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쉰다섯 번째 주제
감자탕
아빠와 나는 해물이 잔뜩 들어간 얼큰한 해물탕을 좋아했다.
동생들은 늘 고기를 좋아했고
엄마는 채소가 한 바구니나 나오는 쌈밥집을 좋아했다.
그래서 가족끼리 외식하는 날이면
메뉴 정하는 것이 곧 숙제이자 과제였다.
그래서 몇 년만에 타협점을 찾은 것은
감자탕
고기도 잔뜩, 시래기와 깻잎향 가득
그리고 얼큰한 국물까지 삼박자가 완벽한 음식
갓 어린애 티를 벗은 나와 동생이
부모님과 어색한 술잔을 기울이기 좋은 음식이거니와
아이러니하게도 전 날 먹은 술기운을 달래기에도 좋다.
다섯이서 둘러앉아서
탕이 보글보글 끓어오를 때까지
막내의 학교 생활이나 나의 연애이야기 같은
소박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익숙한 세팅을 끝내고 식사를 한다.
아빠와 막내는 늘 공기밥 추가
우리는 마지막에 볶음밥
마무리는 자판기 커피와 삼색 아이스크림
특별할 것 없는 식사이지만
가끔 이렇게 나와서 서로에게 고기를 양보하고
또 어느새 자라서 술잔을 함께 부딪히고
아팠던 시간들을 지나
함께 앉아 숟가락 부딪히며 먹는
그런 식사가 나는 좋다.
소박하기 그지 없는 그 순간들이
그립고 또 좋다.
-Ram
‘여보세요’
'나 지금 학교 앞에서 내렸는데, 저녁 먹었어? 주먹밥 사갈까?’
'아 아직 안먹었어. 그래 그거랑 컵라면이랑 먹자’
'알겠어!’
그땐 이런 대화가 굉장히 일상적인 대화인줄만 알았다. 언제나 항상 할 수 있는 대화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 때의 그 대화는 굉장히 소중했고, 아주 어쩌면 다신 그런 대화를 못 나눌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나는 학교 기숙사에 살았고, 시기는 겨울방학때였다.
막상 겨울방학이 되고나니 아는 친구들은 전부 집에 내려가고, 나만 기숙사로 올라간 꼴이 되었는데,
거기서 평소에 수업을 같이 듣던 친구를 만났다. 처음에는 아 저 친구도 기숙사에 계속 남아있구나, 라고 생각했으나,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친구가 되었다.
어쩌다보니 밖에서 여러가지 것들을 하고, 저녁에 기숙사에 들어오면 그 친구와 휴게실에서 수다떠는 일이 많았다.
처음에는 그냥 얼굴 한번 보고 이야기해야지, 라고 생각했던 것이, 하루, 이틀, 일주일동안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도대체 언제 들어와? 빨리 와~ 할말 엄청 많다구!’
항상 이런 말로 우리는 연락을 했고, 밤에 기숙사 휴게실에서 모이면 그 날 하루에 있었던 이야기들, 왜 이 사람은 저런 행동을 헀을까, 라는 생각들, 나는 왜 이런 이야기를 그 사람한테 했을까, 라는 회고들 등등.
그 때마다 거의 빠질 수 없던 것들이 군것질, 배달음식, 분식들이였다.
둘다 기숙사 식당을 좋아하지 않아서 기숙사에 사는 동안 식당에는 가본 적도 없었고, 항상 저녁에 치킨, 과자, 빵, 과일 등등이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었다.
보기에는 정말 별거 없어 보이고, 지금은 많이 찾지도 않는 자극적인 음식에다 인스턴트 뿐이였는데,
이야기를 하면서 먹는 그 음식들이 그렇게 맛있었다.
아마 그 친구와 함께여서 맛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친구와 나는 마치 16살 사춘기인 아이가 종종 듣는 새똥이 굴러가도 웃는다는 그 말이 딱 어울렸다.
