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육백 열 여덟 번째 주제
나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상대방 이름 석자
헷갈릴 일은 없을 줄 알았다.
신입생 때
저기야, 누구야
하는 부름은 애정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충 30대 중반 선에서
맥없이 그 생각이 무너진다.
어느 순간
어, 아는 사람인데 이름이 뭐였지,
내가 만났던 걔,
그때 어디서 뭐 했던 그사람,
이렇게밖에
기억하질 못하게 되었다.
오늘 만날 사람도
가는 길에 이름을 몇번을 되뇌었는데도
집에 오니 김씨였는지, 이씨였는지 싶더라.
이 지독한 뇌가
용량을 끝내 다한 것인지
아니면 이내
이름따위는 저장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인지
알수는 없겠지만
이따금 추억이 이름을 잃었다.
내 기억의 대부분이
이름들로 이루어져 있었거든,
사람의 이름도
물건의 이름도
지역의 이름도
가게의 이름도
언제부터 흐릿한 것인지
나는 큰 가지만 남기고
다 잘라내 버렸다.
잔뜩 울어대면서 잃었는지
곱씹는 걸 깜빡하다가 잊었는지.
놓쳤는지 지웠는지
알 도리가 없어졌다.
너는 잘 지내고 있을까,
그럼에도 기억하는
이름 속에서 말야.
-Ram
'내가 가지 않아도 되는 파티엔 초대 받았다. 초대 명단엔 내 이름이 틀리게 적혀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의 노래 한 구절이다. 요즘 이 구절이 종종 머릿속에 맴돈다. 있지 않아도 될 자리에 있는 것만 같은 기분. 나름 애정을 갖고자 노력을 하지만 그 노력은 번번이 실패로 끝이 난다. 하지만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고. 불안하고 별로인 마음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다시 밀어내고 치료한 뒤 다시 마음을 먹는다. 잘할 수 있다고. 그래도 그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는 이(들)의 마음엔 내가 없는 것 같아 보인다. 내가 알고 있는 나와 누군가가 알고 있는 나는 매우 달라 보인다. 나는 나라고 반문하고 싶지만 그만둔다. 이미 단단하게 고정된 프레임엔 누굴 비춰도 도무지 달라질 것 같지 않아 보였다. 하고 싶은 말들이 있어서 입술을 떼었다가 다시 다문다. 동상이몽은 끝나지 않고, 상상은 더욱 커지고 결국 언젠가 현실이 될 것이다.
-Hee
이번 주도 휴재합니다.
-Ho
많이 비치라.
이름대로 살아가게 된다는 말이 있다.
어릴 적부터 내 이름을 좋아해본 기억이 없다. 애매하다 생각했다. 예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ㅅ’이 들어간 다른 예쁜 이름을 가진 친구들이 부러웠다. 서연 서윤…
이름을 좋아하지 않아서인가.
내 이름대로 살아가지 못했다. 학창시절부터 튀지 않게 조용히 눈에 띄지 말자. 있는 듯 없는 듯 빨리 졸업하고 싶었다. 심지어는 내가 기억되지 않았으면 해서 고등학교 때는 찍힌 사진도 거의 없고 졸업앨범도 구매하지 않았다.
이름을 인정하게 된 것도 얼마되지 않았다.
나 자체를 이해하고 좋아하려 노력하면서부터였다.
이름이 불리는 게 좋다. 생각해보면 친구한테조차 내 이름을 불려본 적이 많지 않았다. 이름 불리는 것만으로도 따뜻해진다.
이름대로 살게 된다는 게 정말일까.
-NOVA
2025년 11월 9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