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여든 네 번째 주제
당신의 의미
우리는 25년 전 즈음 처음 만났지요..
얼마나 밝았는지 모릅니다.
그 때의 세상 전부, 모든 것이요.
따스한 목소리도 쿵쿵대던 심장소리도
사실은 제것인 듯 아닌 듯
중요하지 않았지만
기다려온 만큼이나 설레었겠지요.
당신이 나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고 있었어요.
내가 지나온 25년의 시간 동안
당신이 어떤 길을 밟았는지 흐릿하지만
5살 즈음에 분홍색 데이지 모자를 쓰고
당신의 손을 잡고 일터에 놀러 가던 날,
8살 즈음에 핑크색 코트를 입고 입학 하던 날,
처음 교복을 다려 입던 날,
창피하다며 상처를 주던 날,
유난히 추웠던 수능치르던 날...
그런 나의 기억 전부에 당신이 있어요.
당신이 나에게 부모 이상으로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는
당신은 아마 모를거에요.
아마도 조금 미안했고,
완벽하지 않았고,
밉고 또 서운했던 사람.
그래도 당신은 나에게
한 눈에 차지도 않던 세상을 걸을 때나,
맞지도 않는 교복을 얼추 입을 때나,
홀로서기를 시작하던 때나
조용히 묵묵히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고마운 사람이에요
미워도 밉지않은 사람이고
서운해도 늘 그리운 사람이고
가장 먼저임이 아쉽지 않은 사람이에요
고마워요.
-Ram
나는 너의 의미를 정의할 수 없다.
너도 나의 의미를 정의할 수 없다.
그저 나는 너를 느낄 뿐이고, 너도 나를 느낄 뿐이다.
그저 나는 너의 존재를 느낄 뿐이고, 너도 나의 존재를 느낄 뿐이다.
너의 존재에 대해 내가 느끼는 느낌을 인지할 뿐이고, 나의 존재에 대해 네가 느끼는 느낌을 인지할 뿐이다.
나를, 또는 너를 알고 싶어 이런저런 질문도 해보고,
나를, 또는 너를 알고 싶어 너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나를, 또는 너를 알고 싶어 너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놓칠새라 완전히 집중하고,
나를, 또는 너를 알고 싶어 너에게 시덥지 않은 고백도 해보지만,
네가 누군지 나는 도무지 알 수 없고, 내가 누군지 너는 도무지 알 수 없다.
너와 나는, 나와 너는 그저 같이 있는 순간들을 추억할 뿐이고,
너와 나는, 나와 너는 그저 함께 하는 대화들을 기억할 뿐이고,
너와 나는, 나와 너는 그저 서로의 머릿 속에 그려진 상을 생각할 뿐이고,
너와 나는, 나와 너는 그저 서로의 마음 속에 남은 너의 존재, 또는 나의 존재에 대한 느낌을 간직할 뿐이다.
나는 너를 아무리 정의하려고 노력해보지만 결국 수포로 돌아간다.
너는 나를 아무리 정의하려고 노력해보지만 결국 수포로 돌아간다.
그래서 너와 나는, 나와 너는 서로가 같은 공간에 존재하고 있는 자체를 사랑하기로 했다.
그래서 너와 나는, 나와 너는 서로가 같은 시간에 존재하고 있는 자체를 사랑하기로 했다.
그래서 너와 나는, 나와 너는 서로가 같은 순간에 존재하고 있는 자체를 사랑하기로 했다.
-Hee
나에게 너의 의미는 무수한 감정들의 실타래로 이루어진다. 너와 내가 이어진 우리의 사이에는 한 가닥, 가닥 마다 우리의 감정이 존재한다. 때로는 어떤 가닥은 얇아져 끊어지기도 하지만 내가 너에게서 느끼는 대부분의 감정들은 가닥, 가닥이 모여 굵디 굵은 감정선이 만들어지곤 한다.
마음의 문을 닫고 사는 나에게(혹은 요즘 시대의 우리에게) 너란 존재는 창문과도 같다. 그리고 나라는 닫힌 공간에서 우리라는 열린 공간으로 나가기 위한 유일한 ‘끈’이기도 하다.
나 역시도 그러하겠다지만 그럼에도 나에게 너는 ‘용기’, ‘희망’, ‘미소’, ‘부드러움’, ‘따듯함’ 같은 감정 선들이 더욱 굵었으면 좋겠다.
-Cheol
불순물 하나 없이 깨끗하고 따뜻한 물같은 너를 나는 곱게 사랑한다. 처음 너(에 대한 감정)는 발바닥을 겨우 적시는 얕은 물이었다가 이내 1월의 거센 눈처럼 불어나 내 키를 훨씬 넘어 높이 차올랐다. 겨우 물장난이나 칠 줄 알던 나는 깊은 물 속을 유영하는 법은 몰랐기에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고서 요령없는 발길질을 이리저리 내뻗기 바빴다. 무식하게 거센, 눈먼 몸짓에 너는 마음이 많이 상한 것으로 보였다.
발 닿지 않는 깊은 물 속을 나는 싫어한다. 돌아서면 금새 또 보고싶은 얼굴도 그 속에선 아득해져만 갔다. 너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흩어지는 지, 투명해지는 지 분간할 수 없을 즈음에 나는 막막함으로 가득했고 하릴없이 단어들과 기억들을 저울 위에서 옮겨가며 무게를 다시 재어보곤 했다. 주변의 먼지들을 쓸어모아 덮어두었던 기억들을 다시 떠올렸다. 손때 묻은 기억들은 끝도 없이 내 속에서 재생되었다. 사람을 사랑하고 또 헤어지는, 특별할 것 없이 이미 완료된 기억은 잃어버린 의미들을 조금씩 되찾아갔고 이번에는 너를 그렇게 또 잃어버리게 될 까 무서웠다.
너만은 누구보다 특별하다 말했지만 그건 아무래도 거짓임을 우리는 안다. 지금 이 순간 동안에는 진심인 말들이 곧 거짓이 되어버릴 것을 안다. 나의 마음이 이번에는 얼마만에 썩어 문드러진 채 도려내질까. 그러나, 네가 높이 차오를 수록 불안함은 더 커져갔지만, 그렇더라도 나는 믿는 수 밖에 없다. 사랑한다고 행복하다고 고맙다고. 경솔한 말들을 천연덕스럽게 뱉어내는 우리는 또한 짐짓 아름다워 보이기도 한다. 너의 애정과 나의 애정은 같은 종류의 것이라고, 꼭 닮아 있다고, 너는 세상에 누구보다 특별한 사람이라고 열렬히 믿는 수밖에 없다.
-Ho
2015년 8월 16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