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예순여덟 번째 주제
그녀는 항상 칼같은 단발머리
단정한 옷차림
그리고 한결같은 미소.
약속이라도 한 듯 늘 그런 모습이었다.
작은 체구를 가리려는 듯
호탕하게 웃는 미소가 예뻐보였고
들여다보면 꼼지락거리는 손도
퍽 나쁘지 않아 보였다.
잰 걸음으로 늘 바삐 움직이고
화장은 하는 것 같지 않아도
입술은 빨갛게 챙겨바르는 걸 보니
그래도 꽤 매력있어 보였다.
커피를 좋아하는지 빨간 립스틱이 묻은
컵을 손에 움켜쥐고 총총 뛰어가는 모습이
사실은 눈에 자주 들어왔다.
그녀는 항상 자신감있는 발걸음,
말할 수 없는 깊은 아우라로
뭇 시선을 사로잡았다.
동경이었고, 바람이었다.
항상 챙겨바르던 립스틱,
지나온 자리에 흩어지던 향수 냄새,
또각이던 구두소리
그녀가 항상 지녔던 모든 것들이 곧 그녀였다.
시간이 지나 많은 것이 변하고
단발을 고수하던 그녀의 머리는 긴생머리가 되었고
종종 캐주얼한 차림의 수수한 모습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늘 항상 한결같았다.
돌아본 겉모습보다
묵묵히 곁을 지켜주고,
조잘조잘 해가 질 때까지 웃어주고
스쳐 지나갈 법도 한 모든 것에 눈길을 두었다.
그녀는 늘 항상 그랬다. 언제나.
-Ram
1.
내 안의 나를 지키려하는 이기심과 현재의 감정을 늘 표현하고 싶은 욕심들의 충돌.
항상 아슬아슬하게 선을 지키려다가도 팽팽하게 버티던 충돌이 한 쪽으로 조금이라도 기울때
기우는 낯섬에 한번 놀라고, 그 낯섬을 시작으로 마음이 쉽게 진정되지않아 또 한번 놀라고.
그래도 그래도 또 다시 안정을 찾으려 백번 천번 생각하고 수없이 입장을 바꾼 끝에
이내 찾아온 평온. 그 평온을 지키고자 오늘도 노력하는 애쓰는 마음들.
2.
기억이고, 추억이고, 그 모든건 이미 지나간 것이 분명하고,
더 중요한 건
계속해서 펼쳐질 내 앞의 시간들.
3.
문득 궁금했다.
왜 이 사람은 힘든적이 없는 걸까?
분명 사람이면, 1년 365일 중에 힘든 날이 분명히 있는데 말이지.
나는 어느정도 이제 힘들면 힘들다고 표현할 줄도 알고,
때론 징징거릴줄도 알게 됐는데.
이 사람은 내게 한번도 그런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그러다 우연찮게 술자리에서 그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항상 좋은 것만,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다고.
충분히 고개를 끄덕일 이유였다.
한편으로는, 만약 정말 힘들땐? 이라는 물음표가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정말 힘들때 나에게 때론 징징거려도, 기대도, 난 충분히 든든할 수 있는데.
내겐 그렇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데.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어느덧 단단하게 굳어져서
내가 아무 힘도 되지 않으면 어쩌지, 라는 걱정이 됐다.
4.
나는 냉장고에서 꺼낸 아주 차가운 물을 싫어한다.
그래서 항상 우리집 김치냉장고 뚜껑 위 공간에는 커다란 주전자가 놓여져있다.
우리집에 정수기는 있지만 그 커다란 주전자에 정수기 물을 펄펄 끓이고,
각종 티백을 넣어서 먹는다. 우엉차, 둥굴레차, 보리차, 헛개나무차 등등.
그렇게 티백을 우려낸 물을 식힌 후 반 정도는 물통에 덜어 냉장고에 차게 넣어두고,
나머지는 그냥 주전자 안에 그대로 둔다. 고로 그 물은 내 차지.
냉장고에 뻔히 물이 많이 있어도, 그 주전자가 비어버리면 엄청나게 허전하다.
그리고 내 책상에는 항상 컵이 하나 이상 놓여있다.
주전자에서 컵에 물을 따른 후 방에 가져와서 마시고,
또 다른 일을 하다가 물이 생각나 주방에서 또 다른 물컵을 방에 가져오고.
킁.
5.
