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예순일곱 번째 주제
우리 할아버지는 무뚝뚝하셨다.
아버지도 그를 따라 물론 무뚝뚝 했고.
세월이 흐르면서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모습 그대로를
따라 늙으면서 서로가 같은 시간을 걷는 듯 했다.
우리 할아버지는 꽤 건강하셨다.
농사일을 하시면서 좋은 공기, 늘 부지런히 움직이며
소를 돌보고 밭을 돌보고 하는 일들을 마다하지 않았다
본래 젊었을 적 직업은 목수, 정도였다고 한다.
야물딱지고 낭낭거리는 할머니완 달리,
할아버지는 그저 조용히 웃으시고
어떠한 일에도 싫다 좋다 하는 표현도 없으셨다.
아버지와 똑 닮았다.
마을에서도 제일가는 건강미남이셨던 할아버지는
젊었을 때 앓았던 폐렴이 세월을 타고 흘러
몸의 제 기능을 막기 시작하자,
입맛도, 건강도, 생기도 잃으셨다.
애써서 키우시던 송아지마저 보내야 했고
한 계절도 거르지 않고 바삐 길러내던 밭들도
이제야 휴식을 찾는 듯 쉬어야만 했다.
시골에서 도시까지 내달리던 파란 트럭도
주인을 잃고 구석진 곳에 울며 잠들어야 했다.
돌보아야 할 것을 내려두자 본인 당신의 몸도
내려두기 시작한 것이 문제였을까
한겨울 가시나무처럼 비쩍 말라가는 모습에
아버지도 어머니도, 형제들도 전부 쓴 울음을 삼켰다.
생기를 잃고 의욕을 잃고 모든 걸 잃은 눈을
할머니는 알아채셨나보다.
그저 당신이 편히 숨쉬길 바라셨고
좋아하시던 음식을 건강히 드시길 바라셨다.
당신의 마지막 시간즈음에는 우리집에서 모시었는데
거동도 제대로 하지 못해 쇤 목소리로 며느리를 부를 때에도
손자와 아들이 앙상한 몸을 씻겨줄 때에도
당신의 속상함과 아픔을 감히 내가 가늠이나 할 수 있었을까
잠시라도 정신이 돌아오는 때마저도
자식들 걱정에 돌아가는 길 차비걱정 뿐이셨다.
그런 할아버지는 잠시 더 기다리지 못하시고
조금 더 편한 곳으로 옮기어 가셨다
나는 그 곁을 지키지도, 바라보지도 못했다.
왜 조금 더 기다리지 못하였냐고 원망할 수도 없었고
죄송하다 끌어안지도 못했다.
얼마나 긴 세월의 시간을 거느렸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리 아버지가 당신을 똑 닮았기에
말없이, 표현없이도 나를 아꼈음을 압니다.
나는 당신에게 어여쁜 손녀였으면 하고
가시는 길 채비하여 마중가지 못했으니
그 땅에 닿는 대로 가신 길을 매만지러 가겠습니다.
생전에 웃으시던 모습 그대로 고이 가셨음을 믿습니다.
-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사랑합니다.
-Ram
1.
할아버지 장례식장이 내 생애 첫 장례식장이다.
하얀 국화에 폭 쌓인 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보니, 사람의 죽음이라는 것이 피부로 와닿았다.
숨이 막히는 것 같았고, 처음 느끼는 기분이라 마음속으로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큰손녀라고 상복을 입고 조문하러 오는 친척들을 맞이했고,
불행 중 다행히도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라 모두들 침착했다.
늦은 밤이 되자 손님들의 발길은 뜸해졌고, 엄마도 이제 좀 쉬자고 했다.
하루종일 밥을 먹지는 않았다. 그냥, 입맛이 없었다.
땅콩 몇 알정도만 먹은게 전부다.
할머니와 엄마는 할아버지가 주시는 음식이니 먹으라고 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냥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 후에도 장례식장에서 밥을 먹지 않는다.
그 죽음과 애도의 분위기에서 나는 아직까지도 적응하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삼육두유 파우치형태를 좋아하셨다.
그래서 항상 할아버지네 갈때면 삼육두유 한 박스씩 들고 갔다.
나도 그때부터 두유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병원에서 뵈었던 할아버지는 평소에도 마르셨지만 더더욱 마르셨다.
거의 뼈와 그 위를 에워싼 가죽만 남아있는 인간의 모습이였다.
그때가 대학교에 합격한 직후였는데,
그 마른 팔로 내 손바닥을 힘겹게 붙잡으시곤,
앙상한 손가락으로 내 손바닥에 ‘ㅊㅜㄱ'이라고 쓰셨다.
