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여든 한 번째 주제
열여덟 소녀였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구르는 낙엽에는 퍽 간지러워 웃어도
드리운 그림자가 부끄러워
꼭 숨고야마는,
가진 것 열 중 아홉을 두고
못 가진 하나를 열망하던 시간들.
나는 무엇이 그리 창피하였는지
자라나는 키라던지 머리칼보다
훨씬 움츠러들어
주위의 모든사람에게 날을 세우던 때였다.
나는 자꾸만 헤메이고 또 길을 잃었다.
충분히 아름답지 못한 것이 슬펐고
주어진 것들은 막상 조개껍데기마냥
알맹이 없는 허울인가 싶어
스스로 심해를 둥둥 떠다니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가라앉는 시간 동안 나는
많이 싸웠고 사랑했으며
또 의심하고 거짓말을 하고,
멋대로 굴다가 마음껏 슬퍼했다.
나는 방황했다.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보며 견디라하는
말도 아닌 말을 귓속에 때려넣는
이기적인 소리들은
열심히 씹어먹었다.
나는 나름대로의 길로 방황했다.
그 시절의 열여덟 나는
스물다섯의 나보다 덜 성숙하지만
충분히 헤메일줄 아는만큼 가벼웠던 것이다
친구나 공부가 전부가 아님을
조심스레 깨어가는 그런 시절.
그러니 마음껏 방황하자.
가벼웠던 그 시절은 지났지만
지금 성숙해지는만큼 충분히, 방황하자.
-Ram
중고등학생 시절에 어른이 되면 방황하지 않을 줄 알았다.
'방황'이라는 말은 그저 사춘기때만 쓰이는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였다.
20대가 되자 더욱더 방황을 하고,
30대가 되어도 방황할 것만 같고,
40대, 50대가 되어도 방황은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어릴 적에 어른들은 항상 '방황'을 나쁜 뜻으로 이야기를 하셨다.
방황하지마, 방황하는 아이들은 안좋은 아이들이야.
그때는 방황이고 뭐고 나한테는 방황에 대한 별 생각이 없었다.
20대에 와서 방황이 결코 안 좋은 뜻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주변에 둘러보니 모든 사람이 방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동생도, 부모님도, 친구들도, 동료들도, 전부 모두.
다들 방황의 스타일이 가지각색으로 다르고, 그 방황에서 느끼는 것들도 천차만별이겠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방황은 곧 경험이다. 그리고 경험은 곧 재산이다.
모든 방황들이 나의 경험을 만들고, 나의 경험들이 신념을 만들고, 그런 신념들이 모여 철학을 만들고.
갓 깎은 연필처럼 아주아주 뾰족한 목표가 마음 속에 있다고 할 지라도,
그 목표를 향해 가는 길들이 또다시 방황의 시작일 것이다.
최소한 나는 계속해서 방황을 할 것이다.
30대가 되어도, 40대가 되어도, 50대가 되어도.
이왕 방황 할 바에 즐기면서 해야지.
물론 쉬이 즐기지 못할 방황일지라도,
그냥 즐겨야지.
-Hee
방황이라는 것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 저리 서성대는 모습이 아닐까?
어찌보면 처음 생기는 괜한 반항심과는 조금 다르다. 하지만 반항심과 방황은 통하는 구석이 없지도 않다. 무엇이 그런 느낌을 들게 하는 것일까? 방황한다는 것은 자존감이 높아도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해 반항심이란 것은 자존감의 부족으로부터 생겨나는 것 같은 맥락이 존재한다. 그 미묘한 차이는 어쩌면 ‘인정받지 못하는 것’과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못하는 것’으로부터 구분될지도 모르겠다. 인정받지 못할 때 방황은 시작되고, 알아주는 이가 없을 때 반항심은 생겨난다.
그런 의미에서 대학 이 후 내가 겪었던 것은 ‘방황’이었다. 나에게 찾아온 ‘방황’에 처음에는 어찌할 줄을 몰라 전전긍긍하였다. 나의 마음이 흔들리고, 죄책감이 들며, 답답함이 느껴졌다. 어찌보면 그 때 내가 선택했던 ‘이별’이란 상대로부터가 아닌 나로부터의 ‘나 자신’을 찾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초등, 중등, 고등학교를 살아오면서 ‘길들여진 나’가 아닌, ‘진짜 나’의 순수한 모습을 찾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그런 ‘길들여진 나’를 버리기 위해 그런 나를 사랑해주던 이를 ‘배신’하는 것에서부터 나의 방황은 시작되었다.
애써 버티는 것이 아닌, 그 동안의 나를 완전히 버리고, 마음이 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흐르기 시작한 ‘나’를 찾기 위해 떠난 시작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가을의 전설’에서의 트리스탄의 방황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그리고 가장 공감이 가는 부분은 바로 영화 ‘타이타닉’에서 나오는 저녁식사 장면 중의 대화들이다.
“그런 장돌뱅이 생활이 좋은가 보죠?” 어른이 말한다.
“그렇습니다. 저로선.. 부족할 게 없죠” 젊은이가 말한다. 그리고는 이어서 말한다.
“내가 숨쉴 공기와 스케치북 한 권. 내일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누굴 만날지, 어떻게 될지, 다리 밑에서 잠들 때가 있는가 하면, 이렇게 멋진 식사 대접을 받기도 하고, 삶이란 낭비해서는 안 되는 것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대로 받아들여져야 하죠. 매 순간을 소중히”
그야말로 절대적으로 공감이 가는 부분이지만 사실 내가 만나본 수 많은 사람들을 둘러보면,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은 단순히 낭비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마음속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들을 느끼는 것. 그리고 그 것에 남의 시선과 상관없이 충실할 줄 아는 것.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그대로 행하는 사람들. 나도 한편으론 그렇지만, 난 그들이 멋있다.
-Cheol
이 길에 별 볼 것 없다는 거 잘 알지 않나요.
부러진 칫솔걸이, 덜 익은 생선 비린내, 길가를 굴러다니는 시큼한 쓰레기들, 냉장고에 밴 해묵은 김치냄새, 곰팡이, 떨어진 셔츠 단추. 젖은 수건으로 닦는 얼굴, 눅눅하게 젖은 담배연기.
장마철에 썩은 쓰레기가 다시 썩어가는 냄새, 퀴퀴하게 찌들고 색바랜 날들. 내가 본 것은 거의가 이런 것이었어요. 이 길에 별 볼 것 없다는 거 당신도 잘 알겠죠. 이런 후텁지근하고 비루한 것들 말고 뭔가가 더 있기나 한지. 모르죠.
떠나오며 남겨둔 것 없는데 우습게도 지금에서야 이 길 어귀를 다시 기웃거리고 있어요. 사실 이건 여지없이 멍청한 짓이죠.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그 이유를 당신은 알까요. 알다시피 작은 마음 부풀리는 것 내가 잘 하지만 부풀린 마음에 떠밀리듯 무턱대고 길을 나설 수는 없는 형편이에요. 당신도 나도 그렇죠. 그런데도 축축히 젖은 당신 손 붙잡고 쏘다니고 싶어요. 순전히 그 이유 하나죠. 같이 길 거닐다 당신이랑 정들고 싶어요. 구불구불한 오르막길 질리도록 겪은 방황 그다지 반갑지도 않은데. 진탕을 걷더라도 스치는 어깨, 맞닿은 두 팔 감촉은 포근하겠죠?
-Ho
2015년 7월 26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