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찌"

도란도란 프로젝트 - 여든일곱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나는 그랬다.

달빛이 방으로 쏟아지는 그런 밤에

분홍빛 하늘빛 같은 가닥을 엮어서

팔찌를 만드는 걸 좋아했다.


반짝이며 화려하지도 않거니와

어른스럽게 차분하지도 않은

그냥 나의 향기가 나는 것들.


네 손목에 매어주며

나의 마음도 꽁꽁 묶여있기를.


네가 잊고 사는 시간을

조각조각 모아서,

하루의 끝마디 즈음이면

네가 기지개를 켜며

너의 손목에 매달린 팔찌를 보고는

내 생각을 한 번 더 하기를.


우리는 천천리 먼 길을 돌아서

달이 뜨고 지는 시간에 만났다.

내일 널 본다면 그 생각에

난 오늘부터 설레기 시작했고,

하루가 온통 달빛으로 차는 것만 같았다.


달을 닮은 네 향기가

내가 묶어준 팔찌를 타고 흐르며

솔솔 풍겨오는 그 시간이 황홀했다.


나는 온통 네가 좋았다.

네가 정말로 좋아 참으로 그리웠었다.



-Ram


2년 전 여름에도 나는 팔찌를 만들었고, 1년 전 여름에도 나는 팔찌를 만들었었다.

사실 팔찌는 내가 즐겨하는 악세서리 축에도 낄 수 없었다. (목걸이도 마찬가지고)

악세사리는 귀걸이와 반지만 그나마 내게 전부였는데 지난 2년동안 팔찌의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친한 친구가 팔찌 만드는 것에 관심이 생겼고, 그저 '해볼래?' 던진 한 마디를 덥석 물고 그대로 팔찌의 세계로 입문했다.

마음을 먹으면 의욕이 생기고, 의욕이 생기면 행동해야 하는 내 성격에 바로 새벽에 일어나 동대문 평화시장으로 향했다.

무더운 여름날 약간 헐렁한 반팔에 짧은 치마를 입고, 통로가 좁은 매장 사이사이를 누비려고 미리 발 편한 슬리퍼도 챙겼다.

평화시장 입구 앞에서 나는 슬리퍼로 갈아신고 친구들과 함께 꼬깃꼬깃 돈을 모아 조금이라도 더 예쁘고 흔하지 않은 부자재를 사려고 열심히 매장과 매장사이를 누비고 다녔다.

꼭두새벽부터 집에서 출발해 그렇게 몇 시간을 평화시장 건물 안에서 돌아다닌 끝에 오후가 되어서야 다시 집으로 되돌아 가려고 하는데,

정말정말 내 몸에 있는 온 에너지를 다 쏟아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때마다 그나마 남은 에너지를 쥐어짜는듯한 기분으로 다시 전철을 탔다.

다행스럽게도 전철에 자리가 있어 앉았지만, 앉아있어도 힘이 든다는 느낌은 그 날 처음 받았었다.

그 뒤에도 몇번이고 동대문을 가서 부자재를 사왔고, 어디든지 환한 곳이 있으면 재료들을 들고나와 팔찌를 만들었다.

오링을 벌리는 니퍼질을 처음에는 서투르게 하는 바람에 오링이 심하게 휘어지기도 했었고, 니퍼로 벌린 오링을 제대로 힘을 주어 조이지 못해 팔찌가 다시 해체되기도 했었다.

그렇게 나와 친구들은 여러 종류의 팔찌를 만들었고, (그 중 마음에 드는 팔찌도 있었지만 막상 만들고보니 마음에 안드는 팔찌도 있었다)

실제로 팔기 전에 우리가 먼저 테스트를 해보아야 나중에 전환율이 높아질것이라고 생각해 직접 만든 팔찌를 팔목에 차고 다녔다.

아니나 다를까, 꼬깃꼬깃 모은 적은 돈으로 산 부자재들로 만든 팔찌는 딱 그 값어치만 했고, 생각보다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약하기도 했었고, 칠이 벗겨지기 다반사였다. 매듭으로 만든 팔찌는 서툰 매듭으로 인해 끈이 잘 풀리기도 했었고, 금새 때도 탔다.

여름을 노리고 만들었던 팔찌들은 찬바람이 부는 가을이 되어서야 테스트를 끝냈고, 테스트의 결과가 생각보다 많이 좋지 않아 보류해두자며 그렇게 부자재들을 따로 모아두었다.

사실 앞으로는 팔찌를 내가 만들일도, 차볼 일도 없을 줄 알았다.

그리고 1년 뒤. 작년 여름에 나는 또다른 팔찌를 내 손목에 차고 있었다.

또 다른 친구가 팔찌를 이미 만들어서 판매하려고 준비하고 있었고, 마케팅, 배송 등 일손이 부족해 혼자 전전긍긍하고 있었을 때였다.

우연찮게 그 말을 듣고 나도 작년에 팔찌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함께 일을 해보기로 했다.

2년 전과는 다르게 그 친구는 재미도 재미였지만 실제로 직접 팔찌를 연구하고, 혼자 테스트도 해보고 하며 여러가지 실험을 거쳐 꽤나 튼튼하고 멋진 팔찌를 완성했었다.

대기업을 박차고 나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는 그 친구의 모습과 팔찌의 모습들이 단단하게 닮아있었다.

그 친구의 손에서 탄생된 팔찌들은 마음놓고 판매해도 좋을거란 자신감이 생겼다.

실제로 그 친구가 팔찌제작을 하고, 내가 원자재 관리, 마케팅, 배송, 정산 등을 맡으며 팔찌판매를 시작했고, 그 해 여름 소소하지만 큰 의미의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

만약 내가 2년 전에 동대문을 뛰어다니고, 팔찌를 직접 만들어보고, 테스트를 해보지 않았다면 아마 1년 전 그 해 내 손목에 팔찌는 없었을 것이다.

