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일흔다섯 번째 주제
서로가 행복의 기준인 아이들이 있었다.
기준이라는 거창한 표현보다는
그냥 서로로 인해
좀 더 많이 웃고 즐거울 일이 많았다고 하고 싶다.
아지랭이 피어나는 아스팔트를
터벅터벅 걸어도
도로변의 풀때기가 귀여워
싱그러움을 한껏 품을 줄 아는 아이들이었다.
사람 없는 한적한 공원에서
그늘 한 점만 빌리어
땀방울이 콧등에 송골송골 맺히도록
뜨겁게 떠들 줄 아는 아이들이었다.
차곡차곡 쌓아온 하루하루가
어여쁘고 소중하여 담아두고
몇 번을 꺼내어 굴리어도 재미있었다.
서로 다른 아이들이
그 긴 시간을 다른 추억을 쌓다가
그저 점 하나 마주쳤을 뿐인데
그렇게 스미듯 자연스레 서로에게 녹아
물들며 그렇게 살아간다.
두 뺨이 그렇게 서로의 색으로 물드는
행복한 아이들.
-Ram
1.
“난 항상 A를 응원해."라고 내가 말했다.
그랬더니 "그럼 너 A가 어떤 걸 하더라도 믿을 수 있어?"라는 물음이 돌아왔다.
"당연하지. 난 믿을 수 있어."라고 내가 말했다.
그랬더니 "너네는 정말 행복한 아이들이구나."라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이 내게 돌아왔다.
내뱉진 않았지만 마음 속으로 그의 감수성의 크기를 다시 한번 느꼈다.
그리곤 "하하하. 행복한 아이들이라니! 표현이 참 좋군!"이라고 진심으로 좋아했다.
그랬더니 "음.. 그럼 너 A가 진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짓을 하더라도 A편이야?"라는 약간은 무거운 물음이 돌아왔다.
"응. 그리고 A는 아주아주 만약에 그렇다하더라도 다 이유가 있을거라 생각해. 나는 A가 나한테 변하지 않는 한 A편이야."라고 약간은 어렵게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럼 음.. A가 말이지. 진짜로, 아, 아니다. 됐다. 이게 지금 무슨 헛소린지 모르겠다. 크크"라는 말과 진짜 웃음 반, 헛웃음 반이 내게 돌아왔다.
"크하하하. 내말이! 그만해랑. 바보야. 푸하!"라고 나도 함께 웃었다.
2.
만나기 전에 항상 즐거운 사람들. 만나면 즐거움이 배가 되는 사람들.
이 사람들은 같이 있다보면 분명히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삶에서는 끊임없는 해프닝이 우리를 통해, 또는 빗겨 지나가는데,
그것들은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서 눈여겨 보지않으면 놓치기 십상이다.)
하지만 혼자만 눈여겨 본다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함께 눈여겨 보아야 그것이 또다른 의미가 된다.
항상 만나면 즐거운 사람들은 항상 우연찮게 같은 것을 눈여겨보기 때문에 함께있으면 크고 작은 일들이 많이 생긴다.
그런 일들을 딱히 기억하려고 하는건 아니지만 두고두고 회상하며 즐거워한다.
그렇다고 딱히 대단한 것들을 하는 건 아니다.
굳이 재밌으려 노력하는 것도 아니고, 서로 스마트폰을 보고 있을 때도 분명 있다.
그렇지만 언제나 즐겁다.
만화로 그리자면 머리 위에 항상 음표가 떠오르고, ‘키읔'이 백개 정도가 항상 주변을 맴돌고 있다고 하면 되려나.
그리고 이 사람들은 척하면 척, 눈빛만 주고 받아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누군가 웃기만 해도 어떤 의미인지 알고, 상대의 말투를 약간만 들어도 내 감정을 알아차린다.
정말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어떤 것들을 같이 해도 즐겁고, 행복하다.
그리고 항상 소망한다.
모두 건강해서 앞으로도 쭉 같이 함께 웃고, 같은 것들을 바라보고, 언제나 건강한 생각들을 했으면 좋겠다고.
-Hee
행복한 아이들이란 어떤 아이들일까
행복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위키백과 사전에 따르면 넓은 의미에서 ‘행복’은 인간뿐만 아니라 다양한 생물에게도 이에 상응하는 과정이나 상태가 있을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생물의 행복감에는 만족감의 요소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한다. 이러한 견해를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보면, 우리의 이성이 충분히 성숙하기 전인 어린 상태에서의 행복감은 대부분이 만족감에 기인하지 않을까 싶다.
