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도란도란 프로젝트 - 여든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집에 오래된 이불이 있었다

초록빛 촌스러운 차렵이불이었는데

오래 써서 끝이 닳고

색도 연둣빛으로 드문드문 바랬었다

듬성듬성 검은색 파란색 등의 기하학 무늬가

새쪼롬하니 콩콩 박혀서

제법 화려하게 촌스러웠다


우리집은 가난하지도 부유하지도 않았지만

어릴적엔 그래도 썩 부유하진 않았다

20년 전 즈음이면

막내도 태어나기 전이고

나도 동생도 한 토막짜리 꼬망이들이라서

부모님과 두칸짜리 방 중 한 칸에서

아웅다웅 붙어자곤 했다


내복이 내복인지도 모르던 시절이라

꼼지락대는 발가락들이

부딪히는 것만으로도 웃음이났다


하루는 보일러였나, 정전이었나

무언가 고장이라기에

우리 가족 넷이 일렬로 꼭 붙어누워

저 크지도 않은 초록이불을 두르고 잤다

추웠던 기억도 없지만

옹기종기 모여잤던 기억이 드문드문 떠오르니

그래도 추억하고픈 기억이었나보다


지금이야 방마다 침대 한 대씩 놓고

보일러 빵빵하게 틀고 푹 잔다지만

저 때처럼 꼭 붙어자도 이상할게 없던 시간이 없다

부모님이 늙어서가 아니라,

다 헤진 이불을 켜켜이 쌓아둔 장롱이 밉고

낡아서도 아니다


그냥 안겨서 잠들기에 내가 조금 자랐고

넓어진 집이 가끔은 무색하게 느껴져서 그렇다

새 이불보가 아이러니하게도 포근하지 않게 느껴져서 그렇다.



-Ram


1.

나는 이불이 없으면 잠을 못잔다.

몸이 찬 편이고, 추위도 많이 타서 여름에도 이불을 턱 밑까지 올리고 두 팔도 이불 안에 넣고 잔다.

보통 배만 덮으면 된다고 하지만, 나는 한 발이라도 이불 밖으로 나가있으면 뭔가 불안하다.

요즘은 많이 나아졌지만, 예전에는 여름에도 전기장판을 약하게 틀어놓고 잘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뭐.

장소가 내 방이 아니라 어디든 바뀌어도 잘 잘 수 있는 자신이 있지만, 이불이 마음에 안들면 뒤척인다.

은근 깐깐해서 이불도 고른다. 사실 색상, 패턴 등은 별로 큰 상관이 없다. 두께가 관건이다.

호텔 침구처럼 엄청 가볍지만 두꺼운 건 싫다. 가벼워도 답답한 느낌.

적당히 얇아야하고 물론 가벼워야하며 너무 크지도 않아야 한다.

이불이 내 몸에 비해 굉장히 크면 내가 주체할 수 없어서 싫다.

베개 역시 낮은 걸 선호한다.

높고 두툼한 베개는 아무리 푹신해도 불편하고, 잠을 쉬이 잘 수 없다.

사실 지금 베고 자는 베개는 어린이용이다.

굉장히 낮은 걸 고르고 고르다보니 완전 납작하고 길쭉하며 양쪽에는 사자랑 다른 동물 비스무리하게 그려져있다.

저 베개를 내가 거의 5년 전에 서울에 혼자 살았을때 샀던 건데, 언젠간 바꾸겠지 하면서 샀다가 지금까지 쓰고있다.

그리고 아래에 까는 이불 아래에는 항상 전기장판이 비치되어 있다.

요즘엔 여름에 사용하진 않지만 까딱하면 추위를 타기에 언제든지 누워 손을 뻗어 스위치를 켤 수 있어야 든든하기 때문이다.

어느 겨울 날은 무서운 상상도 해본다.

전기장판을 항상 켜고 자다가 갑자기 불이라도 나면 어쩌지.

그럼 난 머리카락부터 타려나. 불이 왕창 나고 있는 이불에서 탈출한다쳐도 내 머리카락들은 무사하지 못할 것 같다는 끔찍한 상상.

