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도란도란 프로젝트 - 여든여덟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내가 너무 사랑해서

그 마음을 너에게도 전하고파

내가 밟은 그자취를 따라 밟아보길.


반팔을 입어도 긴팔을 입어도

어색하지 않은 미묘한 정오에

밍숭맹숭한 밀크티 한 잔.


살랑살랑 바람 불 적에

아무 걱정 없이

조금 부산스러운 공원에서

발가락 꼼지락 거리기.


높게 솟은 나무들 사이로

햇볕이 부서지면

나도 따라 절로 웃음이 났어.


...

나는 수많은 것들을 네게 알려주고 싶었어.


남들은 모른다.

그 하늘 아래서 내가 어떤 마음으로

너를 그렸는지,

그 길에서 내가 어떤 모습으로

너를 기다렸는지.


나만이 아는 소중한 기분을, 시간을, 바람을

네게도 알리고 싶었을 뿐인데


너는 씁쓰름한 아메리카노를 즐겨마셨고

숨이 턱까지 차도록 뛰는걸 좋아했어.

나무 아래로 드리우는 그늘에서의 낮잠을 동경했어.


강요하지 말걸.

추천이라는 이름으로

너에게 나의 감정을 강요하지 말걸.

정말로 그러지 말걸.



-Ram


1.

그땐 그 곳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감도 오지 않았다.

그저 아는 커플을 따라갔을 뿐이였다.

아직 해가 지지않은 늦은 오후의 그 곳은 아늑했다.

나무로 된 테이블과 그리 밝지 않은 은은한 조명.

장식용으로 소품들을 잔뜩 갖다 놓아 진열해 놓았지만,

벽 한 면을 가득 채운 큰 책장만큼이나 더 멋진건 없었다.

그나마 궁서체로 진지하게 써있는 '마음'이라는 글자를 담은 프레임만이 선명했다.

그 곳에서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켰고, 맛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함께 갔던 커플 집에서 빌렸던 (정확히 말하면 커플 중 언니의 것) 수 권의 책 들이 내 옆을 차지하고 있었고,

오빠와 언니는 기타와 악보를 보며 이야기를 했다.

그 곳엔 음악을 만들고,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자주 온다고 했다.

그 곳은 예전에 있었던 곳에서 이사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았었고,

이사 오기 전 예전의 그 곳은 어두컴컴한 지하였고, 크기가 조금은 더 작았다고 한다.

이제는 1층에 햇볕이 잘 드는 위치에 자리잡은 그 곳은 크기가 살짝 커졌고, 밝아져, 어두운 그 곳을 좋아하던 사람들은

더 이상 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곳의 역사를 대강 듣고 난 후 얼마지나지 않아 카페에 사람이 80%는 찼는데,

그 중 대부분이 기타를 들고 있었고, 삼삼오오 작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담배를 피며 웃고 있었다.

기타를 들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대부분 혼자였고, 가져온 노트북 화면에 눈을 응시하거나, 커다란 A4크기의 연습장을 펴

연필로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나는 그냥 대화의 목적이 아닌 무언가를 창조하고 싶은, 그리고 어쩌면 독특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그 곳이

굉장히 인상깊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 곳을 자주 갈 수가 없었다.

그 커플을 더 이상 만날 수 없었고, 방향감각이 제대로 없던 나는 그저 그 곳이 존재하는 사실만 인지하고 있을 뿐이였다.

나 역시 머지않아 그 동네를 떠났다.

사정상 내가 혼자 살고 있는 집을 자주 옮겨야 했다. 그것도 전방위적으로.

또한 여러 장소에 적응해야 했고, 여러 사람들에게 적응해야 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갑자기 그 곳이 문득 떠올랐다.

그 곳에 같이 갔었던 사람들도 떠올랐고, 그 곳에 갔을 적에 내가 살고 있던 동네도 떠올랐다.

그 곳의 위치가 어디 쯤인지 내 머릿 속에 기억하고 싶었다. 그래서 지도뷰로 열심히 마우스 휠을 돌리며 이리저리 찾아보았다.