물론 처음에는 어색하고, 이십 몇 년이 넘도록 서로 다른 방식, 다른 환경에서 자랐으니 나랑 친해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겨울 내내 그 기숙사 휴게실의 넓다란 테이블과 쇼파를 하나씩 차지하고 깔깔대며 이야기하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면서 서로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그 당시 우리는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다. 가족, 친구, 연애사, 가치관, 그 날의 하루, 성격, 꿈, 미래, 수업, 공부, 어떤 것들에 대한 의미, 사람의 심리, 하고 있는 일, 하고 싶은 일, 먹고 싶은 음식, 가고 싶은 곳, 서로에 대한 생각, 행복의 의미, 행복을 줄 수 있는 사람들, 운동, 다이어트, 영어, 글, 영화, 드라마, 기숙사 룸메이트에 대한 단상 등등.
정말 수백 가지, 수천 가지의 주제들이 때로는 매운, 때로는 달콤한, 때로는 담백한, 때로는 고소한 음식들 위를 떠돌아 다녔고, 결국엔 지금까지 서로 제일 잘 아는 친구가 되었다.
하루는 내가 밖에 있다가 요플레가 있길래, 같이 먹으려고 가방에 넣고, 새벽 즈음에 기숙사에 들어왔다.
그 친구에게 '나한테 요플레 있다!’ 하면서 자랑스럽게 가방을 딱 열었는데, 그 순간..요플레는 가방 안에서 무참히 터져있었다.
'으악!’ 비명과 함께 바로 그 친구와 나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가방 안에 있던 소지품들을 모두 살리고 싶어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하나씩 건져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어폰 하나만 살리지 못했다.
그리고 모든 소지품을 정리하고, 가방 속에 있는 요플레를 걷어내려고 화장실을 갔는데, 그 새벽에 화장실에서 엄청난 둘이 웃음이 터졌다.
진짜 주체할 수 없는 웃음이였다.
'꺄하하하하크하꺄아아아흐흐흑아흑끄하하흡으하하하와하하하꺄아아!’
정말 그렇게 한번에 빵 터진 웃음을 지속한 것은 처음이였다. 진짜 다른 말을 할 수도 없을 만큼 요플레 묻은 가방을 손가락질 하며 둘이서 눈만 마주치며 웃었다. 정말 웃겨서 다른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 때 시간은 자정을 넘긴 새벽이였고, 화장실이 크고 넓어서 웃음소리가 많이 울렸나보다.
'저기요! 너무 시끄럽거든요?’ 라는 소리가 복도에서 들렸고,
그 친구와 나는 동시에 웃음을 멈췄고, 몇 초간의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나서 다시 눈을 마주치고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큭큭푸흡큭큭큭훕풉풉풉크하하하큽큭큭풉합푸하크하하하크하큭큭훕’
소리를 크게 낼 수는 없지만 정말 완전 웃겨서 터진 많고 많은 웃음들. 화장실에서 배꼽이 빠지도록 웃으며 가방을 살리고, 휴게실로 와서 또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시기에는 그 친구와 함께 무엇을 먹어도 정말 맛있었고, 무슨 이야기를 해도 즐거웠다.
공허함을 많이 느끼는 요즘, 그때가 그립다.
-Hee
가장 즐겁고 재미있었던 술자리나 식사.
그런 것은 이제 없다.
모든 것은 지나가버린 과거.
그렇게 나의 긴 겨울이 지나가고 있다.
나의 마음은 여전히 굳게 닫혀있고,
쉬이 그 마음을 열지 못한다.
특별한 사랑에 빠져보고 싶지만, 쉬이 그럴 수 없는,
우리 사이에 놓여 있는,
딜레마.
그 것을 깰 만큼 인상적인,
느낌의 부재.
몇 잔의 술로는 메울 수 없는,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공백.
그 공간이 바로 ‘외로움’이란 것일까?