목에 이어진 호스때문에 말을 못하셨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마음을 전하고 싶으셨던 것이다.
우리집 거실장 유리 아래에는 할아버지 사진이 끼워져 있다.
항상 거실장 서랍에서 손톱깎기를 꺼낼때마다 할아버지를 본다.
엄마도 시아버지를 존경했기에 항상 간직하고, 생각하려고 하신다.
그래서 가끔 엄마는 할아버지 이야기를 한다.
'난 시아버지지만 너네 할아버지 존경하고, 좋아했어’ 라고.
2.
어떤 할아버지가 엄청나게 귀여운, 마치 이름이 아롱이라 불릴 것만 같은 요크셔테리어와 함께
길을 걷는게 보였다.
그 모습이 엄청나게 귀여워서 뚫어지게 쳐다봤다.
왜 난 이렇게 안어울릴 것만 같은 조화가 귀엽지.
그 모습이 무지하게 귀여웠다.
-Hee
내가 아직 아이일 때,
나에겐 할아버지가 존재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즈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 때부터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던 것 같다.
비단 함께 살게 된 계기가 아니었어도 그 분들의 체취는
푸근하고, 충만한 느낌의 그런 것이었다.
더운 여름날 잠 못 드는 내가 애써 누워있고
할아버지는 부채를 한 손에 들고 설렁~ 설렁~ 시원한 바람을 부채질해 주신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위해준다는 그 느낌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나에게 2세라는 존재가 생기게 된다면
그이들에게는 할아버지가 없다.
그이들에게 내가 그만큼
푸근하고, 충만한 느낌의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Cheol
사랑하는 손주. 할아비는 이제 좀 쉬고싶구나. 조용한 병실에 오래도록 누워있기만 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더구나. 이제는 수십년 봐온 네 아비, 고모들 얼굴이 뒤섞여 이름도 제대로 맞힐 수 없단다. 나는 이제 안다. 할미를 만날 때가 다 됐지. 네 할미가 먼저 가고 이제는 얼굴이 가물가물해져 무슨 낯으로 보나 했는데 다행히 몇 날 전 꿈에서부터는 또렷이 보이더구나. 이렇게 네 얼굴을 봤으니 이제야 마음 편히 쉴 수 있겠다. 네 수제비같은 손을 쥐고 부전시장을 한 바퀴 더 돌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제는 할아비가 너무 지치고 고되구나. 얘야, 아마도 내가 화장장에서 불타는 순간에 너는 내가 그랬듯이 눈물을 참지 못할 게다. 그렇지만 너무 오래 슬퍼하진 말거라. 그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할아비 없는 생활에 잘 적응하게 될 것이다. 그건 네가 사람이니 당연한 것이라 혹여 미안해 할 필요도 없다. 네 사람을 떠나보내는 첫 경험을 할아비와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 일이니. 물론 할아비도 무섭다. 이 나이를 먹어서도 죽는다는 게 무섭단다. 그렇지만 살아있으니 죽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니겠느냐. 할아비가 말했던 것들은 기억하려무나. 먹을 것을 잘 챙겨먹거라. 아무렇게나 먹으면 지금은 괜찮더라도 늙어서는 반드시 아픈 곳이 생긴단다. 부디 아프지 말고 너만큼이나 건강하고 예쁜 손주며느리를 만나 행복하게 살아다오. 철없던 어린 녀석이 꼭 내 어릴 때와 똑같았는데, 제복을 멋지게 차려입은 모습은 네 큰아버지 만큼이나 든든하구나.
할아버지는 옥상에서 마른 빨래를 걷어 내려오다 계단에서 미끄러진 뒤에 건강을 크게 잃으셨다. 오래 된 우리 집에는 처음으로 비데가 설치됐고 바닥 턱들이 사라졌고 벽마다 길다란 손잡이가 달렸지만 할아버지는 그것들을 며칠 써보지 못하셨다. 나는 깐깐한 기숙사학교를 다닌 덕에 집에 자주 갈 수 없었다. 몇 달 만에 할아버지가 계신 병실에 들어섰을 때 치매 끼가 있던 할아버지는 단번에 나를 알아보시고 “이제 되었다. 이제 됐어” 두 마디를 간신히 소리내셨다. 그 순간에 굵은 눈물이 장대비같이 터져나왔고 나는 마지막까지 할아버지에게 단 한 마디 말도 하지 못한 채 학교로 돌아갔다. 며칠 뒤 수업 중에 담임 선생님이 교실 앞 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와 나를 바라볼 때 나는 이미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Ho
2015년 4월 19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