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일흔 네 번째 주제
게으름 예찬
나는 소위 말하는 부지런한 사람은 아니다.
게으른 쪽에 많이 기울었다고 생각하는 게 맞겠지.
부지런함과 게으름을 양쪽에 두는 것 자체가
내게는 이상하지만,
굳이 따져보자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게으름'이라는 단어는 내뱉는 순간
활력 없고 지치고 나빠보인다.
사실 게으름 만큼 사치스러운 순간은 없는데도 말이다.
'여유'와 '게으름'은 깻잎 한 장 차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마도 스스로 흘려보내는 그 순간들이
값진 휴식이었다면 여유가,
시간이 흐르는지도 모른채 퐁당 빠졌다면 게으름
그 정도의 느낌이 아닐까.
근래에 자주, 아니 사실 보통의 나는
여유도, 게으름도 아닌 애매한 그런 기준선에서 줄타기를 한다.
그래도 나는 서두를 줄 몰라서
느적느적 걸으며 보는 길가가 좋고
미리 하는 법을 몰라서
된통 몰아치는 힘겨움을
옴싹 해낼 때에 뿌듯함도 좋다.
게으름이 그렇게 나쁜가?
썩 나쁘지 않다.
개미보다야 베짱이같은 삶이 그래, 좀 더 숨 쉴만 하지 않을까.
-Ram
나는 나름 빠릿빠릿하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할 거라면 지금해버리자는 주의.
그래서 아침에도 벌떡벌떡 잘 일어난다.
심지어 알람이 울리기 전에 일어난 적도 많다.
방정리도 꽤 나름의 규칙대로 잘 하고 있고,
항상 씻고 난 후에는 하수구에 낑겨있는 까만 내 머리카락들도 그때그때마다 칫솔로 샥샥 문질러 쓰레기통에 버린다.
그런데 아이폰에 있는 사진들을 다른 곳에 옮기는 작업은 왜 이렇게도 하기 싫을까.
오늘 아이폰 앨범을 보니 사진이 5,097장이였다.
1년 전에 다음클라우드에 아이폰 사진을 다 옮긴 후 다시 시작했는데 1년 사이에 5천 장을 찍었다니..
아이폰 메모리가 거의 95%정도는 꽉 차서 사진을 다시 옮겨야한다.
예전에도 사진을 옮길때 카테고리별 폴더를 만들어 차곡차곡 옮겨놓았는데, 다시 그 작업을 반복해야한다.
그런데 다음클라우드가 올해 서비스를 종료한다고 하니, 클라우드 안에 있는 정리된 사진들을
모두 받아서 일단 다른 곳으로 옮겨야겠는데 국내 클라우드서비스를 써야할지, 아니면 해외 클라우드서비스를 써야할지,
아니면 외장하드를 사서 옮겨놓아야할지 아직 못정했다.
하하하. 조만간 정해서 사진을 몽땅 옮겨놓아야 할텐데. 언제하지. 곧 시험인데 시험 끝나고 할까. 다음주 중에 할까.
흠.
아이폰 앨범이 텅텅 비어있는건 좋은데, 예전 사진을 보려면 또 다른 어딘가에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진 않는다.
다음 번에는 아이폰 용량이 제일 큰걸로 사야겠다. 부족하다. 부족해.
-Hee
게으름은 위키낱말사전에서는 ‘일을 미루거나 또는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라고 한다. 게으름에 대해서는 많은 시선들이 있는데, 주로 인생을 허비하는 일이라는 시각과 어느 정도는 게으름 자체를 옹호해주는 시각이 있다. 단편적으로 생각하자면 게으름은 ‘안 좋은 것’이지만, 우리는 그 이면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객관적인 사실로 보자면 오늘의 나는 게으름이라는 주제에 대한 글쓰기를 조금 미루어왔다. 또한 게으름의 정의는 ‘일을 미루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나는 게으름을 피운 것이 된다. 즉, 나는 게으름 피우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객관적 사실을 통해 나는 정말 게으름 피우는 사람인 것일까?
