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일흔 번째 주제
그리운것은 전부 서울엔 없더라
코를 간질이던 바다 내음도
뜨문뜨문 피어나던 들국화도
까실한 엄마의 손바닥도
전부 서울엔 없더라
이곳에 살아도 숨쉬진 않았다
이곳에 머물러도 정붙이진 못했다
내 그리운 모든 것은
서울엔 없다
-Ram
1.
그 때 그 사람들은 없어도 장소만은 남아있는 곳.
하지만 안타깝게도 요즘에는 그 장소마저 남아있지 않은 곳이 늘어간다.
애틋한 장소들이 많은데, 자꾸 그 장소들이 사라져간다.
트위터 피드에는 자꾸 권리금 등의 문제로 건물주와 싸워 문을 닫거나 이전하는 내용이 잊을만하면 눈에 밟힌다.
그 장소에 아무 연고가 없는 나조차 마음이 꿍실꿍실한데,
심지어 나보다 5배, 10배, 40배는 자주 갔던 사람들. 그리고 주인의 마음은 어떨까.
장소에서 추억들이 샘솟아나기 마련인데, 이제는 그 장소를 택하는 일마저 주저하게 된다.
지금까지 알던 곳 이외의 새로운 곳에 무언가 내 마음을 주기가 겁이 난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껏 알던 곳이 최고인 곳들은 분명 아닐터인데.
그깟 장소가 뭐가 중요하냐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그 순간, 그 상황들을 모조리 기억하고 싶은 욕심이 크기에
눈에 담기는 물리적 공간이 기억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나 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추억이 담겨있는 곳들이 계속해서 존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2.
낯설고 어색한 것을 싫어하는 나여서 어느 곳에나 빠르게 적응하는 장점을 가졌다.
빨리 내 장소로 만들고 싶고, 빨리 내 눈에 익숙한 곳으로 만들고 싶고, 빨리 낯섬에 의해 불안정한 눈동자를 안정적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에.
그런데 나의 큰 단점은 길을 잘 못찾는다는 것.
길치보다는 방향치라고 해야 더 맞겠지.
정말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익히고 익혀야한다.
특히 옆에 누군가와 함께 할 때는 더더욱 길에 신경쓰지 않아서
어디가 어딘지, 이쪽으로 가면 저쪽이 나오는지 한번 가보고선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머릿 속에 그릴 수 있는 장소들은 엄청난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겠지.
-Hee
내가 거닐던 거리들
효자동은 아늑하고 꿈이 자라는 초록색이었다.
길 건너 보이는 광화문 쪽은 권위 있고 웅대한 보랏빛 이었고,
옆으로 난 길을 걸으면 나오는 삼청동은 아늑한 주황색이며,
밤이 되면 별빛 들을 수 놓은 것 같은 밤하늘의 진한 청색이었다.
이따금 비라도 내리면 마치 밤하늘의 별들이 나에게로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반지들이 자꾸만 눈에 들어오던 서교동은 주황빛이었지만 청명했고,
이태원과 한남동은 푸른 하늘 빛이었다.
혜화역은 어두운 주황색이지만 에너지가 충만했고 한켠으론 아늑했다.
다리를 통해 한강을 건널 때는 온통 회색 빛이었지만,
동작대교에는 한숨 돌릴만한 주황색 카페가 있고
다리를 건너 내려오면 진한 검은색과 파란색의 반포동, 청담동과 상도동이 나왔다.
그리고 그 아래로 서울을 떠받치듯 낙성대와 강남, 서초를 관악산과 우면산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낙성대의 언덕길을 따라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내가 살던 반지하 방이 있었고,
올라가는 길이 힘들긴 하였지만 오롯이 스스로일 수 있어 가장 나다웠으며 비장했다.
빼먹으면 서운한 곳들을 함께 덧붙이자면 연신내에서부터 올라갔던 맑은 회색의 은평구립도서관
한남동에서 일을 마치고 종종 옷을 사러 버스 한두 정류장만에 도착하던 보라색 명동과 노란색 신사동.
라면이랑 치킨 먹자고 놀러 오라던 친한 형이 살던 영등포.
차를 타고 다니자면 서울은 낮에는 참 넓고도 넓게 느껴지지만 밤이 되면 어디든 금새 도착한다.
그래서 밤이 되면 더욱 자유로워진 기분이 들던 나였다.
-Cheol
“촌놈들은 있다이가, 지하철이 한강 우에 지날 때 ‘아. 여가 바로 서울 맞네.’ 하고 울컥한다 안 하나. 어떻노. 니도 이제부터 맨날 두 번씩 여게 지나다니야 되는데.”
1호선 지하철이 한강철교를 지나고 있는 6시. 사내의 목소리가 난잡함 속에서도 뚜렷이 들려온다. 이곳에선 듣기 힘든 그리운 억양이 자뭇 반갑다.
“와. 여어가 진짜 한강 맞나? 여게서 자전거도 타고 맥주도 마시고 한다고? 좋긴 좋네.“
투박한 목소리의 호들갑이 귀엽게 느껴지는 순간. 차창 밖은 볕을 머금고 발갛게 빛나는 물결들. 아닌 게 아니라 나 역시도 그랬다. 이제는 내게서 사투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된 만큼 처음의 감흥도 희미해졌지만 내게도 한강이야 말로 서울이었다.
사내들은 사람들 틈을 비집고 창가로 다가가 밖을 내려다본다. 덕분에 어깨를 부딪히고서 몸을 뒤척이는 사람들의 낯빛에는 일말의 불쾌함조차 드러나질 않는다. 들뜬 사내들의 표정은 과연 얼마만에 이들과 똑같이 빛바랠까. 서울의 번잡함과 넌더리나는 낯설음에 혀를 내두르며 분노하고 슬퍼하고 지쳐버린 모습이 순간 겹쳐보였다. 당찬 마음만으로는 버텨내기 벅찬 서울 땅. 고향으로 내려가는 기차에 몸을 싣는 마음이 혹여라도 쓸쓸하지 않기를. 하루빨리 뼛속까지 화려한 서울사람이 되기를. 그들도 나도.
-Ho
2015년 5월 10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