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일흔여섯 번째 주제
2000년대 초반에 한창 이메일이
나타나고 활성화 되었던 것 같다.
그 당시에 나는 초등학생이었고
인터넷 채팅 문화도 신기했으며
모니터 위에 캠을 두고 찍는 사진도,
지금은 고전 게임이 되어버린
여러가지 게임들도 전부다 신기했다.
지금도 그렇듯 자연스레 인터넷문화를 흡수하며
나와 내 친구들 사이에
정말 크게 붐이 일었던 것이 바로
이메일이었다.
각자 핸드폰을 소지하던 때도 아닌터라
우리는 서로 이메일 주소를 물으며 다녔고
색색의 속지를 채웠던 빵빵한 다이어리에는
친구의 집전화와 이메일 주소면
꽤 친한 사이임을 증명할 수 있었다.
채 성숙하지 못한 우리의 메일문화는
여전히 손편지가 성행하던 때와 병행하며 유행했었고
그 당시 맞춤법을 파괴한 메일쓰기가
가장 핫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정말로 열심히 메일을 주고받았고
시덥잖은 이모티콘이나 사진들을 주고받는
지금보다 쓰는 데에 더 정성을 들였다.
전송 전에 미리보기를 눌러 훑어보는 꼼꼼함까지도.
시간이흘러 10년도 넘은 그 때의 메일이 보관되어 있는 것은
가상의 메일함이지만 조금 애틋하다.
아득한 시간이 되어버린 그 때이긴 하지만,
지금처럼 광고와 목적에 의한 메일들로 그득한 내 메일함보다
친구들 닉네임이 가득했던
그런 시절도 퍽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Ram
1.
처음엔 이메일이 싫었다.
딱딱하고, 마음이 담아지지도 않을 것 같고, 정성도 없을 것 같았기 때문에.
그냥 손으로 꾹꾹 눌러쓰는 손편지가 좋았나보다.
그런데 이메일에도 따뜻하며, 보내는 사람의 마음이 물씬 담아지며, 한 글자, 한 글자 고민하면서 지우고, 쓰고, 지우고, 쓴 흔적이 있었다.
나 역시 그렇게 이메일을 보낸 적이 있었다.
아마 임시보관함에는 그렇게 쓰고 보내지 못한 메일이 남아있을지도.
2.
아침에 자고 일어나서 메일을 확인하면 광고 겸 카달로그 메일이 한가득이다.
한동안 외국사이트들의 메일링서비스들이 궁금해 마구마구 가입한 적이 있다.
그 후 우리나라와 시간이 반대인 사이트들에게 밤새 메일이 띵동띵동 온다.
정말 몇십개씩 쌓이는 메일들을 그룹핑하고, 그대로 휴지통으로 가는 메일도 많지만,
기획할때 많이 참고도 하고, 앞으로도 아마 많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스팸처리를 하지는 않는다.
아마, 앞으로도 몇 년간은 계속 외국에서 보내온 메일들이 내 메일함을 가득 채울 예정이다.
3.
아이폰에 알림창이 뜬다.
메일이 왔다.
무슨 메일인가 하고 제목을 보니, [C&J 모임 일정 안내 메일입니다]라고 뜬다.
응? 나는 저 모임이 아닌데. 이메일을 보낸 사람을 본다.
J였다.
바로 J에게 카톡을 보낸다.
백년만에 보내는 카톡이다.
메일을 잘못보냈다고 했더니, 실수라며 미안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밥 한번 먹자며 약속을 잡았다.
그렇게 약속은 약속의 꼬리를 물고, 이제는 만나는 게 당연한 게 되었다.
J는 말한다.
일부러 내게 연락을 하기 위해서 메일을 잘못 보낸 척 한거라고.
음. 진실은 그 누구도 모르지만, 그 메일로 인해 연락을 하게 되었으니, 뭐. 그렇다고 치자.
-Hee
타닥타닥,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분주하다. 나의 외모가 보여지는 사진, 이름부터 내가 이제껏 해왔던 활동들이나 수상경력 등등을 새로 제출하는 회사에 맞게 수정한다. 가장 어려운 것은 내가 그 회사에 제출하는 자기소개서. 자소설이라고 불릴 만큼 상대의 흥미를 끌면서 나를 드러내야 한다. 너무 비범하지 않게, 하지만 또 평범하지는 않게. 내가 기획해본 포트폴리오들과 함께.
수십 개의 이력서 중 이번에 제출 할 이력서를 이메일에 첨부하고 받는이의 이메일 주소를 다시 한 번 눈 여겨 확인하고 다시 한번 읽어보며 검토한다. 내가 앉아있는 카페의 커피향은 풍만하고 울려 퍼지는 차이코프스키의 사계 중 가을의 노래는 온통 촉촉하기만 한데, 내 눈 앞의 자기소개서는 무척이나 건조하기만 하다.
나는 결국 자신을 외면하고 사는 일을 견디지 못하였다. 누군가는 내가 충분히 고생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힐난한다. 아마도 사실이겠지, 사실이리라 그저 받아들일 뿐이다. 돌이켜 보면 온통 방황의 시간들이었다. 그래도 그 시간들을 통해 나는 한가지를 명확히 깨닫는다. 스스로 오롯이 존재해야 한다. 누군가는 나에게 이기적이다 힐난하고, 누군가는 나에게 너무한 개인주의라며 섭섭해 하기도 하지만 결국 나는 스스로 오롯이 존재해야 행복하다. 그리고 이제는 그것을 이해해주며 공존할 줄 아는 이가 아니면 함께 살지 못하는 나이가 되었다.
잡다한 생각을 정리하고, 담담히 ‘전송’ 버튼을 눌러본다.
스스로 나를 위한, 나다운 삶을 세워나가기 위하여.
-Cheol
눈을 가늘게 뜨고서 자모음을 찾아 검지 손가락을 조심히 움직여 입력한 문장들이 가끔은 연필로 꾹꾹 눌러쓴 손편지보다도 더 정확하게 마음을 전달하는 법이다.
“지읒.. 아… 리을…”
- 잘 지내고 있니, 지수야. 할머니는 잘 지낸다. 이번 추석에 올 거니? 할머니가 맛있는 것 만들어 줄테니까 집에 꼭 오너라.
할머니가 주민센터 교육프로그램 일환으로 이메일 주소를 만들어 메일을 보낸다. 화면 속 커서의 진행속도는 요즘 아이들은 참을 수 없을 만큼 더디지만 특별할 것 없는 짧은 몇 문장 속에는 어마어마한 정성과 그리움이 들어있다.
스스로에게 보낸 업무, 또는 과제 파일이 첨부된 메일과 스팸메일로 지저분한 이메일 주소들. sns 아이디를 만들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이메일 주소들은 얼마만큼의 이메일을 주고받을까. 사무적인 목적 외의 용도로 이메일을 주고받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처음 등장했을 때의 편리함과 신선함 따위는 이제 구석에 처박힌 유행지난 장난감이 되었다, 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메일은 여전히 이메일만이 해낼 수 있는 영역을 성실히 전담하고 있다. 우편이나 전화로 하기에는 미묘하게 불편한 연락들을 이메일은 손쉽게 또 차분히 전하곤 하는 것이다. 손편지가 주는 정성어린 마음을 이메일도 마찬가지로 전할 수 있다. 이메일을 잘 활용하지 않는 요즘에는 문자보다 오히려 이메일로 전하는 마음이 색다른 감동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Ho
2015년 6월 21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