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e Only One"

도란도란 프로젝트 - 일흔 한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내가 당신에게 단 하나가 아니었음을,
가장 먼저인 사람이 아니었음을,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나 둘 익숙해질 수록
하나 둘 미어지는 가슴도
무뎌져 가는 듯 싶었다.


나는 당신과 그저 같은 세월을 지낸 것 뿐이온데
당신은 어째서인지 더디게 오려는 건지
걸어온 시간이 지루해진 건지.
그래서 또다른 사람과 다른 시간을 걸어보려는 건지.


손톱만큼의 배려로
당신이 품은 또다른 연정을
꼬집어 흘기지 않았다.


혹여 돌아볼까 그 자리에 맴돌았지만
결국 당신은 그리도 즐겁게
또다른 색을 칠하고 있었다.


당신이 스스로 나의 존재를 깨닫기를
나의 소중함을 잃었을 때
되돌리기를 간절히 소망하기를.


[I’m not the only one - Sam Smith]



-Ram


어쩌면 짧았던 시간이였을지도 모를 그 당시에
너에게 나는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었고,
나 혼자만의 마음정리 후 내게 헤어지자고 고했었지.
하지만 넌 내 뒷통수라도 치듯 헤어지기 싫다고 했었고,
당황했던 나는 깨끗하게 헤어지지 못하고 끝내 얼버무리고 말았지.
역시 말은 생각과 마음을 고착화시키는 능력이 있었고,
하지만 내 입에서 헤어지잔 말이 나왔던 그 순간,
이미 내 마음은 순식간에 정리되어버린 것을 알았고,
더이상 내가 널 좋아하지 않고, 더이상 노력하고 싶지도 않다는 것을 알았어.
뒤늦게 넌 내게 계속해서 잘해주려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난 단 한 순간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고,
어쩌면 이미 헤어져버린 너와 내가 다른 무엇을 기대하긴 힘들었지.
끝내 날 만나러 온 널 만나지 않았고, 그렇게 너와 내 사이는 끝이났어.
어쩌면 넌 날 원망할 수도 있겠지만,
이건 내 잘못도 아니고, 너의 잘못도 아니고,
그냥 너와 내가 같은 마음일 수 있었던 타이밍이 어긋나버린거지.
나는 맞지 않은 타이밍을 위해 내가 조금 더 마음을 주고, 많은 노력을 하고,
혼자 마음앓이를 절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내 자신이 끙끙거리면서 상대방이 정말로 날 좋아하고 있는 것이 맞을까하는 의심에,
마음 졸이며 힘들어하는 연애는 절대 하지말자고 명심했어.
내 명심 때문인지, 아니면 인연이란 것이 있는건지, 운이 좋은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정말 내가 힘들어하는 연애는 하지 않았고, 내 옆엔 좋은 사람이 있게 되었지.
그때와 지금의 나는 아마 웃은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그때 그 순간들 속에 나를 조각조각 떠올려보면 지금 순간과는 완전 다른 내가 있었어.
하지만 나는 그때의 내 자신도 사랑해. 전혀 후회하지 않아.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니까.



-Hee


공동체 속에서 존재하는 개인
절대적인 나의 영역
나는 그것이 좋다


내 속에 존재하는 혼란
무질서
원초적인 본능들
그 것들을 묶어두고 싶지는 않다


자연스러운 것
그 것은 무질서 속 조화와 균형
그러한 것에 대한 착각


정돈된 것들
규칙적인 것들
특정한 방향성
그 것들과 함께 존재하는
내 안의 모순


그런 나 자신을 직시하기
나의 눈동자를 바라본다.



-Cheol


“너는 돈도 많은 놈이 차는 왜 안 사. 차는 인마 니 몸 편하라고 사는 게 아니라니까 그러네? 잘 들어, 이건 차로 여자나 꼬시라는 조잡한 충고랑은 급이 달라.”


“다르긴 개뿔. 내 나이가 몇인데 차를 사요.”


지원이형이 새로 산 bmw를 뽐내며 심심하면 강릉으로 내달리곤 했던 계절의 어느 밤. 둘이서 장원김밥에 앉아 늦은 저녁을 먹는데 또 이상한 소리들을 늘어놓는다. 종종 그랬다. 못난 얼굴로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누구도 하지 않았던, 하지 않을 말들을 귀한 조언처럼. 그간 살아오며 어렵사리 찾아낸 진리처럼.


“나는 이번에는 정말로 우리 암장이 망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또 새로운 사람들 들어와 주고 이렇게 너한테 밥도 사주고 하잖냐. 다음 달에 바닥 매트도 새로 깔 거야. 이것 봐라. 어차피 잘 될 거였어. 나는 진짜 존나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이렇게 생각해. ‘어떻게든 되겠지, 뭐.’ 그렇다고 다 포기한다는 소리는 절대 아니지만. 너도 한번은 이렇게 설렁설렁 살아보란 말이야.”


구형이긴 하지만 엄청나게 번쩍거리긴 했던 차를 밖에 세워두고 먹는 저녁은 참으로 소박했다. 형은 돌솥 비빔밥, 나는 참치김밥. 대학병원 앞이라는 이점으로 배짱장사를 하는 장원김밥에서는 그나마 먹을 만한 메뉴들이다. 장원김밥 하면 참치김밥. 우습게도 지원이형의 이상한 소리는 참치김밥처럼 내 입맛에 꼭 들어맞는 말이긴 했다.


설렁설렁 살아보라니. 나는 처음에 이 말이 당최 와닿질 않았다. 그리 좋지 못한 재정상태에서도 본인 수입으로는 고작 몇 개월 유지할 수 있을 뿐인 차를 사고나서 “몇달 뒤엔 다시 팔아버려야지, 뭐.” 태평스레 말하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소리였으니까. 나는 더구나 새어나오는 실소를 참지 않고 실컷 뿜어대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로 신기하게도 매번 큰 일들이 나를 스치며 흔들어놓을 때마다 어김없이 ‘어떻게든 되겠지, 뭐.'를 되뇌며 그 때 참치깁밥같은 말들을 떠올리고 있다. 무슨 그런 실없는 소리를 하냐 했었지만 그 말들은 빠르게 나를 바꿔놓았다. 사실은 망쳐놓은 건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형 말대로 차를 사버리기도 했다. “그러면 어때. 어떻게든 되겠지.” 나를 보며 친구들이 참 속편한 놈이라고, 생각이 없다고 욕하지만. '뭐 어때. 나만 이렇게 사는 거 아냐. 적어도 지원이형은 나보다 더 할 걸?’ 내 무책임함의 이유를 지원이형 탓으로 돌리는 것 같지만 앞으로도, 지원이형이 망해서 작년에 새롭게 장만한 머스탱을 팔아버리고 다시 노점상을 펴기 전까지는 쭉 이렇게 속편한 마음을 잘도 가질 것 같다.



-Ho


2015년 5월 17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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