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도란도란 프로젝트 - 아흔 한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여자로 산다는 것.

우리 엄마는 얼마전

여자로서 삶을 마무리 했다.


예견되지 않았던 일이었고

덤덤히 받아들이기에 많이 아팠으리라.

반세기 가까이 삶을 살아가며

여자라는 이름으로 살아오던 시간들.


때로는 귀찮기도, 아프기도 했던 삶이지만

여자로 살아가며 나를 만들고, 동생들을 만들고

또 그렇게 우리를 기르던 삶.


우리가 벌써 한 뼘씩 더 커가는 세월 동안에

엄마는 그렇게 여자로서의 삶을 접고 있었나보다.


아직 살아갈 날이 더 많은 나는

어떤 기분일지 헤아릴줄 모르고

감히 가늠할 수도 없다.

엄마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남아,

여전히 나를 감싸고 있는데도 말이다.


여자의 삶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예민하고 복잡한 실타래 같다.

어디에서 톡 하고 터질지 모르는

옅은 물방울 같은 시간들.


나는 그녀에게 딸이기도, 친구이기도 하지만

지나온 세월을 어찌 감히 품어 위로할 수 있으랴.

보내어 버린 그녀의 여자로서의 시간을

나는 조용히 애도하고 슬퍼했다.


여자는 그래도 그렇게 살아가고

또 살아야하고

그 끝을 향해 살아가야 한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아름답고

눈이 부시도록 소중한 여자라고,

이 자리를 빌어서 꼭 얘기해주고 싶다.



-Ram


1.

성별에 관계없이 우린 모두 다 똑같은 사람이고, 인간일 뿐이다.

인간이라서 사랑하는 것뿐이고, 상처받는 것뿐이고, 기억하는 것뿐이고.

우리는 고독하다.

어떨땐 너무나도 고독해서 그 마음을 헤아릴수도, 걷잡을수도, 다독일수도 없어 허한 마음을 부여잡고 있을 수 밖에.

때로는 이리저리 휘청이고, 흔들리고, 갈피조차 잡을 수 없어 두려움이 생기고 의지할 수 있는 곳을 찾는다.

우리는 한없이 나약하다. 그래서 사랑한다.


2.

처음 본 그 여자는 굉장히 까맣고 팔다리가 길었으며 말랐다.

화장을 거의 하지 않은(하지만 무언가 발라져있긴 했다)듯한 얼굴에, 검정색 뿔테안경을 쓰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인사에 답하며 굉장히 멋쩍어하면서도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만난 목적에 알맞게 서로 상투적인 이야기가 오갔다.

그녀의 말에 거짓이 있는지 확인은 할 수 없었지만, 나는 그녀의 질문에 거짓없이 대답했다.

약간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그녀의 투박한 말투가 약간 당황스럽긴 했지만 솔직해 보였다.

그 후 그녀를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만났다.

난 그녀와 대등한 관계를 원했으나 그녀는 그 관계를 원하지 않았다.

이미 그녀에게 익숙한 습관같은 관습이 그녀를 움직였고, 이야기시켰다.

그래도 나는 그녀와의 관계를 쉽게 끝내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그녀와 나는 힘들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녀는 내 정곡을 알고 싶어했고, 나는 그걸 노리는 질문을 들을때마다 의도를 알면서도 모른체했다.

그녀와 나는 항상 대화할때마다 신경전을 벌였고, 서로가 우위를 점하려고 했다.

그녀와 대화를 마무리짓고 뒤돌아서 나올때마다 온몸에 힘이 빠졌다.

결국 그녀와 나는 맞지 않는 사람으로 서로에 대한 결론이 났고, 그 후로 그녀를 다시 볼 수 없었다.

그녀와 내가 만난 목적이 그때와 달랐다면 어땠을까.

계속해서 그녀와 볼 수 있었을까.

분명히 맞는 부분을 난 찾을 수 있었는데.

투박하고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그녀에게 나는 조금 더 애정을 줄 마음이 있었는데.


3.

여자다운 것이란 말을 살면서 많이 듣는다.

여자다운 것이란 뭘까?

