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

도란도란 프로젝트 - 오백 열 세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누군가를 지독하게 좋아하다보면

그의 다른 것까지 사랑할 각오를 하게 된다.


그를 이루는 것들이

도박일수도, 운동일수도,

또다른 음주가무일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한때 내가 좋아했던 그가

농구를 지독하게 좋아했다.


농구 경기가 어떤 건줄도 모르면서

그걸 보고있는 내가

웃기고 가여워질 때 즈음


그걸 바라보는 내가

그의 많은 부분을 쫓고 있다는 걸

겨우 깨달았다.


좋아한다는 감정이

끝없이 이어질 것도 아니지만,

그때의 나는 분명

그의 농구까지도 사랑할

자신이 있었나보다.


나의 어리숙하고 조악한 마음이

그땐 그 모든 걸 견딜 줄 알았지.


무엇이든 다

이해할 수 있을 줄 알았지,

그때는 말야.



-Ram


초등학교 때 날 연자방이라는, 지금 들어도 우스꽝스러운 별명으로 부른 친구가 있었다. 내 기억에 서울 어딘가에서 전학 온 그 친구는 얼굴이 참 뽀얗고, 하얬고, 마치 미용실에서 갓 매직이라도 하고 나온듯한 쭉쭉 뻗은 생머리가 절대 어깨에 닿지 않는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다. 살집이 조금 있어서(아마 젖살이었겠지) 웃을 때 굉장히 순해 보이던 그녀는 가을이 되자멋쟁이처럼 바바리코트를 입고 다녔다. 그 모습이 마치 형사같아보여서 내가 맨날 강형사라고 불렀다. 하루는 학교 끝나고 늦은 오후쯤 강형사랑 나는 다시 학교를 향했다. 운동을 좋아했던 강형사가 농구를 하자고 제안했고, 의욕이 넘치던 나는 단숨에 오케이했다. 강형사가 농구공을 들고나왔고, 우리는 운동장 한구석에 있는 농구대 앞에서 열심히 공을 튀기고, 골을 넣어보려고 노력도 했고, 어쩌다 골이 들어가면 깔깔 웃으며 기뻐했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농구가 아니라 공놀이에 가까웠지. 해가 질 때까지 그렇게 농구공을 튀기던 강형사랑 나는 운동장 스탠드에서 쉬다가 갑자기 노래를 불렀다. '한 잔 두 잔 비워내는 술잔!(근데 그때 가사 기억이 잘 안나서 '순간'이라고 둘다 말했던 것 같다), 혀를 지나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순간!'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초딩들에겐 딱히 어울리지도 않는 '한 잔, 두 잔'이라는 단어를 입으로 뱉어내면서 그게 뭐가 웃겼는지 그렇게 깔깔대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며칠 전에 안양천따라 러닝하고 있는데 옆에서 농구하는 사람들을 봤다. (초등학교때 나처럼 농구가 아닌 약간 공놀이 같긴 했지만) 20대로 보이는 남녀가 열심히 공을 튀기고, 골대를 향해 농구공을 던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농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 맞아, 공놀이) 그리고 강형사도 보고 싶다. 그때 그 모습이 남아있을까. 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치면 내가 알아볼 수 있을까.



-Hee


이번 주는 휴재입니다.



-Ho


어째서였는지 모르겠는데, 엄마 아빠와 농구를 보러 간 적이 있다. 처음 가보는 농구장이었는데 재밌었던 기억이 있다.

무엇보다 엄마 아빠와 새로운 경험을 했던 그 신선함이 기분 좋게 남아있다.


부산에서 대학을 다녀 그런가, 농구보다는 야구가 익숙하다.

사직야구장에서 야구를 한번 보면 롯데 팬이 아니어도 롯데를 응원하게 된다.

부산 사람들은(사실 한국 사람들은) 먹고 노는 데는 정말 진심인 거 같다.

대학교 선배들, 친구들, 가족들과 갔던 사직야구장이 많이 기억에 남는다.

끝도 없이 뭘 먹고, 마시고 응원했다가 또 먹고 마시는 게 경기보다 더 재밌을 때도 있었다.


혼자 해도 된다고, 혼자여도 된다고 생각하며 일부러 나를 혼자 두었다.

물론 그 시간도 너무 가치 있었고, 혼자 있는 동안 많은 깨달음도 있었다.


혼자 잘 있다 보니 누구랑 같이 있는 시간을 더 소중하게 느끼게 되었고,

물론 혼자 있는 거보다 누구와 함께 있으면 더 에너지가 드는 건 사실이지만,

내가 내 에너지를 쓰는 거처럼, 상대방도 자신의 에너지를 들여 나와 시간을 보내준다는 게 감사하다.


혼자와 함께함의 균형을 잘 유지하면서, 내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 재밌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인이


2023년 11월 5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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