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일곱 번째 주제
(라섹수술로 인하여 이번 주는 휴재합니당)
-Ram
사실 나는 사탕보다 초콜릿을 더 좋아한다.
사탕은 거의 좋아하지 않는다.
사탕을 언제 먹어봤더라, 하고 생각을 해봤는데
도무지 어떤 사탕을 언제 먹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지만 초콜릿은 나랑 친하다.
특히 스트레스 많이 받을 때, 기분이 우울할 때, 머리가 복잡할 때,
초콜릿을 먹으면 그 순간이나마 모든 복잡과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루에 알바를 두 개씩 뛴 적이 있다.
아, 두 개씩 뛴 적이 예전에도, 또 그 예전에도 있었구나.
아무튼,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했다. 그리고 겨울이였다.
머리는 전 날 감고자야했다. 새벽4시에 일어나서 머리를 말리려면 시간이 오래걸렸기 때문이다.
내 주변 사람들도 거의 보지 못했던 모습인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반팔에 그 위엔 맨투맨티를 입고
또 그 위에 후드를 입고, 그 위에 패딩을 입었다. 그래야 춥지 않았다.
새벽 4시는 어두컴컴했다. 겨울이라 동도 틀 생각조차 없어보였다.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면 춥기 때문에 그냥 뛰었다.
저쪽에서 불빛이 보였다. 환경미화원 두 분을 뒤에 태운 쓰레기수거차였다.
추운데 엄청나게 고생하시는구나, 라고 생각하며 버스정류장으로 뛰어갔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오전에 알바를 열심히 했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고 오후 알바를 가야하는 시간이 되었다.
또 다시 버스를 타러 나온다.
낮에는 해가 쨍하다.
입김도 나고, 춥긴 했지만, 파란 하늘과 쩅한 해를 잊기엔 그런 날이 정말 많았다.
그 순간에 나를 조금만 더 오래 노출시키고 싶어서 천천히 걸었다.
(하지만 난 성격이 급해서 걸음이 빠르기 때문에 아마 천천히 걸었어도 보통 사람들보다는 빨랐을 것이다)
버스정류장 가는 길에 편의점이 3개정도 있었다.
그 중에 가장 끌리는 편의점에 들어가 초코바와 초콜릿을 샀다.
초코바의 껍질을 까서 입에 한 입 물었고, 혀와 이로 초코바를 녹였다.
그 단맛이 내 상황을 그나마 조금은 즐겁게 해 주었고,
매일매일 즐겁기 위해 매일매일 편의점에 들려서 매일매일 초코바와 초콜릿을 사서 먹었다.
그리고 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서 자고 있지만 자는게 아닌 잠을 잤다.
40분쯤 갔을까, 내릴 때가 되었다.
내려서 또 초코바와 초콜릿을 샀다.
아까보단 적게 샀다.
내린 버스정류장과 알바하는 곳이 그리 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입 안에 오물오물 가득 넣고 열심히 녹이며 일하러 걸어갔다.
오후 10시. 집에 가려고 버스를 타러 열심히 나왔다.
집에 도착하면 11시였기 때문에 씻고 잠 잘 준비를 하면 금방 12시가 된다.
난 다음날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시간을 줄이려고 뛰고 또 뛴다.
버스를 타러 뛰어갔고, 버스에서 내려서 집까지 뛰어갔다.
그 땐 초콜릿을 사 먹을 시간도 없었다.
일단 빨리 집에 가서 잠이 들어야 한다.
아무리 빨리 뛰어도 잠 잘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 당시가 내가 가장 초콜릿을 하루에 많이 먹었을 때였다.
우스갯소리로 초콜릿에 의존하며, 초콜릿을 사 먹는 시간을 위해 알바를 했다.
그 후로 한동안은 초콜릿을 입에도 대지 않았다.
그 때가 생각나는게 싫기도 하고, 매일 먹던 초코바 맛이 질렸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 조금씩 그 질림이 사라질 때쯤 종종 초콜릿을 사먹는다.
진짜 효능이 있는진 모르곘지만 초콜릿을 먹으면 피로도 사라지는 것 같고,
괜히 기분도 좋아지는 것 같고, 마음도 차분해 지는 것 같이 느낀다.
또한 커피와 커피향과 초콜릿도 정말 잘 어울리기 때문에
난 항상 초콜릿을 잊지 않는다.
-Hee
장마를 한 달 정도 앞둔 어느 여름날.
청초롬한 남학생이 사탕 한 개를 서류봉투에 넣고 있다.
단 한 개의 사탕. 이 사탕은 그저 더하기 하나 일 뿐이다.
중립의 위치에서 그저 사탕 한 개만큼 너에게 기울겠노라.
어쩌면 소심할 지도 모르는 사탕 하나이다.
하지만 과도하게 기울어져 너를 눌러내고 싶지 않다.
단지 부담 없는 사탕 하나만큼의 당신에 대한 긍정일 뿐이다.
오늘 하루를 기분 좋을 수 있는 사탕 하나의 긍정에 만족할 뿐이다.
긍정으로의 그 한 개의 기울기를 유지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한 번 기울면 으레 기대기 마련이다. 한 번 기대보면 으레 눌러내기 마련이다.
사탕 하나의 긍정을 유지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럼에도 그 긍정을 받을 만큼의 가치 있는 빛나는 이가 있다.
-Cheol
망설임에 대하여.
사탕을 대하는 자세의 변화는 내 연애와도 비슷해 보인다.
