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도란도란 프로젝트 - 쉰일곱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발 사이로 비추는 햇살이,
살랑 거리는 공기가
왠일인지 포근했습니다.


사이사이 가지런히
날아드는 바람내음이
당신을 닮은 듯 아렸습니다.


당신,
그 봄을 밟고 오시나요


오롯이 빛을 받기엔 따사롭고
덮기엔 아쉬운 그런 오후즈음에
발을 내리고.


조금 이른 봄내음은 발의 결을 따라
얽히고 설키며
아직 채 닿지도 못한 당신 발끝 언저리에
서성이다가 옵니다.


저는 그런 수줍은 설렘으로
발을 내립니다.



-Ram


1.

어느정도 익숙하면서도 낯선 곳. 그렇게 마지막 아닌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널 만나러 갔었다.
짧은 청치마를 입고, 빠른 걸음을 내딛으며 혹여나 치마가 올라가진 않을까. 혹시 모기가 내 다리를 물어 흉해지진 않을까.
입술 위에 바른 립스틱이 지워지진 않았을까. 속눈썹이 빠져 볼에 묻어있진 않았을까.
몇 번이고 치마를 정돈하고, 화장실 거울 앞에서 립스틱을 몇 번이나 고친 후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었다.
눈이 마주치면 그냥 웃을까. 아니야, 마음이 약해질꺼야. 그냥 무표정으로 인사를 할까.
먼저 어떤 이야기를 꺼내야 할까. 먼저 인사를 하지 말까. 반가움으로 인해 붕 뜬 마음 가라앉히고 표정관리 잘하자.
수많은 고민을 하면서 계단을 올랐고, 또 내려왔다.
저 앞에 네가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먼저 아는 척을 하지 않았고, 아이폰으로 어디있냐고 메세지를 보냈다.
뒤에서 낯익게 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고, 그제서야 나는 아까 수많은 고민은 순식간에 머릿속에서 잊어버리고 뒤를 돌아 환하게 웃으며, 야 완전 오랜만이지. 라고 인사했다.
그렇게 가까우면서도 뜨문하게 옆에 나란히 서서 길을 걸었다.
저녁을 먹지 않았다는 서로의 말에 큰 호프집으로 향했고, 메뉴판에서 가장 크게 써있는 메뉴를 쏜살같이 정해 주문했다.
친근하면서도 어색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나는 너에게 결국 냉정하고 모진 사람이 되기로 마음을 굳히고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도 약해지려고 하는 마음을 부여잡으며 애꿏은 무거운 맥주잔만 만지막거리며 맥주를 연신 들이켰다.
모질기로 마음을 먹고 나서도 자꾸 너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가 궁금했다.
이제 정말 나를 모질다고 생각하겠지, 이제 내겐 등돌리며 돌아서겠지, 이제 다시 보지 않고, 볼 수도 없겠지.
그러면서도 이미 결심한 마음을 다지고 또 다지며 차마 제대로 눈을 보지는 못하고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냥 무슨 일이 있어도 계속 내 옆에 있어 달라고 할까. 내가 무슨 모진 말을 해도 넌 안가면 안되겠냐고 물을까.
아니야. 내 현실이 지금 너무 초라해. 누군가를 따뜻하게 대할 여유도 없고, 괜한 자존심에 생채기만 나서 더욱 얼음같이 대하겠지.
아니야, 그래도 떠나지 말아달라고 할까. 내가 밀어내도 꿋꿋하게 밀려나지 말아달라고 할까. 조금만 참아달라고 할까. 너무 내가 지금 힘드니 아무것도 묻지말고 옆에만 있어달라고 할까.
아니야, 결국 나는 너에게 상처만 줄거야. 행복할 수 없을꺼야.
차가운 말들을 내뱉으면서도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결국 너는 바라던 말을 내 입에서 들을 수 없었고, 나 역시 바라던 말을 너의 입으로 들을 수 없었다.


2.
요즘에도 하루에 수십번, 아니 수백번씩 감정이 오르내리고, 생각이 변한다.



-Hee


누군가 결혼하게 되는 이가 있다면
자고 일어난 아침 즈음에 그녀의 새하얀 발 뒤꿈치를 어루만지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발 뒤꿈치가 다 갈라질 만큼
늙어갈 즈음에도 그녀의 고생스런 발 뒤꿈치를 어루만져줄 수 있다면 좋겠다.



-Cheol


땀이 나고 냄새가 난다. 비누와 물로 닦아내지만 이내 곧 더러워진다. 어쩔 수 없다. 서야한다. 서야하고 걸어야하고 때에 따라서는 전속력으로 뛰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땀이 날 수 밖에 없고, 신을 신으니 냄새가 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육체에 가장 아래 위치해있고 가장 쉽게 더러운 곳으로 인해 나는 이 땅에 설 수 있다. 설 수 있다는 것은 움직인다는 것이고 움직인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이다.


살면서 발을 쓸 일이 줄어든다. 발보다는 허리를 써야한다. 앉기 위해서다. 앉는다는 행위는 멈춤이고 멈춤은 곧 죽음이다. 그래서 직장에서 죽지 못해 사는 것 같다. 여행을 떠날 때는 항상 다리를 쓴다. 내 발로 낯선 곳을 탐험한다. 끝없이 밟는 행위를 반복하며 새로운 것을 보고 새로운 것을 느끼며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


아 그립다. 한 없이 걷던 그 때 그 바람과 햇살이 그립다. 다시 떠나고 싶다.



-Bor


2015년 2월 8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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