그 공간을 채워보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대화한다.
-Cheol
술자리 그 괴로움과 기쁨
술자리가 항상 즐거운 것은 아니다. 솔직히 이야기를 하면 술자리는 보통 나에게는 슬프거나 괴로운 것이다.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그런 것들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즐거울 때보다 괴로우면 나를 찾는 경우가 많았다. 괴로움을 나에게 토해놓으면 좋을까. 잘 모르겠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내가 알게 된 나의 장점 중에 하나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종종 상대방에게 괜찮은 반응들을 해준다는 것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주변에서는 그렇게들 이야기를 했다.
오래된 남자들의 술자리는 보통 신세한탄으로 시작하여 약간의 객기와 PC방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고, 여자들과의 술자리는 일단 내가 말을 한다기보다 듣는 경우가 많다. 그 중의 8할은 연애상담, 가족문제, 감정기복, 장래의 진로 같은 것은 것이다. 그 외에도 여자들과의 술자리의 주제는 남자들보다 다양한데 나는 그래서 여자들과 함께 술을 마시는 것을 더 좋아한다. 남자들의 술자리는 보통 깊어질수록 추태로 이어지는 반면, 여자들의 술자리는 보통 속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야기가 암울할수록 더욱 집중해서 이야기에 빠져드는 편이다. 더욱이 이럴수록 뭔가 나서서 이야기 주제를 꺼낼 필요조차 없다. 화제를 꺼낼 필요가 없으니 얼마나 편한 일인지.
하지만 남자이든 여자이든 그런 것들을 듣는 것도 한 두 번이지 술자리가 즐거울 일은 별로 없다. 더욱이 회사사람들과의 술자리라고 하는 것들은 가시방석과 다름없다. 일단 취한 모습을 절대 보이면 안 되고 나이든 사람들의 유머라고 하는 것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아니 싫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술을 마시고 싶은 사람들의 대부분은 내가 볼 때는 그냥 술 자체가 고픈 것이고 취하는 것이 목적이다. 혼자 먹기에는 청승맞으니까 누군가 옆에 있었으면 좋겠고, 그러니까 만나면 좋지 않겠나 해서 핸드폰의 주소록을 뒤적이다가 괜찮겠다하는 사람을 시시콜콜 불러내어 술안주로 삼는 것 아니겠나싶다. 남자이든 여자이든 솔직히 술자리에서 즐겁게 웃고 떠들며 헤어진 적이 없다보니 20대 후반이 되자 술 자체에 대한 거부감마저 들었다. 사람들이 정녕 이것 밖에는 놀거리가 없는건가 라는 생각도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작년에는 제법 좋은 술자리가 있었고 덕분에 술을 마시는 것이 즐겁고 재밌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술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파는 맛집에 가도 함께 가는 사람이 말이 많거나 어색한 사이라면 그 음식은 맛이 없듯이 술자리도 같은 법칙이 적용된다는 것을 새삼 알게된 것이다.
내가 작년에 가장 즐겁게 먹었던 술은 청담에 있는 어느 일식집에서였던 것 같다. 영화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A와 발레단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B 그리고 A의 기타 선생님이자 뮤지션으로 활동하는 C 그리고 나 이렇게 네 사람이 모였다. 비가 왔던 어느 여름날이었고 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도록 철저하게 고립된 공간에서 네 사람이 안주 몇 개와 청하를 마셨다. 다들 멋있게 입고 나타났는데 아무래도 A가 너무 멋진 유명인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모두들 약간은 긴장한 상태로 만났던 것 같다. 우리는 서로의 직업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뿐, 서로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고 그랬기 때문인지 서로에게 공손하고 예의가 있었다. 술에 취하기는 하되 추함은 없었고 서로의 말에는 각자의 주장이 있었지만 그 말의 끝에 칼은 없었다. 우리는 여러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고 서로의 생각을 들으면서 각자가 서로 통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때론 유머러스한 이야기가 때론 야한 이야기도 오갔고, 무서웠던 경험이나 재밌었던 기억들을 하나하나 풀어내면서 서로가 어떻게 자라왔는지 조금씩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뭘 공부하는지 따위에 판에 박힌 신변털기질문 같은 것은 없었다. 상대방을 모르는 상태에서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 사람의 관계에 얼마나 좋은 영향을 미치는 지도 이 만남을 통해서 내가 알게 된 수확이었다.(이후에 만나는 인연에도 나는 최대한 그들이 상처를 받을 수 있는 주제에 대해서는 최대한 제외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서로에게 상처가 주는 말들은 알아서 가리면서했고 술을 먹는 내내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어느 사람하나 소외되지 않았고 어느 음식하나 맛있지 않은 것이 없었다. 우리는 처음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오래된 친구 같은 느낌으로 정말 편하게 술을 마셨고 기분 좋게 헤어졌다.
