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아흔 네 번째 주제
어른의 맛.
어린이 치약에서 어른 치약으로 바꾸던 것 만큼
후식에서 녹차보다 커피를 고르는 순간이
조금씩 어른의 그림자로 물드는 순간 같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녹차를 선호하지만
커피는 어른의 음료임이 틀림없다.
우리 엄마의 입맛이 다방 커피로 시작하여
투 샷이 기본이 된 찐한 아메리카노로,
그렇게 변한 것만 보아도 그렇다.
몇 년 전, 아니 어쩌면 지금까지도
유명 프랜차이즈 커피 잔을 들고 걷는 모습이
대단한 어른의 모습으로 보여지곤 했다.
어른의 맛,
소주도 쓰고
아메리카노도 쓰며
죽염 치약도 쓰다.
달지 않고 쓴 맛은 전부 어른에게 종속되고 만다.
마치 쓴 맛의 본질을 알고
이겨내어 즐길 줄 아는 것만이 어른의 것인 것 같다.
나는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도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그대로 자라서 어른의 이름표를 달았다.
나는 여전히 커피를 '잘' 마실 줄 모르고
달달한 것을 쫓는 걸 보면, 어쩌면
조금은 미숙한 어른일지도.
-Ram
1.
그런 관계 있잖아.
그냥, 같은 하늘 아래 숨쉬고 있는 자체만으로도 감사한 관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서로가 건강했으면 싶고, 어디 다치지 말았으면 싶고, 맛있는 음식만 먹었으면 싶고.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버리고, 그냥 그저 같은 시간 안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관계.
거대한 우주의 톱니바퀴 속에서 우리는 그렇게 긴 삶도 짧은 삶도 아닌 우리의 생애를 살고 있는데,
그 생애 가운데에 어쩌면 찰나의 순간일수도 있는, 그렇지만 한 사람의 우주 속에선 억겹의 시간으로 느낄 수도 있는,
그런 순간순간 속에서 함께 웃고 떠들고 행복했던 시간들이 내 마음속에, 내 머릿속에, 내 기억속에 남아있는 것 자체에,
소중함을 품을 수 있는 그런 관계.
누군가에겐 너무나도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이야기일지 몰라도,
어떤 누군가에겐 가슴을 울리는 절절한 이야기가 될지도 몰라.
서로가 어떻게 느끼는지, 무엇을 느꼈는지 우리는 영원히 알지 못하지만,
그 마음의 근처라도 갈 수 있도록 예측이 가능한 그런 관계.
그렇게 너와 내가 만나고, 함께 웃고, 맛있는 것들을 먹고, 같이 자고, 좋은 곳을 바라보고
그랬던 그 자체를 기적이라고,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관계.
애틋함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어쩌면 그것이 삶의 동력의 일부가 되어 열심히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그런 관계.
문장으로는 도무지 내가 가지고 있는 어휘력과 언어구사력이 부족해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관계.
자신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그런 관계.
2.
우린 그렇게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진 않았다.
커피는 잔에서 사라져갔지만 아직 식지 않았고,
주변의 소음은 끊임없이 주위를 맴돌았다.
3.
연애는 사랑의 방식 중 하나일 뿐.
4.
아이유는 나빴다.
저렇게 슬픈 가사를 저렇게 해맑게 부르다니.
막상 들으면 신나는 노랜데, 가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너무 슬픈 노랜데.
자이언티까지 나빴다.
-Hee
1.
“내가~ 지금 상담하시는 분께 할 말은 아니지만, 정말 이런식으로 책을 만들어도 되는거에요?”
“아뇨 제가 선생님께 어떤 요청을 드렸는데, 수업시간에 무시를 당한 것 같아 기분이 너무 나빠요”
수화기 너머로 성난 목소리가 들린다.
때때로 어떤 이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 마음이 토라져 버리기도 하고,
어떠한 이는 자신만 빼놓고 변해버린 세상이 못내 야속한가 보다.
나는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편의점표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신다.
2.
그녀는 무엇이 두려웠던 것일까 스스로 나를 밀어냈다. 아니 스스로 도망갔던 것일까?
어쩌면 애초에 우리 사이의 유대감은 그저 연애, 단지 연애였을 뿐일지도 모르겠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홀로 생각에 잠긴다.
내가 고난의 시기를 지날 때 곁을 지켜주는 사람.
그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되었다. 아니 느낄 수 있었다.
진정한 사랑이란 것이 대충은 어떤 모양새인지 얼핏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그러한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그저 나의 옷깃을 더욱 부여잡자.
내가 떠난 자리에는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그린티 프라푸치노가
덩그러니, 남겨졌다.
-Cheol
공방, 서점, 바틀샵, 탭하우스, 게스트하우스 그리고 브루잉 바가 돋보이는 카페까지.
낮에는 커피를 팔고 밤에는 맥주를 파는 겁니다. 한 쪽 구석에는 제가 직접 고른 책들을 진열해 두고서 팔 거고 시간이 된다면 공예 일도 좀 하고요. 가능하면 가게 건물 위층에 게스트 하우스도 차리고 싶네요. 개미굴 같은 곳들과는 좀 다르게요. 지하에는 작은 상영관도 만들어서 보고 싶은 영화들 하루종일 틀어놓고 싶고요. 아, 맥주 한 잔 씩들 하면서 같이 영화 보는 거 얼마나 좋을까요?
해보고 싶은 거야 참 많지요. 그런데 사실 간절하지는 않습니다. 커피, 맥주, 책 같은 거 저는 쥐뿔도 몰라요. 그래도 그냥 한 번 해보고 싶어요. ‘이게 아니면 내가 할 건 없다.’ 뭐 그 정도로 하고 싶은 건 아니고요. 사실 그저 놀듯이 살고 싶은 거죠.
으리으리한 건물이 한 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항상 하고 있어요. 물론 저는 동수저도 못 되는 인생입니다. 그렇지만 건물이 없다고 이런 상상을 하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요. 지금 제 꼴이 너무 싫으니까 하게 되는 도피성 짙은 상상이죠. 책 읽는 한가한 시간이 좋아서, 놀러갔던 게스트 하우스가 좋아 보여서, 어디서 먹은 맥주가, 커피가 너무 맛있으니까. 누구나 한 번 쯤 해보는 생각들. 제 경우에는 좀 자주 하게 된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요. 잘 되면 돈도 좀 될 것 같고요. 아무래도 돈을 벌려면 개인 사업을 해야한다고들 말하잖아요?
하긴, 자영업이 어디 쉬운 일인가요. 이게 무슨 헛소리냐 말해도 제가 딱히 할 말은 없습니다. 저도 알고 있거든요. 사람 일이 쉬운 일이 있나요. 그리고 설령 돈이 될 만큼 장사가 잘 되기라도 하면 그때부턴 놀 시간이 없다며 또 불평하게 될 거에요. 그래도, 좋지 않나요?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맛있는 커피 한 잔 내려서 대접할 수 있다는 거.
가끔은 제가 미쳐서 정말로 작은 카페라도 차리길 바랍니다. 아주 바쁘고 싶지는 않고요. 적당히 놀만큼 놀면서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만 바쁘고 싶어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놀러 와 주세요. 커피 한 잔씩은 드릴 수 있을 것 같거든요.
-Ho
2015년 10월 25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