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육백 열 아홉 번째 주제
요즘 그런 게 좋더라.
나는 딱 요만큼만
즐기는 작은 케이크가 좋다.
어떤 날 좋은 날에
따끈한 커피랑 먹는
단 것들.
예전에는 케이크나 단 것을 먹는
그 자체가 중요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좀 다른 것 같다.
그냥 시간내서 떠들고
웃고 하는 모양새에
그런 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커피만 덩그러니 있는게
괜스레 허전해뵈는 걸 보니
간격을 못 견디는 나이가 되었나보다.
한참을 친구와 떠들고 나면
사실 케이크 한두입 먹고 일어날
일인데도
괜스레 그렇게 먹어야 할 것 같다.
그냥 그런게 좋더라
요즘은.
조금 나이든 감성이라고 해도 말야,
넉넉해보이고 싶은
그런건가보다.
웃기는 가을날.
-Ram
1.
그날은 친구의 이사가 마무리되고 집들이를 하기 위해 모인 날이었다. 축하하는 의미로 그 당시 수원역 앞에 있는 자주 가던 가게에서 케이크를 사고, 나름 기분을 낸다고 (말 그대로) 포도주를 샀다. 다들 옹기종기 모여앉아 깔깔대며 초를 불었고, 포도주를 따라 짠을 하고 마셨는데 모두 한마음으로 포도주가 맛없다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 뒤 우리는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밤 산책을 하면서 컴컴한 골목 안 가로등 밑에서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었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밤새도록 고스톱을 쳤다. 동이 틀 무렵 정말 아무 데나 누워서 잠을 잤고, 일어난 뒤 편한 옷 그대로 입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 여름밤이 있었다.
2.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오랫동안 인연을 지속하고 있다는 자체는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그건 억지로 꾸민다고 될 일도 아니고, 무작정 서로 좋은 말만 한다고 될 일도 아니다. 진심으로 상대방을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중요하지.
-Hee
1.
마음을 먹기만 한다면야 케이크쯤이야 한 판을 사서 자르지도 않고 그대로 들고 퍼먹을 수 있다. 사실 때때로 그렇게 하고 싶은 기분이 되곤 한다. 포근한 느낌의 생크림 케이크를 한입 가득 넣어 먹는 상상을 하면 그 즉시 마음이 몽글해진다. 그런데도 여태까지 그렇게 해본 적은 없다. 건강에 대한 염려, 누구라도 알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지키고 싶은 체면, 기어코 다 먹지 못하고 무참히 파헤쳐진 채 냉장고에 들어간 케이크를 다음날 다시 보게 됐을 때의 자괴감 등 순간의 객기를 눌러주는 요소들은 많았고, 효과는 확실했다.
2.
드디어 주방에 오븐이 들어왔고 어제 첫 케이크를 구웠다. 지영이 임신성 당뇨에 걸린 탓에 케이크를 먹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전혀 못 했는데 임신성 당뇨 후기를 찾아보면 치즈케이크가 혈당을 높이지 않는다는 후기가 넘쳤다. 나의 상식으로는 조금도 이해가 안 되지만, 아무튼 그래서 첫 케이크는 바스크 치즈 케이크로 정했다. 설탕은 대체당으로 변경했고, 전분도 넣지 않았다. 다행히 맛도 혈당도 안정적이다. 지영이 산후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날에 맞춰 성심당에서 케이크를 사 오겠다고 했는데, 어쩌면 내가 직접 만들어도 되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때마침 곧 크리스마스 시즌이 시작된다. 지영은 그걸 원치 않겠지만 내 마음은 이미 휘핑기를 집어 들었다고 볼 수 있겠다.
-Ho
생일이 되어야만 먹는 케이크.
아무 날도 아닐 때 먹는 건 조금은 사치라 생각한다.
생일 당일이 되면 밤 9시가 넘어 가족끼리 거실에 둘러앉아 케이크를 먹는다.
생일 축하 노래, 초 불기 그런 뻔한.
그런 뻔한 게 좋다.
이제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서운하다. 예전에는 오만하게도 이런 이벤트가 식상하다 생각했는데 이제와보니 이 시간만큼 기억할 순간도 없을 듯하다. 매번 같을지라도.
이번 생일은 운이 좋게 두 번의 축하 케이크와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나를 진심으로 축하하는 사람들과의 자리가 있다는 건 영원을 빌게 될 만큼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
생일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사치스러운 케이크가 유일하게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시간이랄까.
-NOVA
2025년 11월 16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