10살. 나는 또래 친구들처럼 달콤함을 사랑했다. 하지만 당시 나에게 사탕은 ‘예쁜 것’이었다. 나는 만화에 나올 법한 모양이나 색을 가진 사탕을 나만의 비밀 상자에 숨겨두었다. 그렇게 옹기종기 모여있는 사탕들은 내 보물이 되었다. ‘친구와 싸웠거나, 부모님게 혼나거나’ 하는 것 같은, 어린 아이 나름의 슬픔을 겪을 때면 나는 아끼는 사탕을 입에 물고선 중얼중얼 주문을 외웠다. 내 기도가 그대로 일어나거나 사탕이 고민을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게 힘을 준다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사탕의 단 맛에 기분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니까.
아끼던 사탕들을 내가 모두 먹었던 것은 아니다. 친구들이 놀러오면 각자 마음에 드는 것을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한 번은 엄마가 통째로 버렸고, 또 한 번은 어린 사촌 동생들에게 뺏겼다. 동생은 나 모르게 하나씩 먹었다고 한다. 주위의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나는 꾸준히 사탕을 모았다. 나는 사탕의 맛도 모른 채 아끼다가 다른 이들에게 주었지만, 그 때는 상자에 들어있는 ‘예쁜 것’이 온전히 내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탕의 맛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17살. 나는 사탕을 좋아했지만 예전처럼 모으지는 않았고, 그들을 무작정 아끼지도 않았다. 취향도 바뀌었다.롤리팝 보다는 청포도 사탕이 좋았다. 한 입에 먹을 수 있도록 포장된 사탕이 꽤나 편하다고 여겼다. 교복 주머니엔 항상 사탕이 들어있었고, 쉬는 시간이면 어른들이 담배를 피우듯 친구들과 사탕을 오물거렸다. 나는 여전히 사탕을 나눠주었지만 마지막 하나는 내 몫으로 남겨두었다. 사탕에 대한 특별한 의미라던지 생각이 있었다기 보다는 단 맛 자체를 좋아하고 즐겼다. 지금 입 속에서 달달하니 녹아내리는 것이면 충분했다.
지금의 나는 사탕을 잘 먹지 않는다. 사탕을 물고 있으면 미끈미끈하게 혀가 절여지는 듯한 기분이다. 이제는 사탕이 여러 향을 지닌 설탕 덩어리라는 것을 알고 있고, 이것들은 다이어트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니 찾아 먹고픈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음식점이나 카페 카운터에 놓인 사탕들을 보면 안쓰러워 보이지만 그저 그 정도 생각에 그친다. 가끔 선물로 받거나 주위에서 나눠주는 사탕을 보며 ‘내가 먹어도 될까?’하며 망설이기도 한다. 하지만 예전처럼 먹었다간 이가 남아나지 않을 것이고, 치과에서 겪을 고통들이 연이어 떠오른다. ‘나중에 당뇨로 고생하면 어쩌려고.’ 하는 생각도 든다. 나는 갖가지 핑계를 들며 사탕을 멀리하고 있다. 사탕의 다양한 향과 달콤함을 알고 있지만, 더 이상 내 것은 아닌 것 같다.
[Strawberry On the Shortcake. (S.O.S)]
“여기에 딸기가 올려진 조각 케이크가 있습니다. 당신은 케이크 위의 딸기를 제일 먼저 먹나요? 아니면 가장 마지막에 먹나요?”
한 드라마가 던지는 사랑의 방법에 대한 질문이다.
과거 내 연애의 시작은 짝사랑이었다. 원하고 뒤쫓지만 제대로 사랑을 맛보지 못하던 시기였다. 바라만 보아도 좋았다.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가슴 속에 담아두었지만, 그 사람은 다른 이의 손을 잡았다.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했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니까. ‘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으면 어땠을까?’ 슬프기 보단 아쉬웠다. 먹지 못했던 사탕들이 겹쳐보인다. 딸기를 먼저 먹었어야 했나?
“들켜버린 짝사랑이란, 무모하지만 마음 편하지. 죄책감 때문에 상대방은 다정하지. 더 이상 안 좋은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 새롭게 상처받을 일도 없어.”
들켜버린 짝사랑이 마음 편하다는 것은 상냥한 상대인 경우로 한정된다. 보통은 짝사랑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기 마련이다. 그런 데미지들이 쌓여가던 나는 ‘사랑’이라기 보단 ‘연애’를 하게 되었다. 그것도 그것 나름의 맛이 있다. 서로 주고받는 이야기에 진지함은 약간 부족하지만 적당한 두근거림이 있었다. 마음을 열지 않은 만큼 상처도 덜 받는다. ‘쿨한 척’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자기 감정에 솔직한 한 사람이 나타났다. 딸기를 가장 먼저 집는 사람이었다. 꾸밈없이 다가왔고, 나는 그 사람의 뜨거움 앞에 어쩔 줄을 몰랐다. 나는 그의 손을 잡아주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손을 제대로 내밀지도 못하면서 잡아주지도 못하는 내가 바보같이 느껴졌다. 이제는 감정을 가슴 속에 숨겨놓고 과거의 아픈 기억들과 일어나지 않은 트러블들을 떠올린다. 핑계거리를 찾아 헤매이다 사랑의 감정이 다가오면 미지의 공간을 마주한 듯 아득해진다.
드라마 [S.O.S.]를 볼 당시의 나는 가장 아끼는 것을 마지막에 입에 넣고는 행복해했다. 그 이후에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나는 아직도 언제 딸기를 먹을 것인지 망설인다. 나는 딸기를 먹을 수 있을까?
관련 컨텐츠
Strawberry On the Shortcake. (S.O.S) : 일본드라마 / 각본 노지마 신지
짝사랑에 대한 대사 인용 : Honey and Clover / 원작 우미노 치카
-Min
2014년 2월 23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