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도란도란 프로젝트 - 육백 서른 다섯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날씨가 따스해지면

꼭 미세먼지가 같이 올라온다.


차가울 수록 파란 하늘,

따스할 수록 팍팍한 하늘.


봄내음이 느껴지기 전에

흙냄새가 먼저 난다.


뿌얘지는 날들이

나는 퍽 아쉽다.


내가 기다리던 봄이 이런 건

아니었는데.

나는 좀 더 파릇한 봄을 기대했던 것 같다.


푸르던 것은 이내 죽어가는 걸 알지만

눈 가리고 아웅하며

가려지는 날들이

나는 퍽 아쉽다.


나는 추운 겨울 내내

더 나은 날들을 고대했던 것 같다.


인내하면 좋아질 줄 알았던 날들.


그러다

봄이 오는 줄 몰라서

날을 온통 즐기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문득

돌아보면


그래도 잘 해냈다고

잘 견뎌온 날들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이렇게 뿌연 봄을 보면서 말야.



-Ram


가끔 원효대사 해골물을 떠올리며 그걸 내 일상에 대입해 본다. 20대 땐 새벽을 지새우고 동이 트기 직전에 잠이 들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침이 되고,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한 적이 많았다. 불면증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생각하고 싶은 게 많았고, 보고 싶은 것들이 많았고, 잠을 자는 게 아까운 적도 많았다. 수면이 부족한 터라 다음날엔 분명 영향이 있을 터. 사람이 계속 '나는 피곤하다', '너무 피곤하다'라고 생각하면 정말 피곤하지 않은가. 아마 표정을 만드는 얼굴의 근육마저 지쳐서 마냥 피곤한 사람이 된다. 하지만 나는 그 다음 날도 알차게 보내고 싶었다. 피곤함에 정복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내 자신을 속였다. 나는 어제 분명 12시 전에 잠들었고, 6~7시간을 충분히 자고 일어났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그렇게 내 자신을 속이고 피곤함을 모른체하니 피곤함이 있는 지도 모를 만큼 또 알찬 하루를 보냈다. 미세먼지가 많은 뿌연 날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뉴스에서 내일 대기에 미세먼지가 많다고 들었다. 하지만 나는 다음날 테니스를 칠 계획이거나, 러닝을 할 계획이거나, 등산을 갈 계획이다. 그러면 또 그 뉴스를 못 들은척 한다. 분명 미세먼지가 많다고 머릿속으로 되뇌인다면 뿌연 하늘 아래서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 그득그득한 먼지들이 내 호흡기로 한웅큼 들어온다는 상상까지 할 테니. 그 이후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꼬리에 꼬리를 물며 결국 내가 임하고 있는 운동이든 활동에 100% 집중할 수 없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냥 어떨 땐 밤에 아무것도 모르고 달다고 생각하며 해골물을 마신 원효대사의 마음으로 지내도 괜찮은 것 같다.



-Hee


세상 모든 게 어떠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느꼈던 예전 어느 시절에는 제발 쓸데없는 의미 부여 없이 삶을 좀 심플하게 살아가자고 되뇌었는데 그게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그런데 어째선지 이제는 나라는 인간이 삶을 겉핥기 식으로만 전전긍긍 살아가고 있다고 느껴진다. 쇼츠를 보다 도파민에 절여진 스스로를 깨닫게 된 새벽의 께름칙한 기분이 종일 이어진다고 할까.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먼지가 온몸을 휘감고 있는 것 같다. 굳이 탓을 하자면 빌어먹을 인천의 미세먼지 잔뜩 낀 하늘 탓을 하고 싶다.


뿌연 하늘이 미치도록 답답하게 느껴진다. 만약 지금도 내가 싱글이었다면 미세먼지 없는 어느 나라로든 이민을 계획할 정도로 말이다. 그럴 때면 그나마 최근에 다녀온 몽블랑 산군이나 발리의 정글에서 본 쾌청한 하늘을 떠올려본다. 어쩌면 여유가 너무 없는 최근의 생활에 지친 것일지도 모르겠다. 삶을 살아내야 할 동력원은 점점 뜨겁게 자라고 있는데 쌓이는 열기를 배출하는 냉각시스템에 과부하가 온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도 기껏 계획해둔 제주도 여행을 취소했다. 그런 여유를 즐기는 게 어째선지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죄를 짓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환장할 일은 그렇게 느껴지는 이유조차 몰라서 지금도 여전히 골똘히 생각 중이라는 사실이다. 시원하게 한 번 울어서 나아진다면 대성통곡이라도 하고 싶다. 정말이지 도망치고 싶은 나날의 연속이다.



-Ho


사람들은 미세먼지를 두려워한다.


근데 나는 전혀 느껴본 적이 없다.


미세먼지 높음일 때는 마스크를 낀다던가 외출을 안한다던가 심지어 공기가 안좋다는 걸 체감해본다거나 해본 적이 없다.


몸에 나쁘다는 건 거의 안하는데 (의도해서도 아니고 의도하지 않아서도 아니지만) 진짜 피해야 할 때는 제대로 피할 생각이 없는 것 같기도.


(그래서 내가 코로나에 세 번이나 걸렸던건가.)


큰 병원에 가본 적은 없지만 몸에 잔병치레같은 하자가 많다. 이렇게 주의하지 않다가 망가지는 건 아닌지..



-NOVA


2026년 3월 8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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