진한 화장을 하는 것?

조신하게 이야기하는 것?

행동가짐을 조심히 하는 것?

손톱에 주기적으로 메니큐어를 바꾸는 것?

머리가 긴 것?

단정한 옷을 입는 것?

잘 모르겠다.

나는 그냥 나다운게 좋다.

화장을 굳이 진하게 하지 않아도,

욕이 나올땐 욕을 해도,

신이날땐 소리높여 이야기하고,

당당하게 행동하며,

항상 손톱이 짧고,

단발머리를 좋아하고,

짧은 치마를 즐겨 입는,

그냥 나다운게 좋다.

성별로 사람을 단정짓는 일은 한 사람을 알아갈 새도 없이 그 한 사람과 멀어지는 일이다.



-Hee


나는 여자를 만난다.

물론 남자든 여자든 내 주변엔 좋은 친구들이 있다.

하지만 나에게 여자라는 성별은 남자와는 다른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특별한 이성의 곁에 머물고 싶은 감정은 인간적인 면에서 자연스러운 것이다.

성적인 것을 떠나 조금 더 특별한 교감이 가능한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분명 한계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그것은 찬란하며 고귀하고 특별하다.


나는 여자를 만난다.

나는 그이들의 관계에서 몇가지의 구분점을 찾았다.

훌륭한 파트너십을 이루며 미묘한 의리를 지킬 줄 아는 사람.

그저 나의 달콤함에 잠시 취하는 사람.

혹은 단점까지도 나를 이해해주고 견뎌주는 사람.

때로는 열정적으로 나를 차지해버리는 사람.

또는 내가 감히 선뜻 손잡지 못할 만큼 귀중한 사람.

Whatever


나는 나의 대지의 끝에 서있다.

나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다시금 돌아온 이 곳에서 버티고 서있다.

이 한계를 넘어간다면 누군가를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나의 한계를 넘어 불바람에 맞선다.

어쩌면 내 한계만으로는 사랑하지도 받지도 못해서일지도,

어쩌면 내 한계를 넘어 새로운 지평에 우뚝 서서 어떤 이의 손을 쥐고 나가고 싶어서 일지도,

그런 모순된 마음으로 나는 나의 한계를 넘어 불바람에 맞선다.


버티고, 맞서며, 내딛고, 나아간다.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불바람 속 일지라도,

나의 한계를 넘어 내딛는다.


나는 여자를 만난다.


열광하고, 감명받으며, 상처받고, 어긋난다.

그 것을 반추하여 나의 한계를 넘기 위해 내딛는다.

고독, 달콤한 그 것은 바로 지금 나의 것이다.


Oasis의 Whatever를 듣는다.



-Cheol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나름의 기품이 흐르는 여자를 생각한다. 촌스러운 가방을 들고 낡아버린 유행을 좇는 여자는 한참이나 굳어있던 표정을 되살리며 대답을 한 뒤 이내 멍한 얼굴로 돌아간다. 하늘이 며칠째 맑게 개었다. 이 기분좋은 풍경을 여자의 얼굴에 담고싶어 나는 또다시 말을 걸었다.


영화 재밌었어? 엄마, 우리 네 가족 다같이 영화 본 게 도대체 얼마만이야. 못해도 10년은 안 됐겠어?


에스컬레이터 한 계단 아래서 뒤돌아 보면 여자의 얼굴이 눈 앞에 바로 보였다. 나이에 걸맞게 늘어진 살들, 주름, 기미가 문득 슬퍼 보였다. 조금 더 아껴가며 늙어도 좋았을 것을. 여자의 볼을 쓰다듬다 어느새 떠오른 미소를 보고서야 다시 길을 걸었다.


젊은 시절 여자의 얼굴을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지금보다 더 아름다웠을 여자의 웃는 얼굴을 그저 머릿속에서 희미하게 그려보았다. 볼을 쓰다듬던 순간에 나는 서글펐다. 누구나 그렇게 늙어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엄마는 이미 감내했을 슬픔을 감히 내가 서글퍼했다.



-Ho


2015년 10월 4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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