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일흔 두 번째 주제
아빠의 양말은 늘
칙칙하고 늘어진 듯 힘들어보였다.
까만색, 쥐색, 회색, 회갈색…
언뜻 보아도 아빠의 양말장은
늘 거무튀튀한 힘겨움 가득.
기름기 가득한 양말더미가
꼬릿한 냄새로 말아올려진
양말 더미가 싫은 줄만 알았지
힘든 줄은 몰랐다.
하루 중 얼마나 많은 시간을
서서 버텨야 했는지,
냄새나는 것을 채 피하지도 못하고
얼마나 바삐 움직여야 했는지
감히 생각해보지도 못했다.
삐뚤빼뚤 본래의 형태를 잃은
발가락 사이로 신던 발가락 양말도
그저 웃긴 줄만 알았지
당신이 밤마다 아파하고
날마다 벌어진 아픔을 견뎠음을
전혀 알지도 못했다.
그렇게 아빠의 양말은 아빠의 하루를 품었나보다.
딸래미도 모르는 고된 하루를.
아빠의 양말은 그랬다.
-Ram
1.
내가 가지고 있는 양말 중에 (사실 이것 빼고 내 양말이라고는 딱히 없지만) 가장 예쁜 양말은 바로 보드양말!
예전에 STL에서 보드복을 샀었는데, 아마 그때 사은품으로 받은 것 같다.
하양하양 바탕에 노랑, 파랑, 빨강 세 가지 색의 줄이 체크를 이루고 있다.
요즘 STL은 겨울보다는 여름을 밀고 나가나보다.
보드복은 많이 안보이고 래쉬가드나 웨이크팬츠 등이 많이 보인다.
보드양말은 일 년에 신는 날이 정말 한 손으로 꼽힌다.
그래서 아직까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쫀쫀+쫀쫀하다.
서랍을 열 때마다 보드양말이 보이면 괜히 빨리 보드타러 가고 싶어진다.
2.
여름엔 맨발, 겨울엔 스타킹
양말이 내게 필요할 때가 많이 없다.
아마 운동할 때, 등산 갈 때 정도?
예전에는 발이 차서, 자기 전에 발이 시리면 양말을 신었다.
보통 양말을 신었던 적도 있었고, 수면양말을 신었던 적도 있었다.
그렇게 양말을 신고 자다가 아침에 일어나보면
난 그리 잠버릇이 심하지도 않은데, 불편했나보다.
양말이 양쪽 모두 벗겨져 이불 속 어딘가에서 뒹굴고 있다.
이젠 발이 시리면 여름에도 항상 이불 속에 세팅되어 있는 전기장판을 켜서 발을 녹인다.
-Hee
앞 코와 뒤꿈치 부분은 빨간색, 몸통과 발목부분은 파란색. 그리고 스트라이프 패턴. 그 빨갛고 파란색의 양말은 처음 만들어질 때만 하더라도 마치 세상의 주인공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화려한 진열대에 놓인 자신을 쳐다보았고, 메인 상품은 아니었지만 세상을 주도하는 유명브랜드의 많은 사람들이 고민해온 기획아이템이었다.
그리고 그를 만났다.
전혀 세련되어 보인다거나 섹시하지는 않지만 맑고, 단정하고, 편한 사람. 그와 함께 온 여자는 양말을 집어들고는 그 남자와 수다를 떤다. 무엇이 만족스러웠을까 흡족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옷가지들과 함께 바구니에 담는다.
그 남자가 처음으로 나를 잡았을 때, 그 남자의 첫인상과는 다르게 그 남자의 발가락은 정말이지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웠다. 적당한 길이로 가지런히 정돈된 발가락들과 적당한 크기의 아담한 발톱들, 그의 발은 그가 얼마나 바르게 자랐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고, 모든 것이 건강하고 아름다웠다.
내가 가장 우려했던 것과는 다르게 그는 격렬한 운동을 하는데 나를 신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따금 그는 시끄러운 곳에 자주 드나들었고 자신의 건강함을 증명하듯이 들썩이곤 했다. 때때로 그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곤 했고 가끔은 내가 어디론가 던져진 채 밤을 지새우곤 했다. 나를 씻기지 않고 하루에 두 번이나 신는 행위는 제법 불쾌하였지만 그런 날이면 언제나 그의 몸에서 좋은 향이 났기 때문에 적당히 참고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익숙한 향이 나는 방에 도착하였다. 그 향은 나와 함께 지내던 다른 양말들에게서 맡아보았던 향기였는데 어딘지 모르게 푸근한 느낌이 하지만 조금은 서글픈 느낌이 드는 그런 향이었다.
그리고 그 날, 나는 그 방의 침대 한 켠에서 잠들었다.
나를 찾지 못한 탓인지 제법 긴 시간 동안 좋은 향에 묻혀 푸근한 마음으로 잠들어 있었고 그렇게 길고 긴 시간이 흘렀다. 몇 번이었을까 계절의 변화가 어렴풋이 느껴지고 적당한 시간이 지났을 무렵 누군가 나를 꺼내어 들었다.
나를 꺼내든 그 사람은 한 손에 나를 부드럽게 감싸 쥐고,
포근하고 아름다운 눈빛으로, 그녀는 울고 있었다.
-Cheol
리듬을 타고 두둥실 걷는 뒤꿈치
수줍은 복숭아뼈
익숙찮은 힐에 새끼 발가락 마디와 뒤꿈치가 붉었다
새까만 힐과 발바닥 사이의 틈
그 틈이 어째서 그렇게 농염하니
나는 그 속으로 자꾸만 자꾸만 기어들고 싶다
너는 발냄새마저도 시큼하질 않구나
그 속에 앉아 너의 집까지도 따라서 가고싶어
창 밖을 지나는 여자의
양말 신지 않은 맨발을
계절이 좇고 있다
-Ho
2015년 5월 24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