니 할머니 특유의 레시피로 만든 오이김치를 큰 통에 담아놓으셨고, 또 할머니 별미인 설탕, 소금 솔솔 뿌려놓은 깻잎 튀김도 손녀 주려고 한 봉지 이미 준비해 놓으셨다. 그리고 밥 먹고 왔다고 하니, 손수 담그신 식혜를 내주시고, 참외를 깎아주시면서 '어여 먹어'라고 하며 내 앞에 잔뜩 들이밀었다. 할머니가 그렇게 주는데 어떻게 안 먹나. 밥 먹고 왔지만 배불러고 열심히 맛있다며(진짜 맛있긴 했다) 먹고, 마치 미션 클리어 한 느낌으로 다 먹었더니 이제는 어디선가 꼬깃꼬깃 검정 봉지에서 할머니가 먹다 남은 유과, 그리고 외숙모가 사 왔다는 과자를 몇 봉지 내놓으시며 이런 것도 있으니 먹으라고 주시는 것이 아닌가!
과자 주는 귀여운 우리 외할머니. 늘 뵐 때마다 외할머니는 큰손주인 나를 제일 대놓고 예뻐해 줬고, 맨날 옆에 앉아서 손등을 쓰다듬으며 앞으로도 잘 되라고 덕담해 주시는 우리 외할머니. 근데 몇 년을 외국에 살다가 한국에 오니 외할머니가 점점 더 늙어가는 게 눈에 보인다. 나이에 비해 건강하시고, 기력도 좋으시지만 예전 같지 않은 느낌이 난다. 할머니 스스로도 느끼시는지 이제는 자기도 늙었다며, 죽을 때가 다 되었다고 하길래 맨날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내가 잔소리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외할머니는 노환으로 귀가 안 좋으신데, 조금씩 더 안 좋아지시는 것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다. 조금 전 테니스 한창 치다가 잠깐 쉴 때 핸드폰을 봤더니 외할머니한테 부재중 전화가 처음으로 찍혀있었다. 지난번 할머니 댁 갔을 때 내 번호 적어달라고 하셔서 종이에 크게 적어드렸는데, 그게 되나 한번 해본 거라고 하시는 귀여운 외할머니. 얼른 추석 때 또 뵈러 가야지!
-Hee
사람이 한 결 같아야 한다는 말과 흐름 따라 항상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에 나는 갇혀 살았던 것 같다. 사람에게 왼손과 오른손이 있는 것처럼 둘 다 필요한 요소일 뿐인데. 변하지 않으려 애썼었고 바뀌고 싶어 광광 울었던 날들. 그렇게 흘러간 날들이 그리 그립거나 아쉽지 않은 걸 보니 내가 어느샌가 참 많이 변했구나 싶다.
-Ho
변화라고 하니까 자이언티의 5월의 밤의 가사 한 소절이 생각난다.
‘변하지 않기로 그렇게 서로 바랐으면서
변하지 않아서 이렇게 지루해져 버렸죠’
사랑은 변하는 게 당연해서, 근데 그 변화가 주로 사랑이 희미해지는 쪽으로 변한다고 생각했다.
예전에는 변하지 않고 한결같은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매일 매일 더 사랑하게 되는 변화도 있다는 걸 알게 됬다.
물론 사랑의 형태는 달라지겠지만, 서로를 위하는 마음만큼은 더 진해진다고.
변화는 두려움이 아니라, 당연하고
오늘보다 내일 조금 더 나아질 나 자신을 위해 오늘 내가 노력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는 게 때로는 두렵기도 하지만 기대되기도 한다.
왜냐면 나는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기 때문에.
매일 매일 더 나아지는 내 모습이 기대되려면 내가 어떻게 하냐에 따라 달린 거니까.
-인이
2023년 9월 24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