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오백 마흔 한 번째 주제
내가 아꼈던 노트북 가방은
내돈으로 샀던 건 아니었다.
친구의 친구에게 받았던
어떤 행사에서의 사은품.
그게 그렇게도 좋았다.
손잡이도 끈도 불편한 모양새였는데
퍽 예쁜 모양이라 좋아했었다.
그러다 언젠가 넣어두었던
초코과자가 안에서 잔뜩 부서지면서
못쓰게 되었다.
그렇게 두번째 가방을 샀다.
친구가 한참 쓰던 것과
같은 걸 샀다.
투박한데 가볍고 편했다.
스펀지처럼 보송하고
막 넣어도 가벼워서 꽤 오래 들었다.
그리고 얼마전
너무 오래 들어 손잡이가 헤졌다.
그래서 새 가방을 다시 샀다.
끈도 길고 가볍고 투박한 것으로.
싼 맛에.
새 가방을 사고나서
노트북 가방을 한번 떨어뜨린 적 있다.
열어보니 노트북 끝이 휘었다.
사실 가방은 아무것도 보호하지 못한 것이다.
알량한 내 욕심에 계속 바꿔온 가방들은
사실 예쁘거나 싸거나 하면서
본질은 지키지 못했던 것들일지도
모른다.
나는 튼튼한 걸 바랐던 적이
없으면서도 내심 속상해졌다.
사람도 마음도 계속 그렇다.
나는 그런 걸 바란적 없는 것
같다가도
이내 속상해지고 만다.
나는 꽤 약은 사람이거든.
-Ram
어느 날 우연히 네오프렌 재질로 만든 노트북 가방을 선물받았다. 늘 손바닥만한 (보는 사람마다 대부분 그렇게 말했다) 가방을 들고 다니던 내게 신세계였다. 내 가방엔 늘 립스틱과 손거울 정도만 들고 다녔고 (아이폰은 늘 왼손에) 렉쳐노트든, 책이든, 노트북이든 그냥 오른팔에 끼고 다녔었는데 노트북 가방, 그것도 매우 가벼운 노트북 가방이 생기자 그 안에 노트는 물론이고 펜, 생리대 잔뜩, 보조배터리까지 안 넣고 다닌 게 없었다. 그렇게 내 20대 중반부터 후반까지는 거의 그 노트북 가방과 함께였다. 중간에 그 가방 안에서 선물 받아서 넣은 휴대용 트리트먼트가 새기 전까진. 학교 졸업 후 회사에 다니면서도 재질은 똑같고 색만 다른 노트북 가방을 또 샀다. 회사 노트북은 물론이고 관공서에 제출해야 하는 서류 뭉치들, 업무 다이어리 등등 다양한 잡동사니들을 넣을 수 있어서 굉장히 유용하게 잘 썼다. 말레이시아 가기 직전 서일페가서 사과 브로치도 사서 귀엽게 달아줬는데. 요즘엔 그 가방을 쓸 일이 잘 없어서 그냥 박스 안에 잘 보관 중이다. 더 이상 노트북을 가지고 다닐 일도 없으며 회사에서도 움직일 일이 없어서 데스크탑을 줬으니. 앞으로 이 노트북 가방에 또 뭘 넣고 다닐지 궁금해지네.
-Hee
살면서 한 번도 소유해 본 적이 없었던 것들. 예를 들면 노트북 가방 같은 것을 떠올리다가 오히려 내가 가졌었거나 현재도 가지고 있는 것들만 잔뜩 떠올렸다. 욕심이 많아서 갖고 싶은 물건은 꼭 가져야만 했던 성미를 몰랐던 것은 아닌데 이정도면 조금 지나친 게 아닌가 싶을 만큼 많다. 가져본 적 없는 것이 그다지 생각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꽤나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래도 괜찮은 것일까, 위기감이 생기고 다시 필요 없는 것들을 모두 내다 버리고 싶어졌다.
하지만 이런 일이 살면서 적어도 몇 번이나 되풀이되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물건을 비워 정리하는 것보다 어떠한 것에 의식적으로 가치를 두고 집중해야 하는지를 정하는 것이 아닐까. 그걸 어떻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물질적인 것에 대한 집착부터 내려두며 시작해 봐야겠다.
-Ho
노트북 가방은 귀여운게 좋을 것 같은데 나는 재미없는 검정색이다.
귀여운게 있는지 한번 찾아봐야겠다.
맥북을 4년째 쓰고 있는데 아직 짱짱하다.
하지만 한글 파일을 열어야 하거나 여러 관공서 업무를 처리할때는 가끔 곤란해진다.
그래도 여전히 예쁘고 잘 작동되는 내 맥북에게 이쁘고 귀여운 가방 하나 사줘야겠다.
내 노트북은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
-인이
2024년 5월 19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