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시간"

도란도란 프로젝트 - 예순아홉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엄마는 바밤바. 아빠는 누가바.
동생은 국화빵. 나는 아무거나.
우리가족의 아이스크림 공식.


일이 끝나고 아빠가 가끔 늦으시는 날엔
머쓱하게 검은 봉지에 아이스크림을 담아
내밀며 들어오시곤 했다.
물론 위의 공식대로.


그리고 가끔 보석처럼 숨어있던 자유시간.
땅콩이 들어있는 초코바.
무지무지 달다.


아빠는 아마도
가족을 생각하며 골라담은
아이스크림 사이에
딸래미 간식거리를
계산 중에 하나 툭,
던져넣으셨겠지.


투박하고 알 수 없었던,
참으로 어려웠던,
그럼에도 아주 아껴주시던
그런 아빠의 표현.
자유시간.



-Ram


간간히 고독하고, 외로워하며, 무언가 무력함에 사로잡혀 있는 시간이 있다는 자체가 큰 잘못이라 생각했다.
이런 감정은 정말 개인적인 것이며, 너무나도 사적이고 은밀한 것이기에 애초부터 누군가에게 이해받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 시간들이 다가오면 그런 감정들을 오롯이 느끼며 시간들을 자근자근 밟아가면 지나가는 것을 알기에
언제나 그렇게 해왔다. 그렇지만 그 밟아가는 시간동안 알수없는 자괴감과 낮아지는 자존감,
무언가 존재 자체가 의심스러워질때 이면으로 내가 잘못된 건 아닌가, 나는 왜 그래야 하는가, 자문하며 다시 악순환이 펼쳐졌다.
이런 와중에 며칠 전 에리히프롬의 글을 접했는데, 내게 생각지도 못한 큰 위안이 되었다.
인간은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를 얻었지만, 힘겹게 얻어낸 자유를 다시 도피하려고 애쓴다.
물론 이런 자유는 소극적인 자유이지만, 이 자유에서 도피하려는 본질적인 이유는 자유를 얻은 인간이 해방감에서 오는 고독감과 소외감, 외로움과 고립감이라는 것.
이런 소극적인 자유에 대한 인간의 이면을 낱낱이 파헤쳐야 해서 무엇을 위한 자유인가,라는 적극적인 자유에 대한 설명이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에리히프롬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는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았고, 그 잔잔한 깨달음이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현재 내가 누리는 자유는 바로 내가 존재하는 것이며, 나 이외의 타인 또한 각자의 자유를 지닌 개체이기에 앞서 말했던 시간들이 당연히 실제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약간 다른 맥락이지만 한나아렌트도 ‘사랑'에 대해 무게를 두어 이야기했던 것이 기억났다.
물론 굉장히 포괄적인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내 자신을 사랑해야 타인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
이런 생각들이 머릿 속에 꼬리를 물자 인생의 목적 중 하나는 그런 시간들을 조금 더 잘 이겨내고,
당연한 자아의 형태 중 하나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인정하기 위해 꾸준히 성숙해지고, 자신을 사랑하며, 존재와 성장에 대한 긍정을 위해 계속해서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고 느껴졌다.



-Hee


언젠가 밤 1시쯤, 누군가에게 물어 본적이 있다.
“안자?”
“네, 아직”
“안자고 뭐해?”
“특별히 하는 건 없고 그냥 벌써 잠들기 아쉬워서”


그 당시에는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는 대화였다.


나를 위한 시간들이 줄어들면서
왜 자꾸 늦게 잠들고 싶은지
요즘의 나는 이해가 간다.


어쩌면 일찍 잠들지 못하는 이들 중 많은 사람이
자신을 위한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인 건 아닐까



-Cheol


꽉꽉 들어찬 일정속에 짧은 자유시간은 아주 귀하게만 느껴지는 것 같아. 나는 운동하는 데에다 죄다 써버리곤 했지. 잘 마른 양말을 신고 러닝화 끈을 단단히 고쳐매고 내달리면 귀한 시간을 참 알차게 썼다 하는 느낌이 들거든. 때로는 비가 와도 내달려. 발 뒤꿈치가 엉덩이에 닿을 듯이. 땅바닥을 힘차게 딛고 팔도 세차게 흔들어야 하지. 그러고나면 잠이 쏟아져서 몰래 졸았던 날도 많았어. 시쳇말로 더럽게 피곤한 날에는 사감이 순찰을 하든 말든 침대에 올라가 자다 혼나기도 많이 혼났었지.


사실 자유시간이란 단어를 얼마만에 들어보는 건 지 몰라. 요즘은 자유시간의 의미가 조금 덜하거든. 일만 끝나면 아무런 제약없이 하고싶은 것들은 모두 할 수 있는데 그 시간들을 모조리 자유시간이라고 하면 값어치가 조금 덜해지는 것 같아. 예전에 1시간 남짓하던 자유시간은 조금 애틋한 느낌이었는데 말이야. 가뭄에 단비처럼 아무래도 자유시간은 꽉 짜인 계획 속에 있어야 더 보람차게 보낼 수 있는 것 같아. 운동도 하고 책도 읽고. 가끔은 죽은 듯이 푹 자고나서도 ‘아, 참 잘 잤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런데 지금은 '어휴 내가 미쳤지. 왜 그냥 잤을까’ 해. 퇴근하고서도 계획을 짜라고? 어휴 너 재수없게 그런 샌님같은 소리 좀 하지 말아라.


요즘? 요즘은 종일 공부만 해. 거짓말이 아니라 책도 정말로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읽어. 퇴근시간이 지나서도 도서관에 가면 정말로 다양한 사람들이 공부를 참 열심히 해. 그 모습들을 보면 나도 어쩔 수 없이 꽤 열심히 공부를 하게 되고. 우리 엄마가 보면 과일접시를 내밀지는 않더라도 흐뭇하게 웃을 정도로는 열심히란 말이지. 사실 조금 졸기도 했고 헛짓도 했는데 나 말고도 그런 사람들 많더라고. 그러고보면 공부하다 졸고 다른 짓 하는 건 인지상정 같은 거야. 오히려 나정도면 아주 양호한 편이라고 할 수 있지. 그래, 열심히란 말은 엄밀히 말해서 정직한 표현은 아니다. 됐지?



-Ho


2015년 5월 3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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