어쩌면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일을 미루는 ‘행위’나 ‘태도’가 아니라 어찌하여 일을 미루었는지에 대한 ‘동기’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는 정말로 휴식이 필요했을 수도 있다. 또한 누군가는 정말로 일을 해야 하는 것에 대한 ‘필요성’을 못 느꼈을 수도 있다.
혹자는 그 ‘필요성’에 대하여 충분히 인상을 받고 동기를 부여 받았을 수도 있지만,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 본인은 그 ‘필요성’에 대하여 전혀 인지하지 못하였을 수도 있다. 또는 그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지만 그 것보다 더욱 중요한 무엇인가가 그이에게 필요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매주 글을 쓰는 나는 이번 주에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연장근무로 인하여 매일 12시간씩의 근무를 하였다. 그리고 공휴일이었던 이번 토요일에는 추가근무까지 하였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피폐해졌기에 휴식이 절실하다.
그렇다면 조금 단편적인 ‘필요성’에 대한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해서 예외적인 ‘특수한 상황’을 가진 이에게 단순히 일을 미룬다고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이라 단정짓고 비난할 수 있을까? 내가 인식하고 있는 누군가의 행동은 일차원적인 구조가 아니고 그 행동을 이끌어 내는 어떠한 여러 개의 변수를 가진 함수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 여러 개의 변수들을 이해하고 공감해보려는 노력이 지금 어른이 되어가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덕목인 것은 아닐까.
-Cheol
삶을 그저 살아감을 내가 잘 합니다. 그것은 흘러감. 나는 밤의 수영장 불 꺼진 천장을 마주보며 천천히 떠가듯 여유로이 흐르는 것을 썩 잘 합니다. 나의 물장구는 치열하면서도 조용하고 가볍습니다. 몸이 아래로 가라앉지 않을 만큼의 거품을 담담히 만들 줄을 알죠. 물 속에 있으면 모든 소란들은 그저 귓 속 얇은 공기층 밖의 잔잔한 사소함이 되지요.
나는 그 잔잔함을 진실로 좋아합니다. 그러나 잔잔함을 뚫고 날카롭게 파고드는 것들은 항상 있었어요. 가령 옆 레인을 빠르게 지나는 이가 일으키는 거친 물살같은 것 말입니다. 어제 나를 밀치고 지나간 이는 이미 저 끝에 다다랐다고 합니다. 모레 물 속에 발목을 담글 이도 벌써 나를 스치고 저 멀리에 갑니다. 그 힘찬 몸짓을 따라 오르는 물줄기들은 종종 나를 덮쳐 가라앉게 합니다. 그럴 때 나는 필연적으로 외롭고 먹먹해집니다. 또 막막해지기도 하고요.
“물은 굳이 당신을 집어삼킬 생각이 없어요. 그렇게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팔을 젓는 이유는 무언가요. 눈을감고 떠다니면 꼭 바다를 표류하는 기분입니다. 조금 더 여유롭게 움직여도 좋아요.”
“산다는 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당신, 젖은 손가락을 보세요. 퉁퉁 불어있지는 않나요. 그렇게 게을러선 안 될 겁니다. 조금 더 부지런하세요.”
잘 산다는 것을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나의 치열함은 게으름과는 달라요. 나는 이제 물 속에서 눈도 깜빡일 줄 압니다. 시꺼멓게만 보이는 물 속이이라지만 자세히 보면 그렇게 아름다운 것이 다시 없죠. 쉴 틈 없이 바삐 가면 무엇을 얻나요. 매 순간마다 얻을 수 있는 것이 아주 많습니다. 지금 순간을 조금 더 즐기면서 사는 것은 잘 사는 게 아니던가요.
생각을 말로 옮기는 순간에 그는 이미 저 멀리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들어줄 이 없는 말들은 가벼운 변명으로 맴돌다 흩어졌고 나는 초라해진 기분으로 다시 몸을 띄웠습니다. 아무렴, 무던히 흘러가는 것은 내가 잘 하는 것이니까요.
-Ho
2015년 6월 7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