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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

도란도란 프로젝트 - 육백 스무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단어만 보면 기분이 먹먹해지곤 한다.


막연히 아직 나와는

멀길 바라면서도

언젠가 내게 닥칠 일이라는 것을 아니까.


눈감고 뒤돌면 남의 일 같은데

그곳에 서 있는 내가 있다.


작은 동물의 장례조차

마땅히 치뤄본적 없는 내가

언젠가의 사랑하는 사람의

한줌 흙을 견딜 수 있을썽 싶다.


인간의 시간이 유한함을 알지만,

야속하게도 그 끝은 알 수 없다.


망각이 곧 축복이지만

사랑이 곧 족쇄가 되고

기쁨이 되고, 얼기설기 얽혀있는

인간사가 얼마나 나약한지.


죽음이 언제 드리울지 모르는

여러 날들로부터

나는 무던히도 도망쳐왔다.


까마득한 날들,

그보다 더 멀리 있길 바라는

어떤 끝의 시간.


그렇게 기도할 뿐이다.



-Ram


1.

얼마 전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장례식장에 가는 발걸음은 언제나 무겁고, 마음은 어수선하다. 앞으로도 당연하게 가는 일들은 없을 테니 그저 호흡을 크게 하는수 밖에.


2.

가끔 죽음에 대해 상상하곤 한다. 어떻게든 더 나은 삶을 위해 스트레스를 받아 가며 버티는 사람도, 육체적인 노동을 감당하며 여러 날, 여러 해를 전투하는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도, 모든 문제들을 회피하고 도망가 버리는 사람도, 타인에게 아랑곳하지 않고 상처를 주는 사람도 결국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순 없다. 어차피 모든 것을 가져가지도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데 그렇게 부대끼고, 시샘하고, 미워해야 하나. 모든 좋지 않은 감정들을 해소하지 못하고 슬프게 죽을 바엔 조금 더 편안하게 생각하고, 사랑을 나누어 주고, 베풀고, 웃으면서 좋은 감정들을 차곡차곡 쌓아서 행복을 꽉 채운 채로 죽고 싶다.



-Hee


고등학교 선배이자 한때 우리 선생님이었고 지금은 동료로 함께 일하고 있는 창준 선배님의 자녀 상을 다녀왔다. 안 그런 장례가 어디에 있겠냐만 얼마 살아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난 아이의 장례식은 유독 아프게 마음을 짓누른다. 창준 선배님의 자녀는 겨우 열여덟 살이었다. 선배님이 우리 반 담임이셨을 때 우리가 딱 그 나이였다. 그 시절을 떠올리자 괜히 더 원통한 마음이 들었다.



시간이 맞는 친구들 몇 명과 함께 조문하러 갔다. 헌화를 마치고 자리에 앉았는데도 말문이 잘 열리지 않았다. 평소에는 실없는 소리를 잘만 늘어놓던 친구조차 조용했다. 선배님은 예전처럼 나를 우리 반장이라며 친근하게 맞아주셨다.

“우리 반장은 잘 지내고 있니?”

“저야 뭐 늘 그렇듯 잘 지내죠.”

입 밖으로 나온 말을 그저 그런 인사뿐이었다. 선생님은 어떻게 지내셨냐고 차마 되묻지 못했고, 며칠 안에 아이가 태어날 거란 소식도 차마 전할 수가 없었다. 준비해 갔던 뻔한 위로의 말만 몇 마디 건넸다.



빈소를 나서며 우리는 세상이 대체 왜 이렇게 매정하고 야박하냐는 말을 담배 연기처럼 흩뿌렸다. 연기는 금세 사라졌고, 먹먹한 마음을 머금은 채로 나는 다시 나의 세상으로 돌아왔다.



-Ho


죽음 이후를 가끔 상상했다.

어떻게 죽을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죽고나서는 내 뜻대로 행해지길 원한다.


이게 유서가 될지도.


생 전 나와 관련없는 사람은 안왔으면 한다.

굳이 나에게 관심없던 사람까지 내 마지막을 함께 하고 싶진 않다.


만약 장례에 왔다면 우는 소리는 넣어뒀음 한다.

나는 내 자리를 알고 잘 지킬테니 그대들은 나의 빈소를 기쁘게 지켰으면 한다.


묻지말고 바다에 뿌려졌으면 한다.

흙은 싫다. 답답한 느낌이다.

내 꿈이 어릴 적 인어였다. 평생 물을 좋아했는데 수영을 못해봤다. 죽고나서는 자유롭게 떠돌고 싶다.


이것들을 할 수 없다면


배 타고 멀리 여행이라도 다녀왔으면 한다. 나를 추모한다는 걸 구실로 삼아 멀리 아주 멀리 좋은 여행을 나대신 다녀왔으면 한다.


가능하다면 여행가는 김에 뿌려주길.


이 글을 쓴 나는 우여곡절 끝에 평온을 얻었다.

부디 글을 본 사람도 평온에 이르길.


라고 말하고 싶었다.



-NOVA


2025년 11월 23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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