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

도란도란 프로젝트 - 일흔일곱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01.

그것은 일종의 배신감이었다.


새하얗고 뽀얀거품과
톡톡 솟아오르는
노랗고 투명한 속내를 보자면
그보다 시원하고 달아보일 수가 없는
그런 모습이었다.


탐스러운 거품을 시작으로
입에 거침없이 들이붓기 시작한
맥주는 생각만큼 달콤하지 않았다.


씁쓰름한 탄산알갱이가
이곳이 내 식도임을 증명하며 쓸고내려가는 기분은
내가 늘 동경하고 꿈꾸던
맥주와의 첫만남이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썩 친해지질 못 한다



02.
배신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쉽게 찾아든다


사람 사이의 감정이
그토록 돌아서기 쉬울수록
하물며 다른 모든 것들과의
관계는 깨어지기 얼마나 쉬운것인가


내일을 약속했던 소박한 예고가
오늘이 되면 돌아서게 되기도 하고
예상치 못했던 주제가
툭 하고 튀어나오는
깜찍한 배신도 있다


사실은 그래서 더 마음을 졸이게 된다
배신을 당할까봐서가 아니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인연에게 배신감을 준 건 아닐까
쉽기 때문에 공을 들이게 된다


단단하고 튼튼하게
욕심내어 쌓아야
사소한 배신에도 흘려보낼수 있다
배신이란 그렇고 인연이란 그런 것이다



-Ram


1.

미련하게도 나는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그저 상황이 당사자를 그렇게 만들었을 뿐이고,
그런 상황들이 어쩔 수 없이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자신을 숨기고 떠나야하게끔 만들었다.
어쩌면 되려 당사자는 가까운 주위 사람들에게서 겁을 먹었을지도 모른다.
이 사람들이 날 안 믿어주면 어쩌지. 나의 진심은 이게 아닌데, 날 타박하면 어쩌지.
의심은 쌓이고 쌓일수록 더 큰 의심이 되어 자신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어버려 그랬을지도 모른다.


2.
우리들은 과연 영원할까.
나는 너를 등지기가 무지무지 싫은데.
너도 나를 등지기가 무지무지 싫었으면 좋겠다.


3.
나는 나를 온전히 지킬 수 있을까.


4.
바보들이 참 많은 것 같은데, 웃긴건 물론 자신들도 바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5.
엄청난 수식어가 붙고, 목적어가 붙고, 그것에 또다른 부사들이 붙고, 또다시 수많은 수식어들이 붙었어도,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뿐이다.



-Hee


그를 처음 보았을 때는 그저 덩치 좀 큰 사람으로 보였다.
그와 알고 지내고 한 달이 되었을 때는 그의 추진력이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은 곧이어 집단의 중추가 되어주었다.
이따금 그의 말은 살짝 바람이 들어가 부풀려진 느낌이었지만,
그저 넉살이 좋은 것이려니 생각하곤 했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났을 무렵 그는 집단의 금고에서 네 달치 월급을 인출하여 사라졌다.
금고를 허술하게 관리한 집단도 결국 자기한계에 갇혀 사는 사람들일 뿐이었다.


집단은 와해되고 있었다.


집단은 곧이어 사라진 사람을 사기꾼 취급하였다.
몇 가지 의문이 드는 점이 있다. 그는 마음만 먹는다면 집단의 대부분의 것을 얻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일부만 가져갔다. 정말로 애초부터 금고를 탐내고 집단에 접근하였던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집단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에겐 ‘과거’라는 약점이 있었고 상처도 있었다.
집단은 그 점을 활용했다. 약점을 잡았고, 그를 대하였다.
어쩌면 집단이 그를 ‘배신’하게끔 만들어 갔는지도 모른다.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혹은 처음부터 그가 의도한 ‘배신’이었더라도 다를 것은 별로 없다.


