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예순여섯 번째 주제
그 아이는 수영을 참 잘했다.
투박한 몸놀림에 잔뜩 튀어오르는 물줄기가
마치 그리스 신화에나 나오는 신들처럼
알아서 아이를 감싸는 듯 했다.
물이 스스로 아이를 밀어주는 것만 같았다.
반 아이들도 모두 그 아이만 바라보았다.
첨벙이는 것 말고는 할 줄 모르는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파랗고 철썩이는, 하얗게 부서지고 마는
저리도 무서운 물의 공간에서
유연하고 자유로운 흐름이
썩 부럽기도 했다.
나는 코를 틀어막고 눈을 질끈 감아야만
그 공포스러운 물 속에서 버틸 수 있었다.
꼬물꼬물 콧속으로 파고드는
씁쓰르한 물의 내음도 싫었다.
발버둥 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힘겨움도 싫었다.
나는 그 아이처럼 유연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아마 내 폐가 저 아이보다 작은 것이라고,
내가 좀 더 크고 무거우니까
물 위에 잘 뜨지 못해서라고.
요목조목 따져도 내가 그 아이보다
수영을 월등히 못하는 것이 맞았다.
그 아이 집에는 수영장도 있더라고,
파란 눈의 외국인이랑 수영하는 것도 보았다고,
반 아이들은 그 아이가 얼마나
보통 이상의 강습을 받았는지 열심히 떠들었다.
그러니 내가 그 아이보다
수영을 못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라고.
그 숨막히는 물 속에서
내가 버둥대어도 그 아이보다
앞으로 나아갈 수없는 이유라고.
나는 이 대단한 파도 속에서 버둥대며
걸음마를 배웠을 뿐
깊이를 알 수 없는 심해 속으로
뽀얀 물거품을 일으키며
멋들어지게 수영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Ram
1.
언제나 수영장에서 볼 수 있는 소독된 깨끗한 물에서 헤엄치고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시야확보도 잘되어 옆에 누가 지나가는지도 알고, 내 앞에 장애물이 있는지, 벽이 있는지도 알고.
물안경을 쓰지 않아도 눈이 따갑지 않고, 파도따위도 없고,
그냥 내가 가고싶은 곳으로 곧장 힘껏 물장구치며 나가면 언제든 갈 수 있는.
하지만 주로 헤엄치게 되는 곳은 어딘지도 모르는 바닷속 흙탕물.
해파리에 쏘일지도 모르고, 거친 파도때문에 방향을 잃게되고, 물안경이 있어도 쓸려나갈 수도 있고,
있는 힘껏 발을 구르며 물장구를 쳐봐도 계속 제자리에 있는 것만 같고, 어쩌면 뒤로 밀리는 것만 같고.
그래도 지금 발을 구를 수 있는 자체에 감사하자.
2.
‘동기'에 대해 생각해봤다.
대학교에서 크게 의미없는 학번 동기 말고, 영어로 motive라 불리우는 바로 그것.
내 마음 속에서 스스로 깨우쳐 동기를 불러 일으키는 것도 동기고,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아 내 마음을 뛰게 하는 것도 동기가 되고.
나쁜 동기는 없다. 그렇다고 좋은 동기도 없다. 그냥 동기는 동기일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냥 내 자신의 마음을 뛰게 하는 계기,
일을 발동시키는 계기, 사람의 마음을 정하거나 행동하게 하는 계기. 그 계기일 뿐이다.
동기가 생긴 이후에 정말로 그것을 행동에 옮길것인지 아닐지는 오롯이 내 자신에게 달려있다.
내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달려있다.
어떤 동기에 영향으로 인해 움직이고, 행동하는 것도 '나'고,
동기는 받았으나 굳이 어떤 이유에서던지 움직이지 않고 행동하지 않는 것도 '나'다.
-Hee
이따금 수영을 하던 기억은
나의 꿈 속에서,
마음 속 어둡고 파란 바다 속에서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생명들 사이를 돌아다니는 기억.
잘 알지 못한다고 하지만
이따금 그 것들과 마주치면
결국 그것이 내 안의 원초적인 감정들이라는 것을 안다.
이따금 꿈 속에서 느끼는 그런 감정들은
현재의 나와는 이질적이라고 느껴지는 때가 있다.
그런 부분까지 이해 받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때때로 조금은 털어놓고 함께 나아가고 싶다.
-Cheol
수영장은 사람을 먹먹하게 만드는 힘이 있어요. 숨을 몰아쉬며 바라보는 초급반 레인은 열명도 넘는 사람들의 물장구가 그득합니다. 뿌연 수경을 통과하는 천장의 조명이 시야를 메워버리고요.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미인은 흐릿한 수경을 거쳐 보아도 유려합니다. 적당한 솜털과 지나치게 얇은 다리도, 눈 아래 짙은 다크서클 마저도 묘하게 매력적이에요.
조명이 밝은 밤의 수영장이 조금 슬픕니다. 나는 수영장 락스물에 절어 녹아가고 미인은 낮 동안에 묻혀 온 볕이 여태 씻기지 않은 채 빛이 나요. 내 곁엔 까만 고달픔이 기름처럼 떠다니고 미인은 배영을 할 때 둥둥 뜨는 볼품없는 가슴마저도 빛이 나지요. 그러니 미인에게 다가가 말을 걸기란 쉽지가 않네요. 오직 혼자서 까만 웻 슈트를 입은 강사만이 미인과 오래도록 춤을 춰요.
“거품이 일지 않게끔 물을 잡을 줄 알아야 해요. 네, 그렇게요. 손목에 힘 빼시고, 그렇죠. S자를 아주 잘 그리시네요.”
나는 가끔 수영강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강습이 끝난 수영장이 순식간에 끔찍한 고요를 되찾아요. 그 속에 혼자서 만드는 물소리가 가엾게만 들립니다. 그렇지만 청소를 시작할 때까지 수영을 해야 해요. 미인은 샤워를 오래 하거든요. 나가달라는 강사의 박수소리 신호에 맞춰 씻고 나가면 엘리베이터 앞에서 미인을 한 번 더 볼 수 있지요. 오늘은 건네려고 사온 음료를 꼭 내밀어야겠다고 다짐은 했는데, 글쎄요.
-Ho
2015년 4월 12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