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도란도란 프로젝트 - 아흔여섯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사실 마음 한 켠의 작은 욕심으로는

나를 만나던 너의 시간 모두가

낭만의 시간이 되었으면 했다.


지금은 어쩌면 다른 누군가와

마음 깊이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를 너이지만,

그래도 나를 만났던 시간은

네게 의미 있는 삶의 조각이 되었기를.


나는 그랬다.

네 무릎을 베고 머리칼이 살짝 일렁이는 봄바람에

아무것도 없이 어떠한 것도 없이

우리가 흘려보낸 구름의 수만큼 널 사랑했다.

그 순간, 그 공기, 그 향기 모든게 내게 낭만이었고 추억이었다.


나는 그랬다.

꽁꽁 언 귀를 녹이며 너의 집 앞 모퉁이에서

널 기다리던 순간의 겨울 바람, 입김, 차가웠던 모든 것이

나에게 곧 낭만이었다.


나는 지금도 널 떠올리면 수백가지

많은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와

쉬이 네 생각을 접을수도, 아쉬워 할 수도 없다.


너는 나를 겉잡을 수 없이

너의 향기로 나를 물들이던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워도 그리워 할 수 없고

지울수도 없는 애잔한 나의 사랑.


너의 행복을 비는 내가

아프고도 비참할지언정

그래도 네가 기쁘기를 바라는 나의 지금도

어쩌면 나의 낭만인지도 모른다.


네가 곧 나의 낭만이니.

지지도 말고 예쁘게 피어서

어여쁜 사랑으로 남아주길.



-Ram


1.

내 자신을 잃지 않는 것. 내 자신을 잊지 않는 것.

난 이것에서부터 낭만이 시작된다고 믿는다.

오롯한 '내'가 존재해야 '내가 느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고,

오롯한 '내'가 실재해야 '내가 느끼는 감정'이 실재하는 것이다.

오롯한 '내'가 존재하면 '내가 보고, 들은 것'이 존재하는 것이고,

오롯한 '내'가 실재하면 '내가 만나는 사람'이 실재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없다면, 모든 것은 아무 의미가 없으며, 아무것도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2.

아직 나는 잠에서 덜 깬 아침. 아이폰에 푸시가 왔다.

누구지, 하고 봤더니 내가 좋아하는 친구.

요즘 만나면 기분좋고, 항상 자신에게 보고싶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고 있는 친구다.

아침부터 무슨 일일까, 하며 비몽사몽 답장을 보냈다.

전날 늦게 잔 탓에 피곤해서 내 답장에 온 답장을 보지도 않은 채 다시 눈이 감겼는데,

갑자기 벨이 울렸다.

그래 차라리 전화가 낫겠다, 싶은 생각을 하며 전화를 받았다.

그 친구는 지금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되는건지, 아닌건지,

하지만 그 사람과 대화하면 행복하고, 좋은 감정이 자꾸자꾸만 피어올라 계속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주절주절 연신 떠들어대는 친구의 어조는 이미 엄청 설레있었고,

그 사람이 자신에게 어떻게 대하는지, 어떤 말을 했는지, 그 사람에게 자신이 어떤 존재일거란 짐작을,

내게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나 역시 그 친구가 행복하면 좋은거라고 생각하여 잘됐다고, 괜찮은 사람같다고 호응해줬다.

친구는 자신의 연애이야기를 마무리 짓고는,

뜬금없이 자신에게 나는 정말 애정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리곤 전화를 끊었다.

갑자기 정신이 맑아지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내가 들었던 나에 대한 말이 '애정하는 사람'이라니.

그 말을 몇 번이고 머릿속에 되뇌이며 굉장히 행복한 하루의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애인이 있어도 아침부터 애정표현 같은 것을 안하던, 안듣던 나인데.

역시 애정표현이란, 표현이란, 좋은 것이구나. 정말로.


3.

집에 가는 길에 같은 전철을 타자고 약속했던 친구에게

노트 한 장을 깔끔하게 칼로 잘라 라인들 사이로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쓴 편지를 받는 것,

좋아하는 사람이 보고싶으면 보고싶다고 이야기 하는 것,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시간이 새삼 좋다고 느껴지면 좋아한다고 이야기 하는 것,

건전한 비판을 건전하게 듣는 것,

건전한 비판을 건전하게 하는 것,

네가 행복했으면 모든 다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네가 행복했으면 모든 다 괜찮다는 말을 듣는 것,

소중한 사람들에게 전해줄 소소한 선물을 고르고 골라 주문하는 것,

그리 대단하거나 값어치가 있진 않은 것이지만 마음에 드는 포장지에 포장하는 것,

아끼고 아끼는 음악을 같이 듣고 싶은 것,

잡은 손이 따뜻하고 믿음직스러워서 손에 힘을 주어 더 꽈악 잡는 것,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 것,