나는 아주 오랜만에 혹은 아마 처음으로 술을 마시는 행위가 즐겁고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그 이후에 우울함을 달래려고 술자리에 나를 부른 사람들이 많아서 다시 괴로워지긴 했지만 말이다. 적어도 ‘좋은 술자리’ 에 대한 나름의 기준이 생겼는데, 첫 째로는 내가 정신적으로 괴롭거나 힘들 때는 절대 술에 의존하지 않기로 한 것이고, 두 번째로는 나와 함께 술을 마시려는 상대에게 미리 연락을 해서 그가 나와 심각한 문제나 힘든 개인사를 화제로 꺼낼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며 술 약속을 청할 때는 약속을 다른 날로 미루거나 술이 아닌 커피숍으로 만남을 유도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그러니 한결 더러운 꼴을 보는 일이 줄었고, 나 또한 술자리 자체에 대한 거부감도 많이 줄었다. 작년에 내가 잘한 일이 있다면 첫째는 담배를 끊은 것이고 두 번째는 불편한 술자리를 많이 줄인 것이다. 정말 술이 마시고 싶어지면 차라리 집에서 혼자 맥주를 마시는 편이다. 기분 좋지 않은 만남과 기분 좋지 않은 술자리는 그냥 시간과 내 몸을 힘들게 할 뿐이라는 것도 알았으니 말이다. 남자이든 여자이든 한국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술과 커피 없이는 만날 장소도, 만나서 할 일도 없다는 것인데, 그래서 이런 기준을 만드는 것 자체는 좋은 시도였던 것 같다.
작년에 내가 이 술자리로 크게 얻은 교훈은 내 주변에 나를 정신적으로 괴롭게 하는 사람들을 가차 없이 버리자는 것이었다. 처음에 나는 그들이 바뀌기를 희망하며 그들의 이야기에 모두 귀를 기울였고 그들이 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왔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나를 기억하지 않았고 힘들 때만 나에게 기대어 쉬었을 뿐이었다. 나는 그래서 술자리의 즐거움 자체를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혹은 만남 자체의 거부감이 들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그런 사람들은 나를 어둠으로 끌고 갔다. 그런 사람이 적어도 내 주변에는 3~4명이 있었고 그들과 모두 연락을 끊고 술자리를 멀리함으로써 내 삶의 질이 훨씬 더 올라갔다.
내 주변에 요즘에 만나는 사람들은 술보다는 차를 더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다. 예전에 술로 괴로웠다면 요즘엔 아예 술이 고플 정도로 술자리가 적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런 것이 더 좋은 것 같다. 술자리가 적어지니 그 만남 자체에 내가 대하는 무게도 더 무겁고 더 신중하게 된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만나면 즐거운 사람들과 함께 술을 마시려고 한다. 아마 작년의 그 술자리가 없었다면 나는 의미 없는 여러 밤을 취한 채 잠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2014년 여름의 그 청담동 일식집의 기억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것 같다.
-Bor
2015년 1월 25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