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도란도란 프로젝트 - 아흔 두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미안했어요.


마음의 벽을 쌓은 건 나였다.

사실 나도 알고 있었고

당신 또한 힘들었겠지.


나는 내심 이기적이게도

내가 쌓아 올린 이 벽을

당신이 나서서 허물어 주기를,

당신으로 인해 나의 상처가 아물기를

그렇게 조용히 기다리고 바랐다.


우리는 같은 보폭으로 걸으며

비슷한 눈높이에서

같은 가을 바람을 맞으며

흐르는 시간을 아쉬워했다.


은행 나무 냄새에도 킬킬거리며

밤을 꼬박 새우고도

뭐가 그리 좋아서 뜨는 해를 붙잡고팠다.


좋은 마음이 쌓이면서

마음 한 켠에 벽이 차올랐다.

이 행복이 언제라도 떠나진 않을까.

당신이 내 손을 놓고 홀연히 사라지진 않을까.


겪지도 못한,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아린

그런 상황들을 애써 덤덤한척

그대로 마음에 쌓았다.


당신도 나도 그대로였지만

내 마음은 그랬다.

나는 사랑을 받을 줄 몰라서

넘치는 당신의 애정을 그렇게 쌓았나보다.


그리고 우린 그렇게 쌓인 벽을 넘지 못했고

나는 그대로 마음을 닫았다.


내 마음이 옹졸하여 그랬어요.

그러니 그대 자책하지 말아요.

내가 쌓은 벽이, 마음이 그랬어요.

미안했어요.



-Ram


1.

견고하게 쌓았다고 생각한 벽에 틈이 있었나보다.

조금씩 조금씩 흔들리고, 무너지고, 기울고 있다.

우려했던 것과는 반대로 나의 벽이 먼저 무너져내렸다.

약간은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무너져도 괜찮다는 결론이 나왔다.

괜찮아.

벽은 다시 쌓아올리면 그만이니까.

얼마나 튼튼하게 쌓아올리냐의 문제니까.

오래걸려도 괜찮다.

괜찮아.


2.

내 등 뒤에 많은 공간이 있는 것보다 내 눈 앞에 많은 공간이 있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그 날도 자연스럽게 벽을 등지고 앉았다.

내 앞에는 내 귀를 행복하게 하는 소리들과 약간은 정신없지만 나름 질서있게 앉아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솔직히 그때까지만 해도 그의 존재만 느꼈을 뿐 다른 모든 것들도 새로웠기에 그리 비중있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떤 눈길이 나에게 닿았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했던 시간들.

그 곳에 가지 않았어도 내겐 약간은 아쉬웠을테지만 별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곳에 꼭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생소한 길을 걸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3.

나는 너의 마음의 벽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뭐, 벽 뿐만이 아니라 너의 모든 것을 알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곧 그런 마음을 접었다.

천천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기로했다.

네가 나를 보았던 것처럼.


4.

예전에 아는 언니에게 들었던 소개팅 일화가 있다.

여자이며 30대 초반이였던 언니의 직장동료는 어느 호텔 로비에서 소개팅을 했다.

상대는 의사였으며 나이도 30대 중반으로, 생김새도 호감형.

언니의 직장동료와 그 소개팅남은 바에서 어느정도 이야기도 통했고, 얼큰하게 취하자 바로 호텔방으로 올라갔다.

소개팅남은 언니의 직장동료에게 먼저 씻으라고 권했고, 언니의 직장동료가 씻고 나오자 자신도 씻으러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소개팅남은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았고, 씻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무언가 이상했던 언니의 직장동료는 화장실 문을 두드렸으나 별 기척이 없었고, 호기심에 화장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곧바로 언니의 직장동료는 소리를 지르며 대충 옷을 들고 호텔방에서 뛰쳐나왔다고 한다.

소개팅남은 화장실 벽에 자신의 똥을 칠하고 있었다고 했다.

소개팅남은 무슨 생각에 그런 행동을 했을까.

그 행동은 소개팅남의 단순한 주사였을까, 아니면 또다른 희열이였을까.



-Hee


이따금 우리는 어떠한 벽을 만난다.

어떻게 보면 그 것은 우리를 가로막고 있다지만,

그 것을 너무 미워하지는 말자.


내 앞에 놓인 벽

그 것은 그저 나름의 이유로 그 곳에 서 있을 뿐이다.

그저 그것마저 보듬고 나아가자.


오늘은 내 앞을 가로막는 벽일지라도

내일이면 그 것은 내가 돌아와 기댈 수 있는 보루가 되어줄테니


그저 우리가 한 발 한 발 내딛듯이,

그저 보듬고 오늘도 나아가자.


우리의 혹은 나의 가치를 앞세우고

당당히 나아가자.



-Cheol


저기 바닥에 굵어지는 선이 보이니 너는 절대 그 선을 넘어가지 말아라


내 말을 듣지 않는 바보같은 동생아 선에서부터 솟아나는 벽을 보렴 아직은 가뿐히 벽 너머를 오갈 수 있으니 어서 다시 넘어 오너라 해 지고 쌀쌀한 저녁이 되면 다시 곁으로 돌아오렴


한결같이 철없는 동생아 벽은 솟을만큼 솟아 두터워지기 시작했다 엄마, 아버지 돌아가시면 그때부턴 우리 둘 뿐이란 걸 잘 알지 않니 너의 표정이, 몸짓이 이제는 멀어져 잘 보이지 않는다 너를 부르는 내 애타는 소리를 들으렴 메마른 목청에서 나는 갈라진 목소리를 외면하지 마려므나


[그러나 형님, 이 벽은 형님이 넘어 올 수도 있었지 않았습니까, 어째서 내게는 그토록 바라기만 합니까. 형님 그 꼿꼿한 자존심을 보세요. 형님은 스스로도 하나의 벽이지 않습니까. 나는 싫습니다. 그 차갑고 거친 목소리 때문에 나는 질식할 것만 같아요.]


벽은 이제 어린애들 고무줄 넘듯 뛰어넘을 가소로운 것이 아니게 되었구나 이제는 내 목소리가 희미하게라도 들리기나 하는 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동생아, 우리는 가족이잖니! 너무 늦지 않게만 오너라 네게서 전해지는 미세한 진동에도 애잔한 마음 따뜻해지는 형을 보아라



-Ho


2015년 10월 11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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