즉흥적으로 시간과 거리따윈 상관없이 가고 싶은 곳을 가는 것,

지난 일들을 피식 웃으면서 다른 생각없이 담담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

누가 들어도 이상한 상황극을 서로 맞받아치며 하하호호 웃음이 쉴새없이 터져나오는 것,

내 옷을 눈여겨보고 은근슬쩍 비슷하게 맞춰 입는 것,

눈 앞에 펼쳐진 단풍잎과 은행잎을 보고 예쁘다고 말하는 것,

설레는 마음으로 새로운 다이어리의 첫 장을 펼쳐보는 것,

찬 물이 아닌 실온에 둔 물을 좋아하는 나의 취향을 존중해주어 식당에서도 미지근한 물을 만들어 주는 것,

오늘의 나를 인지하고, 오늘의 시간을 밟아가는 것,

먹고 싶다고 생각한 음식이 마침 집에 있는 것,

머리와 마음속에 슬픔이 밀려오면 외면하지 말고 정면으로 슬픔을 받아들이는 것,

힘들면 힘들다고 앓는 소리도 해보고, 아프면 아프다고 투정도 부려보는 것,

소중한 사람이 내 두 눈에 담길 때 마음이 벅차오르는 것,

내 약점과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는 것,

눈에 익은 길들을 느리지만 차츰차츰 늘려나가는 것,

다정함을 느끼는 것,

가식없이 담백하고,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것,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

살아있다고 느끼는 것.



-Hee


1.

누군가를 보고싶어 한다는 것,

글을 쓴다는 것,

음악을 듣는 것,

내리는 빗방울을 바라보는 것,

젊음을 누린다는 것,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는 것,

나의 미래를 열어가는 것,

나의 현재를 온전히 인정하는 것,

누군가에게 인정을 느끼는 것.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

나의 과거를 추억 하는 것,

나의 현재를 이끌어 가는 것,

나 혹은 우리의 미래를 꿈꾸는 것,


불합리와 편견으로 가득 찬 세상 속에도

삶, 그 자체가 낭만으로 가득 차 있다.



-Cheol


1. 꿈결에 스치듯 지나간 얼굴이 실제가 되어 나타나는 순간이 있다. 눈을 감았을 때에만 흐릿하게라도 떠오르던 모습이 눈을 뜨고서도 생생한 현실마다 그는 ‘운명'과 '낭만'이란 단어를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좋은 날씨에 미술관에서 그는 좋은 냄새가 나는 여자의 뒤를 따라다녔다. 낭만적인 사랑을 시작할 운명의 여자였다. 쏟아지는 볕이 아직은 사나워 오후 나절을 미술관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버티다 우연히 그 여자를 마주했다. 그리고 그는 여자가 전시관을 돌아다니는 한 시간 동안에 그녀와의 결혼생활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기까지 하며 행복해했다.

운명의 상대를 만난다는 것. 그리고 그 상대와 생애를 함께 한다는 것. 많지는 않았지만 그에게 들어온 몇 번의 소개팅을 번번이 거절했던 이유는 언제 만나게 될 지 모를 운명의 여자 때문이었다. 미술관 혹은 도서관에서, 비 내리는 센티한 저녁에 필연적으로 만나게 될 여자를 생각하면 그런 인위적인 관계따위를 가질 이유가 없었다. 오늘 비가 내리지는 않았지만, 더구나 저녁도 아니었지만 그 여자는 왠지 그의 낭만을 함께 해줄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운명의 여자의 키는 그보다 아주 조금만 작아야 하고 늘씬하면서 어느 정도 이상으로 예뻐야 했다. 사실 예쁘다기 보다는 특별히 못나 거슬리는 곳 없는 평범한 얼굴을 원했다. 의존적이지 않고 평소에 나긋나긋하면서도 할 말을 다 하는, 자기 챙길 것은 다 챙길 줄 아는 외유내강의 성격이어야 했으며 음악을 좋아하고 책읽는 것을 좋아하는, 고즈넉한 취미들을 즐길 줄 아는…… 평소 이상형이란 것을 새겨 놓지는 않았지만 여자를 사랑하기 위한 상스럽고 까다로운 조건들을 남들보다 많이 갖춰놓은 그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들이야 아무래도 좋았다. 혼자서 미술관을 찾는 여자라면, 그렇게나 좋은 향기가 나는 여자라면 그런 것들 따위야 어찌됐든 관계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여자가 전시관을 다 돌아보고 출구를 향하는 순간에 그녀는 그의 '운명일 뻔 했던 여자들’ 무리 속에 한 명이 되었다. 오늘의 우연이 몇번이고 반복되어 필연이 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는 적극적으로 마음을 전달하지 않았다. 용기의 문제와는 다르다. 처음 보는 모르는 사람에게 '마음에 드니 전화번호를 달라.'는 말을 덩그러니 늘어놓는다는 것은 한없이 저속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절대로 낭만적일 수 없다. 낭만은 저절로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 그의 인위적인 마음이 닿으면 낭만은 이미 낭만이 아니게 된 것이다.

그러니 반드시 실패하고야 말 운명이렷다. 소리로 전해지지 못한 마음들은 힘을 잃고서 계속해서 작아졌다. 여자가 그와 마찬가지로 운명적인 상대라도 만났다는 듯 뒤돌아 그를 빤히 바라보길 원하는 것 그리고 다음에 다시 이런 식으로 마주치길 바라는 것 외에는 더이상의 무엇도 없었다. 운명이 이어지지 않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는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것은 순전히 그의 '낭만'을 위해서였다.


2. 누군가의 무의미한 하루는 나의 낭만이 되기도 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의 무기력함을 나는 항상 낭만하였다. 하루를 벌어 하루를 먹고 사는 이들의 무기력한 사색을, 숨이 죽은 겉절이같은 자세를 나는 언제나 동경해왔다.


3. 아주 부자가 아니고서는 낭만적이어선 안돼.



-Ho


2015년 11월 8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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