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도란도란 프로젝트 - 아흔다섯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가을이 온지도 몰랐더니

가는줄도 모르고 보내고

겨울이 왔다.


나의 삶이 시작된 11월엔

꽁꽁 언 발로 치렀던 대학수능시험도

눈물로 꾹꾹 눌러담았던 사랑도

유달리 힘들었던 시간들이었다.


새까만 밤으로 가득 채웠던

작년 11월, 나는 조그맣고 초라한

나의 존재에 마음이 아렸다.


부딪혀 일어서기엔 내가 너무 여렸고

앞질러 가기엔 내가 너무 약했다.

잡히지도 않을 빛을 쫓았던 순간들이

후회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토록 아픈 11월이 또다시 아리도록

찾아드니 아쉽고 슬프다.


뚝 떨어진 기온 만큼

나는 마음이 곤두박질치고야 말았다.


어쩌면 끝나지 않을 순간순간의

선택의 연속이 될 11월.


지금도 현재도 여전히 나는

11월을 시작하고 있고

아리고 쓰렸던 아픔도

여전히 품은 채로 지낸다.


구태여 극복하려하지도 않는다.

나는 그렇게 덤덤히 또 11월을 맞았다.



-Ram


1.

겨울, 너는 성질도 급하지.

11월이 되지도 않았는데. 10월의 여유가 며칠은 남아있는데.

그새 찬바람을 데려오다니.

'나 아직 여기 있는데'라는 가을의 외침이 그나마 아직은 강한 햇볕으로 말해준다.

나 역시 성질이 급해서 11월이 되면 내년 다이어리를 고른다.

이번엔 어떤 다이어리를 써볼까, 하면서도 벌써 같은 브랜드의 다이어리를 3년째 쓰고 있다.

내년에는 새로운 브랜드의 다이어리를 써 볼 생각이다.


2.

여름이 가을이 되고, 가을이 겨울이 되면서, 내적으로 외적으로 꽤 많은 변화가 생겼다.

무엇이든 변하는건 움추리고 있지 않다는 뜻이고, 경직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고, 고여 있지 않다는 뜻이다.

변화가 클수록, 흔들림도 많아지고, 과도기인 순간들도 맞이하지만,

어쨌든 좋다.

무엇이 되었든 좋다.

새로운 것을 느낀다는 자체는 좋은 것이다.

이왕에 느낄 변화라면 엄청나게 상상하지도 못하게 큰 변화가 내게 다가오길.


3.

당연한 것은 없다.

나 지금까지 내 자신을 당연하다고 여기며 살아온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고작 이십 몇년을 살면서.

뭐가 그렇게 당연하다고.

내 자신이 가지고 있다고 느끼는 면들에 대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면,

더 많은 새로운 면들을 볼 기회조차 주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나 이제까지 이렇게 살아왔으니, 이렇게 생각했으니, 이렇게 행동했으니,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고,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하란 법은 없다.

난 내 자신에게 새로운 기회들을 주고싶다.


4.

허리가 뻐근하다.

엉덩이 놓는, 그러니까 앉는 면적이 깊은 의자는 내 허리를 힘들게 한다.

게다가 무릎높이까지오는 테이블의 조화란..

아무리 생각해도 빨리 커피를 마시고 가라는 영업전략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 자리에 앉은 사람을 모두 (더구나 내가 왔을때보다 더 먼저 앉아 있는 사람도 많다) 자리를 뜰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내 옆에 앉은 어떤 여자는 책을 읽으려고 가지고 온 것 같은데, 책은 무릎 위에 두고 아이폰만 쳐다보고 있다.

그 옆에 앉은 어떤 남자는 나처럼 무릎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어떤 프로그램(잘 보이지 않는다)을 열심히 돌리고 있다.

다들 허리는 안아플까?

다들 의자가 안불편한가?

혹시 내 키가 작아서 의자가 몸에 맞지 않는 건 아닐까?

도대체 엉덩이와 무릎 전 허벅지의 길이가 얼마나 길어야 이 의자에 편안하게 앉을 수 있을까.

키가 170cm정도면 괜찮을까?

키가 165cm정도면 괜찮을까?

그냥 등받이에 허리 기대는 것을 포기하고 허리를 곧추세운다.

조금 뒤에 밖에 나가게 되면 꼭 온 몸을 위로 쭉 뻗고 스트레칭을 하리라.

무릎까지 오는 테이블은 짧은 치마를 즐겨 입는 내게 또다른 시련을 준다.

다행히 요즘 날씨에는 외투, 목도리가 있어 다리 위를 덮을 수 있지만,

스타킹도 신지 않은 맨다리인 여름에는 다리를 어찌할 방법이 없다.

물론 그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상대방도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방황하는 눈빛도 느껴진다.

괜히 허리가 뻐근하니 이런저런 불평을 늘어나본다.



-Hee


1.

겨울이 다가온다.

10월의 끝자락에서

마치 겨울의 시작을 알리듯

추위가 불어 닥친다.

차가운 바람이 반갑다.


2. 11월 11일

아이폰4S의 출시일이었다.

또한 항상 나에게 귀감이 되는 사람의 생일이기도 하다.

시계를 문득 쳐다볼 때 이따금 11시 11분이 될 때면

더 뛰어나지 못한 내가 야속하기만 하다.


3.

12월이 다가온다.

두렵다.

언제까지 내 생일이 다가오는걸 두려워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 자신에게 맞서 볼 뿐이다.



-Cheol


1. 찬 바람, 시린 발가락, 움츠러든 어깨, 날 선 기침, 보일러 기름값의 계절이 오고 있다. 헛헛한 날숨들이 어디에나 둥둥 떠다니는, 어딘지 음산하고 외로운 것들의 시간은 이미 시작됐다. 가능하다면 모든 것을 이불 속에서 해결하고만 싶어지는 계절이 다시 온다. 퇴근 길에 붕어빵, 고구마를 번갈아 한 봉지 씩 집어들면서, 라이에이터 위에 엉덩이를 올리면서, 허벅지 아래로 손을 집어넣으면서, 이불 속에서 귤을 까먹으면서 흩어져 있는 따뜻함들을 주워 모아 계절을 날 준비를 한다. 이 준비를 나는 정말로 좋아한다. 언제까지고 겨울을 가장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2. 가을 끝무렵 정동진 역사 안을 밤새 함께 한 것들은 하나같이 절절해 보였다. 다섯평 남짓한 좁은 공간, 자잘한 금이 많은 바닥, 딱딱하고 차가운 의자, 대실을 권하는 여관방 할머니들, 싸구려 믹스커피를 나눠주는 교회 사람들. 색바랜 벽 한켠에는 예전 드라마 촬영지로 쓰였던 때의 영광을 추억하기 위한 낡아빠진 의상 한 벌이 걸려 있었고 벌레들은 끈질기게 형광등으로 달려들며 틱틱 소리를 냈다.



-Ho


2015년 11월 1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매거진의 이전글"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