내가 좋아하는 구절이야
그의 한 마디에 그녀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모형 심장에서 붉은 잉크가 엎질러졌다
소리 내어 읽어보니 어딘가 끌리는 데가 있었다
모형 심장에서 붉은 잉크가 엎질러졌다
종이 위에 베껴보니 왠지 근사하게 느껴졌다
모형 심장에서 붉은 잉크가 엎질러졌다
눈을 감고 외워보니 진짜 심장이 두근거렸다
모형 심장에서 붉은 잉크가 엎질러졌다
정말 좋은 구절이죠 그녀는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얘기했다
<모형 심장에서 붉은 잉크가 엎질러졌다>,성미정
-Hee
혼자 지낸다고 해서 외롭거나 힘들지는 않았다.
단지 갈피를 잡지 못했을 뿐이다.
집에 가기 위해선 제법 경사를 많이 올라야 했지만,
빛이 잘 들지 않는 반지하 였지만,
나로 인해 아늑했고 나다웠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집을 나설 때면
저 멀리 펼쳐진 관악산과 서울대학교 전경을 볼 수 있었다.
점심 시간 때면 한남동 어느 뒷산에 올라
한강과 강남의 전경을 볼 있었다
노을이 질 무렵엔 옥상에 오르면
파스텔처럼 펼쳐진 노을에 반쯤 걸친 초승달을 볼 수 있었다.
누군가는 철이 없다고도 하였지만
그런 소소함에서 일종의 책임감과 내 삶을 느낄 수 있었다.
단지 정체되어 있는 나를 피하고자 나는 나섰고,
이해 받지도 인정 받지도 못하는 곳에서
나의 한계와 눈동자를 마주본 채
단지 꼭두각시처럼
다만 버텨가고 있다.
-Cheol
바닥을 진작에 덥혔어야 했다. 이불과 바닥 사이 찬 공기는 겨우 두명 분의 체온으로는 데워질 기미조차 없다. 그렇지. 바보같이 베란다 문을 저렇게 훤히 다 열어놨으니. 깜깜한 벽을 더듬어 보일러 스위치를 누른다. 밤중에는 코를 비틀어 막아버리고 싶을 만큼 사납던 네 코고는 소리가 어느새 상냥한 날숨으로 흩어지고 있다. 혹시 깰까 그리 좁지 않은 바닥을 고르고 골라 딛는 걸음새가 더 느리고 옹졸해졌다.
아침식사를 차리려 싱크대 앞까지 가서도 한참을 가만히 서서 조는 게 하루 일과가 된 지 오래다. 찬 물로 얼굴을 훔치듯 적시고서야 새로 더운 밥을 짓고 반찬들을 담아낸다. 밤동안 녹혀둔 삼치도 노릇하게 굽고. 압력 솥이 뽀얀 김을 뿜어낼 때면 아침의 부산이 정점에 이른다. 시계도 덩달아 분주해져서 너를 깨워야 될 시간도 금세 오고야 만다.
너는 식탁 앞에 앉은 채로 졸다가 눈을 비비다가 수저를 몇번인가 뜨고서
“당신 발이 많이 시리더라. 잠은 잘 잤어?“ 묻는다.
“아니. 당신 베란다 문 좀 잘 닫으래도.” 시큰둥한 나는 네가 들으라고 한숨을 또 거칠게 내쉰다.
“어제도 소리가 심했지? 오늘부턴 정말로 소파에서 잘까봐. 그나저나 어제 누가 그러던데 요즘 쭈꾸미가 그렇게 실하데. 퇴근할 때 좀 사올까? 당신 쭈꾸미요리 진짜로 기가 막히게 잘 하잖아.”
니가 참 미운데도 도무지 제대로 된 짜증은 쉬이 낼 수가 없다. 한숨을 내쉬었던 입은 이내 꼬리를 올려 피식 웃고야 만다. 김이 풀풀 나는 밥공기를 비우는 동안에는 쌔까맣게 굳어있던 너의 피로도 나의 짜증도 어느새 흩어지곤 없다. 매일같이 새 밥을 지어 먹이는 이유는 오롯이 너를 위한 것이었다가 이제는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럴까? 오랜만에 쭈꾸미 볶음이나 만들어 볼까? 오늘 일찍 들어 올 거지?”
표현이 서툰 나의 방식이란 항상 이런 식이었다. 또 너는 이런 나를 참 잘 알고.
-Ho
2015년 4월 26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