그 동네의 온 골목을 마우스와 함께 투어한 결과, 그 곳을 찾을 수 있었고, 오히려 3년전 사진을 담은 지도뷰여서 100% 확신이 들었다.

그 이후 나는 그 곳을 가기 시작했다.

그 곳을 가니, 그 당시 생각이 절절했다.

그 당시 내 모습이 떠올랐고, 그 당시 살던 집, 그 당시 만나던 사람, 그 당시 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사실 그 당시의 기억들은 그리 쉽고 마음 편하게 떠올릴 수 없는 기억들이 많아 일부러 고이 마음 한 켠에 묻어두었었다.

그리고 그 곳에만 가면 그 마음 한 켠의 기억들을 꺼내어 나 홀로 추억했다.

나 혼자면 충분했다.

누굴 데려갈 엄두도, 생각도, 전혀 나지 않았다.

그냥 온전히 나만의 그 곳으로 남기고 싶었고, 그 당시의 기억 말고는 더 이상의 그 곳과 얽힌 추억을 앞으로도 만들기 싫었다.

그냥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몇 년간 나홀로 그 곳을 찾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그 곳은 안 변한 것 같으면서 변한 부분들이 많았다.

전체가 흡연이 가능했던 그 곳은, 시대를 따라 비흡연구역으로 바뀌었고, 덕분에 그 곳은 독서실 같은 분위기가 되었다.

그 곳에 갔다, 하면 느꼈던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이젠 사람들이 조용한 장소라고 생각하며 그 곳을 찾을 때도 많았다.

그 변화들을 지켜보며 나도 변했다.

이제는 그 곳을 나만의 장소, 그 당시의 추억으로만 남겨두기 싫었다.

충분히 그 당시를 곱씹었으며, 충분히 추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으며, 나 홀로 그 곳에서 과거의 시간을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묻지도 않은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그 곳에 대해 실토했다.

내가 사실 정말 좋아하는 곳이 있어, 라면서.

고맙게도 나의 그런 작디 작은 이기심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이해해주었고,

선뜻 그 곳에 함께 가자고, 나와 그 곳을 반겼다.

이제는 아끼고 아껴두었던 그 곳의 존재를 이야기했고, 그 곳을 함께 가자며 추천한다.

이제 그 곳은 과거의 나의 장소가 아닌, 현재 내가 존재하는 장소이고,

미래의 내가 존재할 수 있는 장소이기에.


2.

나는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추천을 한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추천을 할 때 무슨 심리가 깔려있을까.

저 사람과 취향을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짙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추천한 어떤 것에 대해 나와 같은 감정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는 것도 같다.

무엇보다 분명한 건,

나에게 있어 추천을 한다는 자체는, 내 방 책장 한 공간을 차지하는 추억상자에서 그 추억들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고

그 추억들을 공유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쉽게 추천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너도 나에게,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을 추천해주었으면 좋겠다.



-Hee


춥고 배고프고 외로울 때, 나는 내 자신이 두려웠었다.

어쩌면 그런 '나 자신에 대한 두려움'이 나의 모든 것을 멈추어 버렸었는지도 모르겠다.

추위는 내 안의 모든 열정을 얼려버렸고

배고픔은 이 사회가 나에게 주는 압박처럼 느껴졌고

지레 겁먹은 외로움은 나를 더욱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어쩌면 나는 나 자신에게 나도 모르는 사이 자신과의 싸움에 대한 '패배'를 선고하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결국 나를 이겨낼 수 없다' 그리고 '나는 결국 주변인들의 조언이란 허울의 '지시'를 수용하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의미에서 내가 나의 성녀(이전의 나를 지켜주었던 나의 벗)를 떠나보냈던 것은 '배신'이 아니라 '패배'였다고 정정하여도 되겠다.


'배신' 혹은 '패배' 이 후,

얼어붙은 나 자신은 결국 얼마못가 멈추어 버렸고, 나는 그러한 '정지' 상태에서의 나를 인식하였다.