사실 그가 사라지기 전에 다른 면에서 중추가 되던 청년은 자신의 자리를 정리하려고 했다.
일을 추진하는 데에는 부족한 감이 있지만, 뒤에서 부족함을 채우며 집단을 밀어가던 청년.
그 역시 사라진 이가 보았던 집단의 모습에 일과 미래에 대한 의욕을 잃었다.
그래서 떠나려고 했었다. ‘정리’하려고 하였었다.


‘배신’이든 ‘정리’이든 그 집단은 사람들을 잃어가고 있었다.
어쩌면 애초에 그 집단에게 ‘사람’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청년은 다시금 당분간 사라진 이의 빈자리를 메우겠지.
그리고 집단은 그에게 다시금 그것을 강요한다. ‘혈육’이라는 이유로.
청년은 혈육이란 것이 가끔은 ‘족쇄’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 청년이 놓인 혈육 사이에는 애정도 없고 존중도 없다.
그저 ‘혈육’이라는 이유로, 상대를 눌러내며 자신의 삶의 방식을 강요할 뿐이다.


‘배신’이든 ‘정리’든 욕심이 많은 이들에게 벗어난다는 것은 매끄럽지가 못하다.



-Cheol


1. 개인주의자에게 배신은 그다지 피해라고 할 만한 것을 가져다 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도 그럴 게 다른 이에게 별달리 기대를 거는 일도, 협력관계를 갖는 일도 달가워 하질 않으니 배신감을 느낄 경우의 수 자체가 적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의 저지른 배신행위의 결과는 늘 그래왔듯 혼자서 묵묵히, 시간과 노력을 조금 더 들이는 정도로 끝을 맺었다. 현실적인 상황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게끔 흘러가 어쩔 수 없이 한 배신이 아닌 의도적인 행위에는 이따금 참기 힘든 분노를 느끼기도 했지만 그것은 역시 순간적일 뿐이었다. 결국 개인주의자에게 배신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보다는 스스로에 대해서 훨씬 더 치명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내일부터는 반드시 6시에 일어나서 수영장에 가야지.”


그렇지만 나는 오늘도 8시에나 눈을 떴고 당연히 수영장엔 갈 수 없었다. ‘오늘 못(안) 했으면 내일부터라도 하면 되지.’ 그러나 오늘 안 했다는 것은 내일도 할 수 없다는 것과 다름이 없는 말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말은 어쩌면 나는 결코 어떤 의미의 성공도 거둘 수 없다는 말과도 별 다를 게 없는 말이 된다. 스스로 정한 약속, 규칙을 배신하는 행위. 아침에 수영장에 가지 않는 것은 사실 겉보기에는 별 것 아닌 일이지만 또한 절대로 사소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의지를 관철한다는 것은 많은 수의 사람들이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매일 아침 6시에 수영을 하는 것. 이런 작은 약속조차도 끝까지 지켜내는 데에는 많은 인내와 노력이 필요한데 하물며, 이런 작은 것 하나도 지긋하게 할 수 없는 사람은 결국 어떤 일을 하더라도 단 한 줌의 성공도 손에 쥐어볼 수 없다.



2. 지난 3년의 끝이 저기 보여, 미래야. 이 시간이 지나면 나는 후회할 지도 모르지. 한 해 두 해 우리가 함께 쌓은 벽을 넘어서기가 참 어려웠어. 벽 뒤에 혼자 남겨진 네게 잦아들 배신감도 무서웠다. 하지만, 용기를 내자. 우리는 함께여서 더 힘겨웠잖아. 꼭대기 보이지 않는 산길 오르막을 우린 너무 빨리 내달렸는지도 모르지. 다 왔다는 말을 벌써 몇 번이나 했는지도 몰라. 어쩌면, 바로 앞은 진짜 정상일수도 있지만, 그렇더라도 이제는 내려가자. 그 길로 우리는 각자 집으로 돌아가자.



-Ho


2015년 6월 28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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