아니면 갑자기 침대 오른쪽에 있는 아파트 외벽이 갑자기 무너지면 어쩌지.

혹시나 내가 벽 쪽에 붙어서 자면 그대로 떨어지겠지? 일단 가운데에서 자자. 벽 쪽에는 붙지말자. 라는 바보같은 상상.

그래도 어릴적에 자다가 눈을 떴는데 내 눈 앞에 귀신이 있으면 어쩌지. 라는 상상보다 조금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다 내 상상 속의 일부를 얘기했지만, 아무튼 이불은 내 숙면을 위한 굉장히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2.

잠을 아직 깨지 못해 눈을 겨우 반쯤 뜨고 감고를 반복하면

섬유유연제 향이 진한 포근하고 익숙한 이불이 내 몸 위에 느껴지고,

누군가가 옆에서 내 뒤척임에 나의 기상을 깨닫고

끌어안으며 얼굴 어딘가에 뽀뽀를 하는 그런 아침이 있다.


3.

아주아주 어릴 적엔 잠버릇이 심해 이불을 빵빵 차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 잠버릇 다 어디가고 반듯하게 누운 그대로 아침을 맞이하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이건 어른이 된 건가.



-Hee


폭신폭신한 이불 속에서 몸을 부비며 생각했었다.

‘누군가 이 이불처럼 나를 감싸 안아주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런 것이 사랑이란 건 아닐까?’라고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사랑은 그렇게 감싸주고 따스히 덮어주는 것이 아니다.

감싸주는 것은 그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것일 뿐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그보다는 더 치열하고 냉혹하며 괴롭다.


누군가 나를 좋은 이불로 감싸 안아주길 바라는 건 사랑이 아니다.

그건 그저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주기 위한 것일 뿐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내가 덮고 있는 이불을 함께 덮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내 ‘이불’이 있어야 하고, 그 ‘이불’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이불 속에서 우리는 ‘공감’을 나눌 수 있다.

사랑이란 건 그렇게 ‘함께’ 덮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시작하고, 위로 받고, 다시 싸우며, 각자의 하루를 기어이 살아내고

다시금 우리의 이불 속에서 우리는 ‘공감’을 나누며 다시 시작한다.

우리는 애초에 ‘혼자’다. 태어나기 이전의 느낌처럼 누군가와 ‘하나’가 될 수는 없다.

사랑이란 그렇게 각자의 삶을 함께 하는 것일 뿐이다.



-Cheol


그 이불은 두툼한게 정말이지 포근했어요. 왜 그렇잖아요. 두꺼운 겨울이불들은 너무 무거워서 속에서 몸을 뒤척이기도 힘든데 그 이불은 딱 적당한 무게에 까슬까슬한 질감까지도 참 좋았어요. 그 이불은 엄마랑 이모들이 어릴 적 나란히 덮었던 이불이에요. 형광 연두색과 분홍색이 어릴 땐 말 그대로 참 촌스러워 보였었는데 사실 촌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이불이었죠. 이불 솜과 피가 따로 겉돌지 않게끔 모퉁이를 따라 고운 자수도 놓아져 있는 좋은 이불이에요. 옷장 속에서 깊게 밴 나프탈렌 냄새마저도 참 좋은거 있죠. 이불을 곱게 여며준다는 것이 말입니다. 어릴 때는 그렇게나 마음 따뜻한 일인 줄은 몰랐어요. 아직도 할머니는 명절마다 손주들 이부자리를 손수 펴주세요. 일찍 잠에 든 날에는 어두운 방에 불도 켜지 않고 커다란 이불을 꺼내 펴주시죠. 허리 굽은 노인이 장정 넷은 나란히 덮을 커다란 이불을 말이에요. 그 때마다 저는 이유도 없이 자는 척 하곤 했었네요. '이불'하면 아직은 세련된 이불보다 그 커다랗고 정갈한 이불이 먼저 떠오르네요. 할머니도 떠오르고요.



-Ho


2015년 7월 19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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