행복의 범위를 우리는 어떻게 설정해야 할까? 우리는 행복하다는 기분을 느낄 때가 분명 존재한다.그리고 ‘행복’이 삶의 지향점인 경우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정작 자신의 행복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인간의 행복은 객관적 상태이기 보다는 주관적인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개개인의 행복은 모두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들 중 대부분은 ‘객관적인 행복’만을 ‘자신의 행복’의 지표로 삼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Cheol
1. 4시 30분. 길고 긴 수업이 끝나갈 무렵에 내 정신은 말라 비틀어지고 있었다. 반면에 내 몸은, 특히 엉덩이와 등은 한 차례 가벼운 소나기라도 지나간 듯 젖어있다. 긴 바지 대신에 입은 체육복은 뜨거운 체온에 녹아 의자와 엉덩이를 꽉 달라붙게 만드는 접착제 노릇을 하는 게 아닐까 의심될 지경이다. 수업 종이 울리고 나서도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다면, 그건 정말이지 상상만으로도 잔혹한 일이 아닌가. 단지 무덥다라는 말로는 부족한, 지독한 살인적 더위. 말 그대로 이 더위에 벌써 몇 명이 열사병으로 죽었고 뉴스에서도 유례없는 폭염이라며 법석을 떨어댔다. 실은 그런 것들 보다도 옆자리 재호를 바라보면서 더 여실히 느끼지만. 재호는 양 팔을 손등부터 팔꿈치까지 뒤집은 채 한 시간 가까이 책상 위에 올려두고서 마치 비가 내리기만을 절실히 바라는 농부의 표정을 하고 있다. 나야 어떤 의도로 그러고 있는 지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뒷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방울들이 충분히 그 심정을 공감하게끔 만든다.
4시 50분. 온 몸에 습한 공기의 눅눅함과 점심 때 운동장에서 묻혀 온 흙먼지의 거친 질감이 동시에 만져지고 있다. 오늘 같은 날에 내가 갈 곳은 단 한 곳 밖에는 없다. 수영에 있는 엄마의 꽃집. 부전 역에서부터 수영 역까지. 1시간 남짓한 시간. 서면에서 지하철을 2호선으로 갈아 타고 수영 역에서 내려 10분 정도를 더 걸어야 하는 거리에 있는 꽃집. 머릿 속으로 꽃집까지의 길을 더듬어 걸어보는 것만으로도 말라버린 머리에 물줄기가 흩뿌려지는 느낌이 든다.
5시 20분. 한 낮의 더위는 점차 누그러들고 아직은 한산한 지하철에 몇몇 어르신들의 소근거리는 이야기소리가 정겹게 맴돈다. 시원한 냉방열차를 떠나보내고 2번 출구를 나와 걸었다. 슈퍼마켓과 주유소, 약국을 지나 육교 앞까지 가면 드디어 꽃집. 하얀 간판에 ‘시민 꽃 화원'이라고 투박한 글씨로 써있다. 굳이 간판이 아니더라도 문 밖에 다양한 화분들이 누가봐도 꽃집임을 알 수 있게끔 놓여있기도 했고. 투명한 유리 문을 열고 들어서면 정말로 다른 세상에 들어간 느낌이 든다. 좁은 공간이었지만, 좁은 공간이라서 꽃들이,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싱그러움으로 화원은 유리문 밖의 텁텁한 세계와는 한참 동 떨어진 곳이 된다. 중문을 열고 깊은 곳까지 들어서면 엄마는 나를 보고서 깜짝 놀랠 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비싼 학원비를 들먹이며 혼을 낼 지도 모르지만. 그렇지만 꽃 냉장고 속에서 안개꽃을 한 가닥 뽑아 들고 등 뒤에 숨겼다가 내밀면 엄마는 분명 흐뭇한 미소로 나를 맞아주리라. 우리는 이런 보잘 것 없는 일에도 한참은 행복할 수 있는 가족이니까.
2. 그렇지만 아쉽게도 수영 꽃집은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아빠의 부도 후에 꽃집, 고깃집, 포장마차, 막노동을 전전하다 그 험난함의 끝에 마지막이 되었으면 하는 심정으로 다시 차린 꽃집은 생각보다 일찍 망해버렸다. 우리 가족은 부족한 형편 속에서 허덕이며 살아왔지만 그렇더라도 내 어린 시절은 거의가 행복한 기억들도 점칠되어 있다. 기억은 아무래도 미화되기 마련이라지만 이런 이유 하나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할 만큼 행복한 순간들. 당시에는 어떻게 살았다기 보다는 살아졌다는 말이 조금 더 정확하겠지만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나와 형의 행복은 순전히 엄마와 아빠의 덕에 순탄하게 유지됐다. 돈을 빌리고 갚고 망하고 다시 일어서기를 몇 번 반복하다 지금에서야 형편이 조금 나아졌다지만 그 시절은 엄마, 아빠에겐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진저리나는 암울한 역사일 테다. 매일을 힘들게 견뎌내면서도 내색없이 우리 형제를 보살피는 삶. 얼마나 거칠고 힘겨운 현실을 버텨내야 했을까. 감히 생각하면 지금 내 모습들이 사뭇 미안해진다. 다음 주 부산에 가면 꽉 안아줘야지.
-Ho
2015년 6월 14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