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

도란도란 프로젝트 - 쉰여섯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뽀득뽀득
네가 남기고간 자국들
떠나간 발자국만 가지런히.


망설임 없이도 떠났던가
그 발자국 사이로도
단호함이 느껴져
서글퍼라


나는 그럼에도 여전히 이곳에서
너의 발자국을 되밟으며
헤아릴 수 없는
기다림의 시간을 보낸다


스쳤던 시간들을 잡으려
뒤엉켜 발버둥쳐도
그럼에도 너는 결국
돌아갈 채비를 했다


너의 길이 아니었겠지.
너와 내가 인연이 아니었음을 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너에게 온전히 솔직히 주지 못하였고
너에게 어떠한 것도 욕심내지 못하였던 것


미어지는 마음을 덤덤히 움켜쥐고
다음을 기약하며 손을 흔들어도
너는 그렇게 등만 내보이며
꿋꿋하게 나에게서 멀리멀리.


내가 너의 곁에서 걸었음을
그래도 그 사소한 사실만은
희미해져가는 발자국 언저리에서
두 세번즈음 떠올려 주기를.
아니 아쉬워 해주기를.



-Ram


1.
내가 사진 어플리케이션은 많아도 영상 어플리케이션은 잘 안쓰는 편인데, 지금까지 딱 영상 어플리케이션 중에 두 개를 나름 열심히 써봤다.
몇 번 찍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닌, 계속해서 업로드를 했었고, 덕분에 꽤 많은 영상들이 쌓였었다.
그 중에 하나는 지금 내 아이폰에서 삭제된 상태고, 하나는 계속 남아있다.
삭제된 어플리케이션의 내 첫 동영상이 생각난다.
그땐 몇 년 전 겨울이였고, 엄청 추웠고, 간밤에 눈이 많이 내려 많이 쌓인 상태였다.
나는 그 당시 아마 홍대를 가려고 길을 나섰고, 집과 전철역 중간쯤에 있는 골목을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며칠 전 받은 어플리케이션이 생각났다.
그 당시 아직은 베타버전이였지만, 그 어플리케이션을 만든 사람들을 나름 좋아했기에, 테스트 많이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실행.
그렇게 내가 찍은 첫 영상은 눈이 잔뜩 쌓여 아무도 밟지 않은 길을 내가 신은 털부츠로 뽀득뽀드득 밟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내용이였다.
필터는 아마 옛날 오래된 영상처럼 노이즈가 섞인 필터였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 어플리케이션은 내 아이폰에서 삭제되었다.
더불어 그 어플리케이션을 만든 사람들과의 가는 실과 같은 인연도 사라지는 듯 했다.
그리고 수십 개월 뒤.
또 다시 나는 새로운 영상 어플리케이션을 아이폰에 설치했다. 비슷한 다른 영상 찍는 걸 만들었는데, 한번 테스트 해달라는 부탁에서였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군말없이 바로 앱스토어에 접속해 어플리케이션을 받고, 열심히 사용했다. 그 역시 베타 버전이였을때였다.
첫번째 영상 어플리케이션보다 더 많이, 더 자주 찍었다. 버그체크와 피드백도 왕창왕창 보냈다. 애정이 있었기에 가능했었던.
그렇지만 시간은 모든 것을 해결해주고, 알게해준다고 했던가.
그 모든 애정이 모두 헛이라고 하긴 내가 너무나 아쉽고 아쉽지만, 소용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나 혼자만의 짝사랑이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되뇌어 생각해보고 뒤돌아봐도 계기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나의 진심을 많이 표현하려고 했었고, 말을 많이 안해도 진심은 통한다고 생각했었다.
지나온 시간들과 대화들과 발송했던 카드들이 애정어린 관심과 애정을 대변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그건 나 혼자만의 착각이였던 것 같다.
눈 위에 열심히 신나게, 혹시 앵글이나 촛점이 빗나가지는 않았을까 노심초사하며 찍었던 내 발자국 영상은 이제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


2.
자꾸 차 윗부분에 고양이들이 발자국을 낸다며 투덜대는 사람이 있다.
그 모습이 꽤 귀엽다.
예전에는 고양이들이 밤새 파티를 했는지, 발자국이 오밀조밀 투닥투닥 나 있는 모습을 내게 사진을 찍어 보내줬다.
그러면서도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했다.
만약에 그럴 확률은 적지만, 그 사람이 고양이를 키운다면 같이 있는 모습이 정말 꽤 귀여울 것 같다.
나는 그 모습을 자꾸 보고 싶겠지.
그렇지만 고양이든 강아지든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자체는 대단한 일이므로, 조금 더 심사숙고하라고 이야기를 했었는데.
결국 돌아오는 대답도,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어떻게 고양이를 키울까'다.


3.
내가 좋아하는 감성과 감정들. 애정어린 관심과 따뜻함.
그 모든 것이 그리운 요즘이다.



-Hee


1.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는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어느 곳을 간다 할지라도 선각자들의 발자국을 만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발자국의 개수를 보며 말한다.


“자 봐봐, 발자국들이 많으니까 이 길이 옳은 길이야”


옳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저, 다를 뿐인 건 아닐까? 아니 일단은, 스스로 사고하지 못하고 다른 이들의 발자국만 보고 옳음을 판단하는 건 별로이다. 물론 많은 이들이 걸었던 길은 보다 안전하고, 일반적이라는 성격을 갖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틀리면 혼나는 교육’을 교육받고 자라난 사람들은 그것 틀리는 것을 피해가는 것이 바로 ‘옳은 것’이라고 자연스레 생각한다.





틀린다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막연히 발자국들이 많은 길을 따라갈 뿐이다.


우리가 어떠한 가치를 추구할 때, 발자국을 의지하지 않고 나의 걸음을 걸을 수 있는 것. 그렇게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습관.


그렇게 자신만의 걸음걸이를 만들고 싶다.


그리고 외롭더라도 나만의 발자국을 남길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이고 싶다.



-Cheol


앞으로 걷는다.
걷다가……
내가 남긴 걸음을 뒤돌아본다.
유독 깊게 패인 발자국이 있었다.
가슴마저 움푹 패여 시달린 것이 몇 번
그 깊이의 고민에서 나는 한 번도 확고하지 못했다.
두려움 때문이었다.
발을 떼야했지만 미련은 자국을 남겼다.
그 발자국의 깊이가 먹먹하다.


발자국 위엔 눈이 쌓여있다.
눈을 돌려 앞을 본다.
내가 가는 길에 발자국이 남을 것이다.
난 이 길을 최대한 가볍게 가려한다.
이번만큼은 제대로



-Bor


2015년 2월 1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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