'한 걸음이라도 움직이고 싶다'라는 마음에 나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곳으로 나아갔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러한 나의 발버둥은 어찌보면 결국 나를 움직인 것이 아니라 일종의 '도피'였다.


나는 다시 1년 전 내가 '정지'되었던 이 곳으로 돌아왔다.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혹은 '더 상처받은 상태로'.

그래도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 내가 선 이 곳이 '나를 위한' 마지막 길이라는 것을 안다.

'물러날 수 없다'라는 마음가짐은 굳어진 나의 몸을 조금씩 움직여감을 온몸으로 느낀다.


비장하게, 치열하게, 묵묵하게 그저 오늘 하루를 나의 미래를 향해 이끌어 갈 뿐이다.


그렇게 나 자신을 누군가에게 추천할 수 있는 상태로.



-Cheol


- 니 느그 아부지 말씀 하시는 거 잘 들었제? 시험 잘 봐가 거기 들어가기만 하믄 니는 다 잊아뿐다. 그때부터 니는 평생 돈걱정 할 필요가 없어지는기라. 니도 알겠지만은 느그 어무이, 아부지 억수로 힘들게 살아왔다 아이가. 니가 지금 무슨 생각하는 지 내도 아는데, 치과의사 그거 이제 돈 그래 많이 못 번다. 샘 친구 중에 치과의사놈 하나 있다 아이가. 그라고 니 치대 등록금으로 들어가는 돈이 얼만지 알제? 느그 아부지 힘들다, 인마. 니가 거 들어가는 거. 그기 제일 큰 효도데이. 정신 바짝 챙기고 고마 글로 들어가뿌라. 니 인생 잊아뿐다.


- 시험공부 잘 하고 있제? 다른 거 걱정말고 니는 시험 준비만 잘 해라. 니 욱이도 거기 시험 본 거 알제? 금마 그거는 작년에 1차도 통과 못 하고 떨어짔단다. 니는 뭐, 원체 잘 하니까네, 조금만 공부해도 잘 될끼다. 느그 선생님 말하시는 거 들었제? 봐라, 느그 선생님도 좋다고 안 하시드나. 아빠만 믿고 니는 공부만 열심히 하믄 된다. 이번에 시험 잘 끝나면 엄마랑 느그 행님이랑 해서 다같이 니 먹고싶은 거 함 무러 가자. 조금만 더 열심히 해라, 알겠제?


장차 어떤 걸 배워 어떤 일을 하게 될 지, 그래서 내 인생이 어떻게 흘러 갈 지에 대한 의문을 애써 외면하고서 내 진로를 남에게 맡겼다. 3차에 걸친 시험을 떨어지고싶어 부러 망칠까도 생각했지만 없는 집안 형편과 아버지의 기대 탓에 그럴 수도 없었다. 국가의 돈을 받으며 일한다는 건 분명 안정된 일이 맞았다. 그렇지만 그 속은 너무나 터무니없이 멍청하고 답답한 곳이라 어쩔 수 없이 벗어나고 싶어진다.


“나가면 어렵고 힘든 거 나도 알아. 그런데 나 여기 나가서도 충분히 잘 할 수 있어. 왜 내가 나가면 당연히 무너질 거라 생각해? 왜 아빠는 아들을 그렇게 못 믿냐는 말이야."


퇴직하면 인연을 끊어버릴 거라는 몸서리 처질 정도로 파괴적인 답에 몇달간 연락을 끊은 뒤에야 내 미래에 더 관여하지 않겠다는 대답을 받았다. 그렇지만 여전히 퇴직을 전혀 반가워 하지 않으시는 눈치다. 사실은 그런 것 보다도 점점 더 이 생활에 익숙해지는 내가 가장 무섭다. 직업과 행복의 상관관계에 대한 피드백은 수 없이 많이 들었지만 모두 남의 이야기일 뿐이고 그 사이 더 나태해진 생각들을 자연스레 하고있는 나를 종종 발견하고 있다. 책임감 없는 추천의 결과는 역시 오롯한 나의 책임으로 돌아온다.



-Ho


2015년 9월 13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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