더운 여름에 주문이 들어올때마다 우체국을 뻔질나게 드나들며 팔찌의 대목이라고 할 수 있는 여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 뒤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애정을 가지고 있던 팔찌판매를 접었고, 그 친구는 조금 먼 지방으로 이사를 갔기에 자주 만나지는 못하게 되었지만 서로 계속 도전적인 일들을 하며 안부를 묻고 있다.

팔찌는 내게 또 하나의 도전이였고, 경험의 연장선이였다.

비록 처음에 세웠던 목표에는 미치지 못했기에 팔찌들을 보고있으면 지난날의 나의 한계들과, 모든 일을 칼같이 마무리 짓지 못한 일말의 죄책감과, 나뿐만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꿈과 희망과, 시작할때의 두근거림과 설렘이 뭉칠대로 뭉쳐져 있기 때문에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시작하고 끝을 내고 싶은 내게 팔찌같은 애증어린 것들이 마음 속에 담겨있다.

칼같이 끝내지 못한 일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늘어나지 않길 바라며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나는 계속해서 행동할 것이라 다짐한다.

한 발자국 내딛고, 또 한 발자국 내딛으며 행동하고 또 행동할 것이다.



-Hee


명절 때만 되면 머뭇거려지는 내 자신. 발이 무거워지는 나.

여전히 나는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는 못한다.

모두가 신경 쓰지 않지만 정작 본인만 신경 쓰이는 그러한 것.

이번에도 나는 그 곳에 가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연기를 하겠지.


그렇게 길거리를 방황하다 비치는 내 손목의 빛 바랜 팔찌.

한 때 나에게 자신의 흔적을 표시하고 싶다고 채워주었던 팔찌가 보인다.

어떻게 보면 아무렇지도 않은 척 연기를 하는 건 지금도 그럴지도 모르지.


낯선 기분. 가까웠다고 느꼈던 그 사람도.

잘 할 수 있다고 자신하던 이 삶도.

이제는 충분히 낯선 기분. 그저 멍한 하루.



-Cheol


이 자리에 굳건히 자리잡기까지 긴 시간 힘들게 버텨왔습니다. 우리같이 야시장 좌판에서 구른 이들은 누구랄 것 없이 남루한 삶을 버텨내야 했겠지요. 내 설움의 날들도 유난할 것 없이 여기까지 흘러왔고요. 매대 위에서 들려졌다 놓이기를 수 없이 반복하는, 원가 삼백원도 못 되는 실밥의 생은 어떤 주인을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결국에는 싸구려 그 이상이 될 수는 없을 겁니다.


광안리 해안도로 좌판에서 나는 삼천원에 팔려왔습니다. 엄청나게 부풀려진 가격으로 매대 위를 뒹굴다 끝내 주인을 찾지 못하고 무더기로 버려지기 일쑤인 우리네들 사이에서는 꽤나 큰 성공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제야 주인을 만났으니 앞으로의 인생이 사뭇 기대가 되더군요. 결코 화려하진 못할 것임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그러나 재수없게도 저는 그 다음 날부터 꼬박 3년을 책상 위에서 쌓여가는 먼지들과 함께 뉘어져 있었습니다. 팔찌로서 겪을 수 있는 최고의 굴욕을 겪은 셈이지요.


책상 위에서의 날들은 불행했지만 또한 행복한 날들이었습니다. 책상 위에는 색색의 실리콘팔찌들, 비싸 보이는 가죽팔찌들이 같이 있었지요. 그러나 그 3년 동안에 친구들 대부분이 사라졌습니다. 주인이 모조리 잃어버린 겁니다. 씻기 전에 아무곳에나 벗어두고서, 또 긴 팔 옷을 갈아 입다 소매에 쓸려 손목에서 빠져나간 것을 그 미련한 놈이 알아 차리지 못한 것이죠. 무시무시한 일입니다. 친구들이 점점 줄어 갈 수록 내가 어딘 지 모를 곳에 내팽개쳐질 차례가 다가오고 있는 것만 같아 아주 미쳐버릴 지경이었어요. 그러면서도 드디어 내가 손목에 채워질 거란 생각에 행복해지는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너무나 초라해 찾지 않는 나와 너무나 화려해 찾지 않는 가죽팔찌 하나만이 끝까지 남았지요. 마지막으로 가죽팔찌 친구가 사라지고서 나는 ‘이제야 내 차례가 왔구나.‘와 '나도 결국엔 사라질 테지.’ 두 생각의 틈 속에서 기대와 불안을 오갔습니다. 태생이 싸구려인 터라 어쩔 수 없이 싸구려같은 생각을 결국에 했어요. 그의 손목에 묶여지는 순간에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웃음으로 기뻐했지요. 한 줄의 실일 뿐인 초라한 외형이 도움이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습니다. 제 차례가 오자 그는 자일을 묶을 때나 쓰는 매듭으로 저를 손목에 묶더군요. 잘리기 전에는 풀 수 없게 말입니다. 그게 벌써 1년이나 되었네요. 잃어버려질 염려를 할 필요가 없다는 건 굉장한 안도가 됩디다.


지나온 시간들은 참, 힘들었지만 그래도 가장 팔찌다운 삶을 잘 버텨냈습니다. 이제 저는 그에게 적어도 삼만원은 훌쩍 넘어서는 가치를 갖게 된 것 같더군요. 조금씩 헤져가는 나를 보는 그의 눈이 걱정으로 가득한 걸 당신도 보았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Ho


2015년 9월 6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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