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오백 열 네 번째 주제
내가 처음 좋아했던 그의 이미지는
어떤 말로도 형용하기 어려운
그런 사람이었다.
어렵고, 뚝딱거리는 무뚝뚝함,
차분하고 똑똑해보였고,
중저음이 멋졌으며,
나보다 연상이라는 사실이
제법 매력적이던 사람.
그에게 좋아하는 이상형이 어떤지
물었을 때에
여성스러운 이미지를 좋아한다고 해서
그렇게 되어보려고 노력했다.
머리를 더 기르려하였고,
안경도 쓰지않아보려 하였고,
조용한 말투로 말을 건네곤 했다.
그런데 내 친구를 좋아할 줄야,
그 친구는 왈가닥에 괄괄한 이미지였는데,
어쩜.
그럴수가.
그래서 아무것도 의미가 없다고,
그런 이미지 같은 건 별 의미 없다고,
그땐 그렇게 생각했지 뭐.
이미지 같은 건
언제든지 마음대로 만들 수 있었는데,
중요한 건 그 사람 마음이었는데,
나중에야 알게되고도 한참을
그리워했었지.
-Ram
차 조수석에서 내려 첫 발을 내디뎠던 그 동네는 내게 마냥 설렘의 공간이었다. 태어나서 부모님이랑 같이 지내다가 처음 이렇다 할 독립을 한 곳이기도 하고, 지역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 지역, 그 동네에 간 건 처음이기 때문이다. 연고도 없고, 지인도 없었던 곳. 내 눈엔 이미 '신남'의 필터와 '설렘'의 필터, 그리고 '새로워서 더 흥미로움'의 필터가 골고루 끼워져 있었기 때문에 언덕도, 조금 뭔가 휑한 느낌도, 오래된 상가들도 다 좋았다. 사실 그곳에서 2-3개월 살았으려나. 지금 생각해 보면 오래 살거나 그랬던 건 아니었지만 동네의 추억들이 진하게 몸에 배었다. 그 동네를 떠난 이후에도 한참을, 10년이라는 긴 시간도 넘게, 그 동네만 생각하면 온갖 감정이 다 느껴졌고, 그 뒤에도 몇 번이고 갈 기회가 있어서 이곳은 내 유년 시절을 보낸 것 같은 아련함과 추억들이 서려있어 몽글몽글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사랑했던 연인과 헤어지면 그 사람을 만났던 시간이든, 그 시간의 곱절이든 간에 옛 생각에 가득 차 몸서리친다고 말하지 않나. 그 동네만 생각하면 거의 10년을 넘게 그래왔던 것 같다. 그러다 서서히 필터들이 걷어지고 다시 새로운 무언가들을 쌓고 싶어지는 기분이 드는데, 언제 또 그 동네를 가보려나. 사실 이젠 굳이 내가 찾아갈 기회가 있을까 모르겠다. 내겐 이제 그 동네 이미지를 다시 쇄신할 준비가 되어있는데.
-Hee
이미 타고나버려서 어떻게 해도 바꿀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인정은 꽤 빨랐었다. 그래서 그런 것들 말고 내가 노력해서 바꿀 수 있는 것들에 더욱 신경을 쏟았다. 내 이미지를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무뚝뚝한 첫인상에서도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도록. 그리 선해보이지 않는 얼굴에서 단정함이 느껴지도록. 그야말로 남이 보는 내가 어떠한가에 온 정신이 팔려있던 시절이었다.
나는 이제 내가 지나온 길로만 나를 소개한다. 거기에 억지로 눌러 담거나 속이듯 감춘 것은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하게도 나의 일이 아니었고, 어떻게 보이든 그게 사실 그리 중요한 일도 아니었다. 그리하여 내가 원하는 대로 보일 수는 없게 됐지만, 내 이미지의 콘트라스트는 분명 한 단계 더 높아졌다. 어쩌면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내 모습이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Ho
눈에 보이는 거 보다, 보이지 않는 게 더 중요할 때가 있다.
어쩌면 진짜 중요한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인거 같아.
어떤 것을 보고 내가 느끼는 것을 이미지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
언젠가부터 평가하지 않는 연습을 하고 있다.
평가하고 평가받는 것을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거 같다.
내가 남을 평가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도 나를 평가하는 것을 용인하는 것과 같다.
내가 누구를 평가하지 않으면, 내가 평가받을 이유도 없다.
우리는 서로를 평가하지 않고도 살 수 있고,
사랑과 칭찬을 하기에도 부족하다.
삶은 유한하고, 우리는 언젠가 죽기 때문에.
좋은 것만 보고 좋은 생각만 하고 싶다.
그러려면 우선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겠지.
-인이
2023년 11월 12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