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쉰여덟 번째 주제
** Bor의 글을 쉰여덟 번째 주제까지만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주기적으로 Bor의 글을 읽을 수 없어 아쉬운 마음이 큽니다.
Bor에게 한겨울에 노릇노릇 구운 가래떡에 찍어먹는 진한 조청처럼 달콤한 행복이 스며들었으면 좋겠습니다.
-Ram, Hee, Cheol
네가 너무 투명하여 처음, 나는 겁이 났었다.
티끌같은 나의 조각이 행여 너를 망칠까
나는 지레 겁이 났었다.
도도하고 새하얀한 너의 자존심에도
조금씩 조금씩 네가 나의 색으로
물들어 가는 것이
조심스럽고 또 설레었다.
우리는 봄 꽃같은 분홍빛
햇살같은 노란빛으로
그렇게 서로를 물들여갔다.
나는 당신을 아끼는 만큼
나의 색으로 널 물들였다.
욕심나는 만큼 네게
덧칠하고 또 덧칠하고.
마음의 무게를 못 견디어
네가 떠날 줄 모르고
나는 그랬다.
그럼에도 나는 네가
나를 깨끗이 넘기고
새로운 이를 맞이하는 때에
그 투명했던 두 뺨에
나의 희미한 흔적이 남기를
-Ram
1.
스케치북 카페에 갈 일이 있는데,
아직까지 가지 못하고 있다.
스탬프 꽉 찬 카페 명함을 선물로 받는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은은하게 기분 좋은 일이다.
따뜻해지면 가서 향 좋은 커피를 마셔야지.
2.
평소에 내맘대로 했던 윗몸일으키기 자세를
어찌어찌하다 바꿨는데,
참된 자세같다. 배가 무지하게 땡기지만
이제야 제대로 된 자세로 운동하는 것 같아 기분은 좋다.
3.
올해에 음악 페스티벌을 가보려 한다.
내 성격엔 어떤 뮤지션의 콘서트에 가려면,
그 뮤지션 노래를 꼭 다 숙지하고 가야, 직접 들을때 감동이 더해진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앨범단위로 노래를 듣지 않기 때문에
참으로 어려운 일이였다.
그렇지만 그런 편견을 깨고 올해는 여러 뮤지션들이 나오는 페스티벌에 가보려 한다.
나는 또 어떤 편견을 얼마나 더 깰 수 있을까.
4.
“산다는 건 살아 춤추며 가는 것. 어둠 속에서도 눈물 속에서도
노래하고 춤추며 싸워가는 것.” (박노해)
5.
낯선 길을 걸으며 하늘을 바라보았을 때, 하얀 실구름 떠다니고 새파란 하늘일 때.
기분이 좋아 날아갈 것만 같다.
조용함과 아늑함이 가미되면 더할 나위 없다.
6.
사람과 사람이 만날땐 서로 꾸준한 노력이 필요한 것인데,
헤어질땐 단촐한 말 한 마디.
꾸준한 노력의 시간을 뒤돌아 서는건 순식간이다.
무엇이 그 소중한 시간들을 그렇게도 외면하게 하는 것일까.
-Hee
하얀 스케치북을 앞에 두었을 때 우리는 즐겁다.
각종 색연필로 그려나갈 수 있는 공간이 기쁘다.
때로는 엎질러 진 물에 종이의 일부가 물들고 일그러지기도 한다.
그래도 구태여 화를 내지는 않는다.
차차 시간이 지나 일그러진 종이가 마르고 반듯해지면
다시금 칠하고 싶은 색을 칠할 수 있기에
함께 할 수 있는 이가 있다면 더욱 기쁘겠다.
때때로 우리는 사이가 멀어지기도 하고,
저만치 떨어진 모서리에서 각자의 그림을 그리기도 하지만
이내 우리는 다시금 만나 하얀 스케치북을 함께 그린다.
함께이기에 새로운 것들을 그릴 수 있는 우리이고 싶다.
그렇게 한 장의 종이 위에 함께 일 수 있다는 것,
그게 사랑이고 싶다.
그렇게 너에게 나의 스케치북 한 켠을 내어주고 싶다.
그리고 네가 그 곳에 머물렀으면 좋겠다.
네가 머물지 못할 만큼
나의 스케치북이 넓지 못함에 나지막이 아쉬워할 뿐이다.
-Cheol
예술과 삶
스케치북을 다시 잡게된 것은 대학교 4학년때의 일이다. 그때는 내 자신의 문제와 가족간의 불화, 여러 여자문제로 힘들었고 개인적으로 의지를 할 곳이 필요했다. 미술치료라는 강좌를 통해서 심리학에 관심이 생겼고 강의를 들으면서 여러가지 그림을을 그렸다. 내가 그리는 그림의 형태와 크기 그리고 스케치북 안에서의 배열상태 그리고 그림이 전반적으로 주는 분위기와 색상을 종합하여 나의 심리상태를 알 수 있었다. 놀랍게도 그림속의 나는 당시의 나의 모습과 상당부분 일치했었고 당시의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학기가 마무리 될 무렵에는 학교에서 참여한 상담과 더불어 미술치료강좌에서 했던 여러가지 활동들이 내가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올 수 있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얼마전에 서점가를 휩쓸엇던 책 중에 이라는 책을 접하면서 나 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단순한 색칠하기를 통해서 심리적인 안정감을 얻고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이 사회에는 뭔가가 억눌린 것들이 많은 반면 어느 곳에도 무언가를 적절히 풀 수 있는 수단은 없다는 것을 느꼈다.
직장생활이든 사업이든 우리가 경제활동을 시작하면서 가장 잊고 살아가는 것들이 바로 예술활동인 것 같다. 예술을 통해서 인간은 가장 순수한 즐거움을 맛보고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고 난 생각한다. 예술활동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들의 삶이 그리고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가 폐쇄되고 억눌리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정치에 대한 실망감, 비관적인 경제전망, 그리고 생존과 경쟁으로 가득차있는 현실. 그 속에서 우리가 위안과 힐링에 목 매는 이유도 사실은 표현과 표출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는 탓인거 같다. 개인적인 예술활동이 아마 앞으로 더욱 인기를 끌게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회가 진보하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 사실은 정치혁신과 개혁이겠지만 몸 사리기에 바쁜, 제 한 몸 살아남기에 바쁜 사람들이 그런 것에 참여할 확률은 앞으로도 극히 적다. 대신 각자의 욕구를 풀어낼 대안으로 이런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것을 나는 ‘소극적 저항’ 이라고 보지만 이것이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용인된 자유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Bor
2015년 2월 15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