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일흔아홉 번째 주제
들에서 뜯은 쑥을
씀벙씀벙 넣은
향긋하게 짙은 쑥반죽을
아무렇게나 뜯어 쪄낸다.
씁쓰름하고도 달꼼쫀득한 게
못생긴 모양만큼이나 맛있다.
코를 간질이는 쑥향은
우리 할미 손바닥마냥 곱기도 하여라.
지내온 세월을 묻힌 개떡모양은
그저 배불리 먹이고픈 마음씨가
그대로 찍혀나온 것이리라.
젊은 사람들은 어쩌면 모를지도 모른다.
뜯어온 쑥이 하얀 찹쌀가루보다 많기에
쪄낸 쑥이 푸르다 못해 까맣게 된 그것을,
만원짜리 유기농 감자칩보다
그리운 향과 맛임을.
언제나 곁에 두고팠던 손길이었음을.
-Ram
1.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사람들이 있고,
아무리 상황이 개떡같아도 아무 생각없이,
우스갯소리를 내뱉으며 하하호호깔깔대며 웃을 수 있는 시간들이 있기에 행복하다.
2.
'그녀는 총명하면서도 순수하고, 성실하면서도 마음씨가 곱고, 착하고 친절할 뿐 아니라 무척 쾌할하고,
활동적이면서 마음의 여유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네. 로테에 대한 베르테르의 묘사지만, 너도 그렇다'라고 내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3.
쑥으로 만든 음식 중에는 쑥인절미가 가장 맛있다.
쑥버무리, 쑥개떡, 쑥국 다 먹어봤지만 그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고소한 콩가루를 묻힌 쫄깃한 쑥인절미.
예전에 친구가 명절에 고향에 내려갔다 온 후 할머니가 만들어줬다면서 쑥인절미를 가져왔는데,
아주 꿀맛이였다.
4.
메일이 왔다.
받은 요일은 아쉽게도 일요일이 아니기에 아무리 궁금해도 아껴두고 일요일에 열어본다.
일요일이 왔다.
메일을 열어본다.
코 끝이 맵다.
코 끝이 찡하다.
눈물이 핑 돈다.
눈물이 고인다.
눈물이 흐른다.
흐앙.
흐앙흐엉흐앙.
!
오늘도 보물같은 메일이 쌓여간다.
마치 온라인 게임 속에 등장하는 힐러가 읽는 마법서같은 것이랄까.
5.
얼마나 개떡같은 상황이 앞으로 들어닥칠지 모르겠지만, 난 이겨낼 자신이 있다.
-Hee
수 차례 글을 썼다가 지운다.
나의 솔직함과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개떡’과 연관시켜보기도 하고,
마음 속 동물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며(몇 번을 우려 먹는건지) ‘개떡’과 연관시켜보기도 하고,
하지만 이내 다 지워버린다.
그렇게 되는대로 조물딱 거리다간 정말로 개떡 같은 글이 될 까봐.
어쩌면 되는대로 조물딱거려 만든 개떡은 그 자체로 ‘편하고’ 좋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아직은 개떡 같은 것 보다는 꾸미고 싶은 나이인가보다.
-Cheol
봄도 여름도 아닌 계절을 달리는 시외버스에선 술 냄새나 진한 반찬 냄새, 눌어붙은 먼지 냄새, 가끔은 토사물 냄새가 났다. 부패된 열기와 공기로 꽉 찬 버스 안에 승객들의 원망어린 눈초리를 버스기사의 평평한 뒷통수는 애써 무시하고 있다. 누구 하나 에어컨을 좀 켜달라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도 없다. 그럴만한 의욕조차 일지 않는 것이다. 뒷좌석에 어린 꼬마는 잊을만 하면 울어재끼고 거지처럼 꾀죄죄한 사내의 알콜 섞인 입김은 그가 걸친, 계절을 한참이나 무시한 두툼한 작업복만큼이나 역하다. 그 숨결을 이 버스 안에서 3시간 가까이 들이키고 내뱉었다는 사실에 당장에라도 토악질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불 꺼진 버스 안 너절한 승객들의 얼굴 위로 주욱 늘어선 앞 차들의 브레이크 붉은 빛이 옅게 비춰졌다. 그들은 도살장에서 전국으로 흩어지는 돼지고기의 표정들을 하고선 버스 바퀴가 도로의 홈을 읽을 때마다 눅진한 눈가를 찡그리곤 했다.
진주에서 부산까지, 낮이라면 한시간 반 남짓한 시간에 도착했을 거리를 벌써 세시간이 넘어가도록 버스는 기어가고 있다. 출발 전에 터미널에서 사먹은 싸구려 김밥이 속에서 메슥거리고 거기에 더해 옆자리에 앉은 덩치 큰 아이가 풍겨내는 땀냄새가 나를 질식시켜버릴 지경에 이른다. 이미 그 대단한 풍채 덕에 내 몸은 창가쪽으로 바짝 밀려나 있기도 했다. 차창에 얼굴을 가져다 댄다. 불결한 것들을 잠시나마 잊으려 눈을 감고서 그나마 시원한 부분을 찾아드는 것이다. 한 여름 시원한 벽에 등을 대고 잠을 자듯 차창에 서린 비교적 찬 공기를 열심히 들이키는 것만이 사상터미널에 도착할 때까지 나를 진정시켜 줄 것이라 믿고서. 힘겨운 하루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다. 조금만 방심해도 속에서 무언가가 차올라 화들짝 놀라곤 한다. 내 속에 쌓인 것들이 이렇게나 많았던가. 반쯤 쉬어있던 김밥을 비롯해 오늘 하루 먹었던 음식들, 빌어먹을 버스 안에 처박혀 있는 기분, 지친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너덜너덜한 마음 따위들을 하나씩 곱씹었다. 뭐가 됐든 시원하게 비워내고 싶었지만 아직은, 참아야만 했다. 이 개떡같은 버스를 탈출하는 순간까지는 참아야만 하는 것이다.그러나 개떡같이 더러운 냄새들, 개떡같은 울음소리, 개떡같이 붉은 빛, 개떡같은 멀미, 개떡같은 하루. 개떡같은 계절은 끝날 기미조차 없다.
힘겨운 하루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개떡같은 것들을 죽는 순간까지 참고 머금어야 하는 지도 모른다. 금방이라도 멈춰 서 버릴 것 같은 낡은 버스가, 끝도 없이 이어지는 꽉 막힌 도로가, 아무렇게나 섞여 속에서 끓어대는 음식물들 따위가 살아갈 내 앞날과도 꼭 닮아 있었다.
-Ho
2015년 7월 12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